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는 휘발유 값보다 비싼 물을 사먹게 되었다. 시골 어느 집이든 뜰 안 양지바른 곳 나즈막한 우물엔 끈달린 두레박이 있었다. “물 좀 먹을께요”하고 두레박으로 떠올린 채 꿀꺽꿀꺽 몇 모금 마시면 온몸에 갈증이 싹 씻은 듯 내려갔던 기억이 생각난다.

늘 하늘은 맑고 깨끗했고 코발트빛 하늘 위 한가로이 떠있는 뭉게구름의 추억이 아직도 우리 기억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문화가 바뀌고, 모두들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대로 몇 년이 간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이제는 걱정과 염려 수준을 넘어 가히 공포마저 느끼게 된다. 오직 민생치안에만 전념하던 경찰! 그래서 우린 안심하고 살았던 옛날이 그립다.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이니, 청소년 유해업소 출입이나 고용문제. 불법쓰레기 투기 단속과 불리수거 문제, 지역 이기주의로 인한 대량 주민 동원 시위문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런 옛날만 그리워하고 향수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가히 공포에 가까운 시대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일들 때문에 대량 경찰력이 낭비되고 있는 한 민생치안 수요에 필요한 경찰력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과 걱정, 염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한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국가예산과 공무원 인력이 낭비돼고,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소위 우리 모두의 소망인 복지사회 건설의 꿈의 실현은 멀어져만 갈 것인가.

“뉴 밀레니엄”이라느니 “새 시대 새 역사 속에서 변화해 살아야 한다”고 떠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우리의 생각과 습관들은 여전하다. 오랜 잘못된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사회문제가 모두 내탓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는 한 변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의식개혁”의 필요성과 실천을 위해 공권력과 현행법으로 다스려 왔으나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의식변화의 주체를 나 아닌 너에 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변할게 별로 없고 너만 바뀌면 된다는 식이었다. 또한 주체가 애매한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고도 했다. 여기에 의식개혁이 실패한 원인이 있다. 이제야말로 의식변화의 주체가 “너”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나먼저 운동’ ‘내 탓으로 여기는 운동’을 이제는 타율이 아닌 자율로 나를 다스리고 나 먼저 변화시켜야 한다.

기초질서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서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이웃과 친구간에. 또한 사회와 국가 측면에서도 꼭 지켜져야 할 것들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할 것들이 바로 ‘기초질서’라는 것이다.

기초가 부실한 건축물이 제 아무리 호화롭고 웅장한들 무슨 가치와 소용이 있겠는가? 반대로 기초가 튼튼한 건축물처럼 우리가 아닌, 또 당신이 아닌 내가 그 역할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큰 보람이며 자랑이 될까? 무단횡단 하지 않기, 불법 주정차 안하기, 쓰레기 분리수거 하기 등. 이제 더이상 이런 일을 외면하지 말자. 이제는 더 이상 공권력에 의해서가 아닌, 나부터 스스로 생각과 습관을 고치자.

여기에 나는 “나 먼저”운동을 실천하자고 제안코자 한다. 첫째, 아나바다운동이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말고 모든 자원을 아끼자. 둘째, 양심회복운동에 솔성 수범하자. 겉과 속이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인식과 고백 속에 나의 불법행위를 아내와 남편이 그리고 나의 자녀들이 보고 있음을 인식하자. 셋째, 내자녀 내가 책임지기운동을 확산해 나가자. 최소한 내 자녀를 내가 책임진다면 이 사회의 청소년들에 대한 많은 염려와 걱정은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윗물 맑기운동의 본이 되자. 소위 사회 지도층에 계시는 어르신들! 그리고 이 땅위에 있는 모든 종교인들이 이 일에 앞장서자. 최소한 내 고장에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과 불자들이 이 일에 솔선수범하고 앞장선다면 내 고장 용인은 더 살기 좋은 고장으로 재창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 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 사회가 비록 혼탁하다 하나 마치 큰 웅덩이가 흙탕물이 되었다 해도 어느 구석이든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면 언젠가는 그 흙탕물은 맑고 깨끗한 물로 바뀔 수 있는게 아닌가.

기초질서가 나 때문에 지켜진다면 작은 나 하나의 역할이 그 많은 국가 예산의 낭비를 막게되고, 그 많은 공무원들의 인력과 자원의 낭비까지도 줄이는 효과를 가진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내 주변에는 의외로 남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자. 이렇게 절약한 국가 예산과 공무원들의 인력과 자원이 여기에 쓰여질 수만 있다면 오늘도 아무 희망 엇이 살고 있느 많은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와 소망을 나누어 줄 수 있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복지사회요, 천국이요, 극락이 아니겠는가? /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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