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2천년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용인시민과 더불어 온 인류에게 부활한 주님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한다.

부활은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큰 이적이다. 그러나 당시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의심하기도 하고 오늘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이기에 예수그리스도가 A.D.와 B.C.로 구분된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헛된 것이 되고 인류는 절망뿐인 것이다.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죽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 것이다.(고전15:3)

이세상의 최대 정복자는 사망이다. 사망은 돈 많은 부호도 권력자도 핵을 가진자와 과학자, 영웅 그리고 모든 인간을 정복하므로 인류최대 원수요 최후의 정복자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사망을 정복했기에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있느냐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고 사망을 놀려주게 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나의 주로 믿는 성도들은 사망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어 임종시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도리어 안도감을 갖게 된다.

그 이유는 사망을 이긴 그리스도가 주목하여 구원했을 뿐아니라 천사들이 안보하여 주기 때문이다.(눅16:23) 그러므로 부활절은 인류의 원수 사망이 죽임을 당한 날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공포를 벗어난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난 후 40일 동안 이 땅에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식사까지 함께 하며 부활한 것을 확인시킨 후 승천하면서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오겠다”(요14:2)고 약속했다.

기독교인은 육체와 천국에 대해 어떤 신학자나 과학자의 증거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요14:1~3,계21:1~5)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다.

로마제국의 300년간의 기독교 박해가 종말을 고할 무렵 박해자 쥬리안 황제는 363년 6월에 숨을 거두면서 그리스도가 승리했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죽은자 가운데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된 것은 믿는 성도들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욥14:1~14)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의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테니슨의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인간의 심령에는 영원한 갈망이 있다.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려 동남동녀 300인을 보냈고 한무제는 승호반의 이슬을 받아 먹었으나 죽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한 후 외치기를 내가 부활의 첫 열매로 살아 났으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리라고 했으니 기독교는 죽은자의 종교가 아니며 현실만을 바라보는 종교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활의 영을 받아 사망의 불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부귀 영화도 부러워하지 말고 부활의 생명을 체험해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이 될 뿐아니라 참평안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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