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죽음, 그리고 철학 이야기가 담긴 ‘농부’ 회고록 발간

70년대 물과 전기가 귀하던 배고픈 그 시절 척박한 용인 땅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인물이 있다. 기흥면 서천리 출생인 변진표(83)씨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용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용인에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는 변 씨는 건답직파재배의 최초 개발자다. 건답직파는 쉽게 말해 물이 없어도 농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건답직파를 개발했을 당시 김민식 용인군수는 변 씨를 찾아와 용인 주민들을 위한 강의를 의뢰했다. 문예회관과 이동면에 들판에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시작했다.

“비가 안 오는 흉년에도 빛나는 곡식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거나 믿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여러분 제가 하라는 대로 해서 실패하면 저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라도 보상해 드리겠습니다”라며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설득해 나갔다. 직접 만든 농기계와 재배방법을 이용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건답직파를 이용한 주민들은 가을에 풍성한 곡식을 재배할 수 있었고 용인은 전국에서 수확량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관개시설이 부족해 빗물에만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건답직파 영농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식량난 해소에 큰 기여를 한것이다. 과거 서천리는 현재 서천지구로 아파트가 들어서 개발된 도시 지역으로 예전의 논과 밭의 모습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많은 용인 토박이들은 용인이 도시화되면서 땅을 팔아 다른 곳으로 이주해 용인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서천리를 지키고 있는 마지막 농부다.

그런 그가 최근에 회고록을 발간했다. 회고록 ‘농부’에는 농부로서의 삶, 죽음, 그리고 그의 철학이야기가 담겨있다. 회고록 한구절에는 “나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죽어라고 일했다. 새벽에도 일했고, 낮에도 일했고 밤에도 일했다”라고 쓰여 있다.

젊은 시절 죽을 고비도 몇 차례 넘긴 변 씨는 “고2때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했다”며 “화재로 화염을 마시는 사고를 당했고 엎친데 겹친 격으로 건성 늑막염까지 걸려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어린시절 가난과, 여러번의 고비를 견뎌내며 용인의 자랑스런 농부가 되었다.

변 씨는 서농동의 노인회 분회장으로 일하며 새마을 운동과 노인정 건립을 주도하고 현재는 정신문화 선양회의 고문직과 인류시조성전 건립회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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