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고구려역사·독립유적지 탐방기

▲ 구성고 유세영 학생.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의 것들 중 아직도 살아서 우리에게 무언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과거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 유물과 유적들뿐이다.

캄캄한 어둠, 신갈초등학교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길은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기다란 터널의 조명으로 착각하게 할 만큼 어둡다. 몸 곳곳으로 퍼져가는 멀미약조차 기나긴 어둠을 지나 인천공항에 도착하도록 가슴 한편의 울렁임을 멈추지는 못했다. 약간의 기대와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심양국제공항에 도착해 현지가이드를 만나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하였다. 웅장함과 화려함의 극치. 지금 당장이라도 하늘로 승천할 듯 한 용이 감싸고 있는 건물들, 집무실, 당시 사용했었을 무기들. 당시 사진들은 보면서 만 천하에 떨쳤을 청나라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 했을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뜨거웠던 태양조차 궁궐의 후광처럼 보였다.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경계되는 중국의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요녕성박물관. 이곳엔 심양을 거점으로 활동했던 여진족과 거란족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3층에는 고구려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소 역사 관련 지식과는 담쌓고 살아온 나로서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지만, 유물들을 관찰하는 마음만은 진지했었다.

사실 이 유물을 사용했던 과거의 사람들의 흔적 앞에 나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도무지 진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수한 과거의 시간이 흘러 간 후 마지막으로 남은 잔재들이 내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수천 년간의 무구한 역사가 지금 바로 내 앞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교과서로만 봐오던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아 이게 진짜 역사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졸본성, 지켜야 할 우리 역사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를 기억하고 환인에서의 내일을 생각하며 숙소로 이동했다. 둘째 날에는 900개가 넘는다는 계단을 올라 천의 요새라 불리는 졸본성으로 가기 위에 산에 올랐다. 평소 체력이 남달리 부족하던 나로서는 졸본성의 고주몽을 보기 전에 내가 먼저 졸도하지는 않을는지 걱정부터 되었다. 졸도까진 아니어도 이곳에서 생긴 가시의 저주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내내 나를 쫓아다니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지만 막상 위에 올라 둘러본 주변 경치라든가 남아있는 성벽, 주몽이 살았었던 흔적들은 힘들게 산을 오른 값을 해주었다. 한국에서의 울렁임은 이미 가라앉았지만 졸본성의 남은 성벽은 내게 또 다른 울렁임을 안겨주었다. 누군가 하나하나 손에서 손으로 쌓아 올렸을 성벽. 먼 옛날 고구려를 지켰던 이 성벽이 지금 우리의 역사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해받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우리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쌓아 올린 성벽으로 지켜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말이다.

그리고 다시 넓고 넓은 땅을 지나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도착한 조선족기숙사학교. ‘조선족이니 적어도 우리말은 할 줄 알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들리는 말은 중국에 도착한 후 이틀 내내 들어왔던 중국어. 중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꿈은 고이접어, 고이접어 나빌래라 할 수 밖에 없었다.

▲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대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릉과 천지에 빠져

다음날에는 아침에 잠시 조선족기숙사학교의 수업 모습 등을 둘러보고 고구려 역사 유적들을 보기 위해 바로 출발했다. A네 개짜리 유적지 Koguryo Kingdom. 성벽도 있고 아직 한창 유물들을 발굴중인 곳도 있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과거 역사의 현장이라는 곳은 심장을 뛰게 하고 역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그곳을 떠나 광개토대왕비와 장수왕릉으로 갔다. 책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보니 그제야 내가 고구려 역사를 체험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거대한 광개토대왕비는 내가 생각 했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이 거대한 비석에 이 많은 글자를 어떻게 새겼을까.

그후 침대열차를 타고 밤을 새워 달려간 백두산. 지프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차의 빵빵거리는 소리와 군인들의 성질들. 그리고 질리도록 많은 사람들은 백두산의 인기를 실감나게 하였다. 백두산의 천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다시 내 마음은 기대로 울렁울렁. 지프를 타고 굉장한 급커브길과 마음조차 닿지 않을 듯 높은 하늘을 지나 도착한 곳은 천지가 아닌 그 옆 봉우리. 땅의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지 않았다면 이곳을 황무지라 착각할 만큼 황량했고, 하늘은 높았다. 개미 같은 사람들은 마치 그림 같은 땅과 하늘과 어울려 한폭의 작품을 이루어 냈다.

아슬아슬 위험한 모래 언덕을 올라 가장 꼭대기에 오르자 드디어 기대하던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이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렌즈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플 만큼 너무 멋있었다. 맑고 가벼워 보이는 하늘과 대조를 이루어 옥 비취빛 천지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수면위로 바람이 불 때면 반짝반짝 거리며 한층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었다.

이 천지의 반은 중국, 다시 반은 북한.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땅 북한이 지금 바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북한 때문일까 천지를 보는 내 마음이 더 애틋해 진 것 같았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한껏 들뜬 마음으로 천지물을 뜨러 출발!!

다시 지프를 타고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천지에서 물이 흘러 떨어지는 장백폭포(비룡폭포)를 가기 위한 곳으로 출발했다. 차에서 내려서는 20여분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걷기운동 하기에는 최악의 체력조건을 가진 나로서는 너무나 힘든 걸음이었다. 오로지 천지물을 뜨겠다는 결심 하나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뜨거운 물이 솟는 온천을 지나 계단을 한참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장백폭포 도착! 뜨거운 날씨에 지친 나는 도착하자마자 폭포 물에 손을 풍덩 담갔다. 세상에, 이렇게 차가울 수가. 폭포수를 물병에 담는 동안 손이 어찌나 시리던지 한겨울 바닷물에 손을 담근 기분이었다. 시원하고 깨끗한 폭포수는 위에서 바라본 천지와는 다르게 맑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온천수에 삶은 계란도 먹고 길고 긴 산책길도 산책하고. 힘들고 지친 백두산 여행이었지만 5박 6일 기간 동안 내 마음에 가장 즐거웠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청산리대첩 기념비의 비애

백두산에서 돌아와 호텔에서 푹 쉬고 난 후 다음날에는 일송정 등 항일 운동지를 찾았다. 청산리 항일대첩기념비. 가장 먼저 도착한 이곳은 전혀 관리를 하지 않는 듯싶었다. 무너진 담과 잡초가 자라고 들뜬 바닥, 칠이 거의 벗겨진 기념비. 정말 기념비가 맞는 걸까. 기념비만 세워 놓고 관리는 전혀 되지 않는 듯 싶었다. 다음은 용정중학교에 갔다. 박물관의 사진들과 전시물들을 설명과 함께 둘러보았다. 설명은 너무 빠르고 기계처럼 지나가서 설명을 듣는 것은 포기하고 뒤에서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따라갔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침대열차를 타고 다시 심양으로 돌아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보고 느낀 것이 많은 여행이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그렇고, 일상을 벗어나 떠난 여행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이번보다 더 준비된 마음으로 떠나보고 싶다.
유세영(구성고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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