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날씨 탓인지 숲길이 호젓하다. 나무는 마르고 땅은 얼고, 그래서 겨울 숲은 시간마저 잠든 듯 보인다. 이웃들도 그런다. 겨울에도 산에 가면 볼 게 있느냐고. 아닌 게 아니라 꽃도, 잎도, 열매도, 동물도, 숲에 있을 만한 모든 것들이 지금은 숨어버렸다.

녹녹한 날이면 나는 가끔 물속을 들여다보러 산엘 간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말랐다 고였다 하던 계곡 끄트머리의 얕은 물길이 요즘은 기온에 따라 얼었다 녹았다를 되풀이하고 있다. 얼마 전 좀 풀린 날씨에 가보니 고였던 물이 물길을 만들어 다시 졸졸 흐르고 있었다. 낙엽과 나뭇가지에 걸려 멈칫멈칫하면서도 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만든다.

물렁해진 땅에서 발 디딜 곳을 찾은 뒤 쪼그려 앉아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맑디맑아 나무며 하늘이며 얼굴이며, 물속에 비친 것 모두가 원래부터 거기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꽉 차 보이는 물구덩이. 순간,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무 기대도 없던 참에 물속에서 무언가를 본 것이다. 헤집지도 분탕질도 않으며 물속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그 차가운 물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 꼼실꼼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로 옆새우 떼였다.

옆새우는 깨끗하고 오염 없는 물에서 사는 생물이다. 5~30mm 정도의 크기에 생김새는 가재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환경부에서 지정한 생물지표종의 하나로 열목어, 버들치 등과 더불어 1급수 지표종으로 꼽힌다.

옆새우는 몸이 납작해서 몸을 옆으로 눕힌 채 빠르게 헤엄쳐 다니기도 하고 낙엽 속을 기어 다니기도 한다. 낙엽을 갉아먹고 살기 때문에 물속의 청소부라 불리며, 같은 이유로 ‘엽(葉)새우’라 부르기도 한다. 가재가 사는 곳에 많아 가재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북한에선 ‘가재밥’으로 불린다고도 한다.

옆새우는 여름에 계곡 물에서 돌을 뒤집거나 나뭇잎을 들추면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겨울날 우연히 들여다본 물속에서 그렇게 많이 볼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한 터라 반가움이 더했다. 하지만 어디 옆새우뿐이겠는가. 하루살이도, 날도래도, 플라나리아도, 모두 그 속에서 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물길 옆엔 나이든 밤나무가 밑동에서부터 허리춤까지 이끼 옷을 두툼하게 입고 서 있었다. 지난 가을 그 나무에선 참 많은 잎이 물속으로 떨어져 내렸으리라. 낙엽들이 겨우내 물속생물들을 살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신비로움이 겹쳐왔다.

겨울산에 가게 되면 흔히 ‘오르는’ 일에 초점 맞추게 되지만 가끔은 딴 데로 눈 돌려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겨울산에서는 볼거리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찾아서 봐야 하니까.
언뜻 밋밋하고 따분해 보이는 겨울산일지라도 잘만 눈여겨보면 특별한 것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자연 속엔 숨은 그림이 없는 곳은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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