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경수 시민기자
죽전은 인구가 3만이 사는 곳이라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 건영아파트 단지는 길지이자 명당이다. 5년 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는 야산이었는데, 개발하여 지금은 1300세대가 사는 건물 19동이나 된다. 주민들은 공기가 좋고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겨울과 여름에 춥거나 덥지 않아 살기는 좋은 것이라 한다. 자손들은 노부모들을 위해 이사하여 노인들이 많은 편이다.

건영아파트단지는 입구 오른 쪽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풍수지리학으로 천하의 명당자리이다. 선사시대 조상들은 풍수지리에 밝아 내대지 마을에 선사유적지를 마련해 놓았다. 외백호지역는 내백호지역보다 더 넓다. 그럼에도 선사인들은 내대지마을 중 내백호지역에다 유택을 마련해 놓아 자연과학적인 풍수지리에 밝았음을 알 수 있다. 외백호지역은 내백호지역보다 약간 여름에 덥고 겨울이 춥다. 왜냐하면 대지산 주봉에서 갈려져 나온 오른쪽의 산줄기는 구릉지인 관계로 겨울에 서북풍이 불어 닥칠 때 바람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아 그 일대에는 기온의 차로 춥다. 여름 또한 더운 동남풍이 불어 닥칠 때도 덥다. 내백호 지역은 대지산에서 좀 떨어져 겨울의 찬바람과 여름의 더운 바람의 완충 역할을 해 건영아파트 단지는 공기도 좋고 기온이 고른 편이다.

건영단지에 주민들은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살기 좋다고들 한다. 예로부터 사람이 죽으면 용인에 묻혀야 된다는������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현재 선사유적이 있고, 포은(圃隱) 정몽주와 정암(靜庵) 조광조의 서원(書院)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 되어 명당자리의 묘를 썼기 때문이다.

내대지마을의 죽전서원에 포은과 정암의 위패를 함께 모신 이유는 정암이 포은의 성리학을 잇는 도학패(道學派)로서 사장파(詞章派)와의 대립에서 이학흥기를 위한 공헌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암은 도학으로서 이상적인 나라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훈구파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용인지역에서 우수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용인지역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것은 죽전서원에서 충렬서원과 심곡서원이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충렬서원에서 조선조의 저명한 학자들이 원장(院長)을 역임해 후학들을 양성했다.

실제로 용인에는 풍수지리설로 보아 명당자리가 많아 고려시대 정몽주 진화 이제현의 묘역과 조선조의 개국공신 남은(南誾)를 비롯하여 조광조 유형원 남구만 등 묘역이 셀 수 없을 정도다.

죽전(竹田)이란 대나무 밭이란 뜻인데 용인지방에는 대나무 밭이 없고, 대나무는 사시절 잎이 푸르러 절개가 굳은 것으로 이름 붙어진 지명이다.

죽전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지인상관(地人相關)인 인문지리학과 풍수지리학설로 죽전이란 이름이 지령인걸(地靈人傑)과 연계되니, 많은 인재를 키워내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죽전은 대지산의 이름에서 연유하여 내대지마을이라도 한다. 이 지역에서 사는 주민들은 명당에서 사는 충절의 고장임을 재인식하고 바른 지조와 의리로써 살아가야 할 것이다.
/윤경수 시민기자(죽전동)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