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벽하기 짝이 없었던 한촌, 내세울 것 이라고는 산자수명(山紫水明) 뿐이며 이에 조금 보태면 ‘생거진천 사거용인’을 내세워 백두대간의 한남 정맥을 이어받아 명당자리가 많다는 정도로 용인을 정의하던 시대,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산이 많은 고장임을 암시하였고, 청미천, 안성천, 오산천, 경안천, 탄천 등 많은 하천들이 용인에서 발원하여 인접시군으로 흘러 갈 뿐, 타 시군에서 용인을 경유하는 하천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용인이 분지가 되어 인접한 이웃 시군보다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 증명하면서 예의 산자수명을 뒷받침해 왔다.

용인 남동에 위치한 ‘무네미’ 고개라는 지명은 본래 '물 넘이 고개'라는 말의 변형인데 하늘에서 내려오던 물방울 형제가 헤어져서 이 고개 남쪽으로 떨어지면 진위천으로 흘러 아산만으로 나가 서해에 이르고, 북쪽으로 떨어진 물방울은 경안천으로 흘어 한강을 경유, 서해바다로 나가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각처에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용인은 경부,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이후 서울의 남쪽, 한강 이남에 위치하면서 이동거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에 있고 경제력과 생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중산층이 늘어나자 자연 레포츠에 관심이 쏠려서 쓸모없이 방치되었던 산들이 이곳저곳에서 속살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름 하여 골프장 건설이 그것이었다.  맨 처음 개발된 골프장은 1970년대 기흥의 수원골프장, 처인구의 양지골프장, 그리고 남사면의 오산골프장이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26개소의 골프장이 성업 중이다.

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골프장까지 합친다면 용인은 30여 곳이 넘는 전국 최다의 골프장을 보유하는 지자체가 될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개장된 골프장 연면적만도 1억5백여 평이란다. 이는 용인시의 면적대비 5.3%에 해당한다니 대단한 면적이 아닐 수 없다.

골프장, 용인시 면적의 5.3% 차지

본래 산자수명했다는 용인의 산세를 개발했으니 골프장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을 방불할 만큼 아름다운 경관으로 거듭났고, 서민들은 먼발치에서 부유한 사람들, 아니면 정관계, 재계, 법조계, 문화계의 거물급 인사들의 취미와 여가와 건강을 위해서 스윙을 할 때 ‘나이스 샷’하는 소리가 그저 부럽기만 한 금단의 장소로 떠오르는 게 골프장을 보는 서민들의 시각이 아닐 수 없었다.

골프장 개설 허가가 나면, 부수적으로 따르는 통과의례가 있게 마련이다. 자연보존을 우선시하는 환경단체, 개발도중 장마 때 토사가 흘러 주변 마을의 논밭에 피해를 준다거나 과도한 농약 살포로 토양, 식수의 오염문제 등이 제기되고, 무차별로 산의 내맥과 허리를 자르고 수십 년 된 산림을 훼손하는 등의 문제로 지탄을 받기가 일쑤다. 그리고 이해 당사자 간의 문제를 들고 시청 앞에서는 골프장 건설반대를 외치는 주민 집회가 몇 번은 치러져야 한다.

또 문중의 동의 없이 선산을 팔아먹고 조상의 산소를 옮겨야 하는 문제로 집안싸움이 나기도 하고 재산권 문제로 소송을 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태어난 골프장 입구 주변에는 부수적으로 일명 '가든'이라고 부르는 갈빗집 급 음식점들이 들어서거나 아니면 토종닭, 오리구이, 보신탕 식당 등 골프장 내 클럽하우스의 고급 메뉴보다는 대중적으로 저렴한 먹을거리 장사가 주변에 들어서 성업을 한다.

용인시 세수증대 기여 한몫

그리고 골프장에서 용인 쌀이나 무 배추와 같은 농산물을 소비해 주면 골프장 당 한해에 1억 원 이상의 돈을 지역사회에 풀 수 있다고 하니 그것도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것이므로 그런 것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캐디들의 일자리는 물론 주말 골프공 줍기 아르바이트, 잔디 깎기 인부나 허드렛일을 해내는 사람도 필요하니 골프장은 주변농촌의 노동력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골프장이 내고 있는 재산세 영업세 등 지방세는 지난 한 해에도 26개 골프장에서 259억 원에 이르니 용인의 세수증대에 기여하고 있는 비중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급세단 차에 골프채를 싣고 골프장을 출입할 정도라면 일단 고위급 아니면 거물급으로 예우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용인에 와서 골프를 친다는 것 정도를 가지고 왜말로 ‘가오 다시’ 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 용인에서는 지금 웬만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도 골프를 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국내에서 한번 필드워킹 할 돈이면 필리핀이나 중국, 태국 같은 곳으로 날아가서 며칠 몸을 풀 수 있음을 이유로 골퍼들이 해외로 빠져 나간다. 그래도 용인의 골프장 주말 부킹은 하늘의 별따기란다.

부킹담당 공무원  위세당당했던 시절
 
임명직 군수 당시 골프장 부킹만을 전담하는 공무원이 있었다. 이 부킹 전속은 계장이나 과장의 지시나 업무 통제를 받지 않고 부킹에 관한 한 직접 군수 직속 하에서 움직였다.

관내 골프장 중에서 황금시간대별로 하나씩의 비자금 아닌 비상부킹 라인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것은 각계의 상층부에서 직접 군수에게 쇄도하는 부킹 요청 소화용인 것임은 물을 것도 없다. 누구의 부탁인지는 비밀에 속하는 사항이다.

