그리 오래지 않은 얼마전만 해도 춘궁기에 대한 어른들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었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새봄이 되면 따사로운 봄볕과는 달리 마음이 어두워지고 우선 먹고사는데 급급했단다.

보리가 패기 시작할 때 이런 궁핍이 가장 심해 보릿고개라고 불렸던 그 시절은 그래서 하루 한 끼 심지어는 하루를 건너 뛰는 적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물질의 궁핍이 절실했던 그 때는 그래도 우리네 인정이 메마르지 않아 밀가루로 만든 수제비 한 그릇이라도 서로 나눠 먹었었고 남의 것을 무턱대고 탐내는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의 우리는 어떠한가. 보릿고개라는 말의 흔적조차 사라진지도 한 세대가 훨씬 지나 버렸다. 이제는 물질의 궁핍을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극단의 물질문명이 만연하여 서로 잘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이다.

개인의 욕심이 팽배해진 이기주의로 인해 사회혼란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슴아픈 것은 남의 것을 무턱대고 뺏으려는 엉뚱함이다. 못가진 것이 미덕은 아닐진데 가지지 못한 것을 자랑하듯 내세우며 남의 것을 무작정 차지하려는 의식이 사회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물질 우선의 의식이 빚어낸 정신적 빈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진하게 흘리는 땀은 언제나 진실하다. 심는대로 또 가꾼대로 거두는 것은 대지가 인간에 주는 귀중한 깨우침이다. 지난주에는 단비가 내렸다. 아파트촌으로 숨막힐 듯 한 도심의 자투리 공간에 고추, 상추 모종을 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래부터였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땅 값 비싼 곳으로 널리 알려진 터라 누구라도 용인에 살고 있노라고 하면 좋은 곳에 살고 있어 좋겠다라는 인사와 더불어 행여 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되물림을 받을 만큼 땅이 비싼 동네에 사는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몇해전에 시 승격으로 인해 도농복합이라는 신종도시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도심 곳곳 빈 자투리 공간에 올망졸망하게 고추, 사추, 토마토 모종들이 심겨진 것을 보노라면 삭막한 도심과 넘치도록 풍족한 우리시대의 상대적인 빈곤을 만난다. 그리고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불편한 심사들과는 전혀 무관한 예전의 보릿고개를 넘나들때 작은 마음을 나누던 넉넉함을 보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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