다만 시간을 배정하고 골프장을 알선하는 것까지만 담당한다. 그러니 7급 부킹담당 공무원의 위세는 과장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군수가 골프장 때문에, 부킹 때문에 골치를 알아야 했던 것도 골프공화국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했던 특수한 상황이었다.

언젠가 어느 역대 대통령께 무슨 벌과금인지 환수 금인지를 내라고 하자 “내 통장에는 단돈 36만원 밖에 없어서 낼 돈이 없다” 고 하셨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어른의 통장에 단돈 36여만 원 밖에 없으셨다니 이 얼마나 청렴결백(?) 하셨던 대통령이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는 옛날 조선시대에 정승을 지내신 황희나 맹사성과 같은 청백리에 맞먹을 만하고 “십년을 경영하여 모옥을 지었더니 반은 청풍이요 반은 명월이라, 청산은 들일 곳이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고 했던 청백리 사계 김장생 선생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청백리 급 대통령이었지 않은가?

그런데 이분께서 용인의 어느 골프장에 오셔서 한방의 스윙을 날렸는데 이 공이 보기 좋게 반공을 그리더니만 '홀인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으셨던지 그 어른 이름으로 150만원을 들여서 ‘홀인원 기념식수’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통장 잔액의 다섯 배와 맞먹는 돈으로 이처럼 기분을 내셨다면 뭔가 뒷맛이 좀 찜찜하면서 괜시리 그동안 품어왔던 존경심(?)이 슬그머니 수그러드는 게 아닌가?

수해나자 무분별한 토지개발 비난

1991년 7월 21일, 이 날은 임술장마 이후 용인지역에 최대의 폭우 피해가 발생한 날이었다.
시간당 180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엄청난 홍수 피해가 발생하였다. 한 밤중에 산사태가 일어나 사망자만도 32명이 발생하였으니 대단한 참사였으며 이재민만 하더라도 515세대에 1802명에다가 1282동의 주택이 완파, 혹은 반파가 되는 수해를 입었고, 가옥 987동이 침수되었다.

농경지 1421ha가 물에 잠겼고, 82개소의 하천이 붕괴되었으며 3백 군데가 넘는 산사태가 발생하였다. 용인의 홍수피해 사상 전무후무할 재앙급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골프장 시설이 건설 중이던 이동, 원삼지역에 집중적으로 폭우가 쏟아져 피해 지역 주민들은 인재(人災)냐 천재(天災)를 놓고 시비가 일어났다.

용인재해 참상이 연일 보도되자 당시 이상연 내무부장관이 현지 시찰을 나왔고, 환경처에서는 골프장 건설 현장을 일제히 점검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방송에서는 산허리가 무참히 잘려 나가고 우거졌던 산림이 무차별 훼손된 골프장 건설현장을 헬기로 촬영하여 연일 보도하였다.

태영골프장 건설 현장에서는 그해 7월 23일과 30일, 원삼면 목신, 죽능리 등 8개 마을의 주민 230여 명이 골프장으로 인한 피해보상 및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였고, 이동면 화산리 주민 200여 명도 7월 26일과 28일 ‘화산리 골프장 건설 중단 및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 일이 있었다.

골프장 건설이 천재를 가중시켰는지, 골프장 건설 때 천재를 만났는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烏飛梨落)’는 말이 있으니 골프장 건설업자도 할 말은 있었을 테지만 유구무언으로 그저 하늘을 원망했을 뿐이다.

시립골프장 건립 성사 여부에 관심

이런 저런 사유를 딛고 우리나라 골프계를 선도하면서 골프 레저단지로 그 위상을 다듬어 온 용인과 같은 골프공화국이 있었기에 박세리, 신지애, 미셀 위, 슈퍼땅콩 김미연, 탱크 최경주, 등 기라성 같은 세계랭커들이 PGA 또는 LPGA에 진출하여 기염을 토하면서 국위를 선양 하는가 하면 상금으로 수 백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고 있다.

이들이 날리는 스윙 한방이 웬만한 셀러리 맨 수개월 치 월급과 맞먹는다고 할 때, 이들 하나하나가 움직이는 기업이다.

금년 초 PGA에서 우승한 양용은의 경우 상금만 15억에다가 후원상금 50억을 합쳐 72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1라운드 당 70타를 쳤을 경우 3라운드까지 210타를 쳤다고 하자. 그럴 경우 한 타당 3600만원이 넘는 돈이니 양용은의 스윙 한방은 대졸자 초급연봉과 맞먹는 돈이지 않겠는가?

참 부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면서, 부수적으로는 용인을 골프공화국으로 지칭하는 것도 뭐 그리 싫을 게 없지 않느냐는 얘기다.

이에 고무된 나머지 용인시에서는 시에서 직영하는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벼르다가 의회에서 예산 승인을 받지 못하여 일단 보류된 상태라고 한다.

골프장 사업이 성사되면 시장님이나 실국과장님 주말 부킹 전속공무원은 잘만하면 승진 길이 보장되는 자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엄숙히, 그리고 경건하게 보내야 할 현충일 날 총리께서 골프를 쳤다거나 수해지역에 가서 남들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복구에 여념이 없을 때를 골라 당당하고도 의연하게시리 골프를 치시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고관이나 정치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골프장을 보는 시선이 좀 곱지 않을 때가 약간 있을 뿐이다.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북한의 특수군단이 활공비행이 가능한 AN2기로 강습 침투 한다고 가정할 때 골프장 많은 용인은 전시 취약지점이 될 수도 있다. 이 비행기의 항속거리는 1300km이니 인천에서 북경을 날아갈 수 있는 거리이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의 대책도 만일을 위한,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미리미리 챙겨두는 것도 해로울 게 없을 듯하다.
/프리랜서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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