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여래입상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미륵이라고 불렀고, 또 미륵이 있는 마을이라고도 해서 미륵뜰이라고 했다.

불상이 있던 곳에 마을이 있었는지 마을이 있은 후에 불상이 생겼는지 지금의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듯이 또 하나 잊혀져 가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

이 미륵뜰의 넓은 들녘은 좌찬현에서 흐르는 냇물로서 관개용수를 삼았다.
그런데 윗고에서 물길을 막아 놓으면 아랫마을 미륵뜰에서는 보리때부터 흉년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미륵뜰 사람들은 윗동리 사람들과 친선을 도모코자 하였고, 그래서 명절 때면 윗마을 사람들을 초청하여 술자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이 해에도 미륵뜰의 김좌수 댁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맞아 한상 차려놓고 윗동리의 좌수, 소임 등을 초대하여 주연을 배풀었다.

한순배 잔이 오간 후 취기가 돌 무렵 두레꾼들의 풍장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거 두레장단 좋습니다. 웬만큼 마셨으니 우리도 한판 어울려 봅시다 그려"
“좋지요, 저희 마을에서는 오늘 마침 풍년 기축겸 미륵전에서 척사대회가 있습니다. 금년 장원에게는 암톳 한 마리가 상으로 주워지지요.
던지는 사람은 다 모였을 테니 볼만 할 거요"
“그럼 우리 마을도 붙여 주시려우?"
“물론입니다. 암톳 한 마리 안고 가시려거든 장원만 하시구랴"

이래서 미륵전에서는 모처럼 좌찬현 사람들이 참여한 가운데 윷놀이 대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미륵뜰에는 고봉수라는 윷놀이의 명수가 있어서 이날 출전한 30여명의 선수들을 다 물리치고 장원을 하여 암톳 한 마리를 차지했다.

“허허허 모처럼 오신 손님 대접이 부족했소이다. 우리 동네에서 장원이 났으니 원"
“운수 탓입니다. 이 사람도 윷놀이 하면 근동에서야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못사는 터수외다"
“그랬나요? 그럼 우리 한번 정식으로 대항전을 치러야 겠군요?"
“좋지요, 언제라도 좋습니다"

바로 이것이 발단이 되어서 미륵뜰과 좌찬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보리 흉년 떠넘기기 윷놀이 대회>를 치러왔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윷놀이의 명수 고봉수가 속해 있는 미륵뜰 사람들의 승리로 끝이 났고, 좌찬현 사람들은 번번이 보리 흉년을 떠맡아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좌찬현 사람들은 한번쯤 멋지게 이겨 볼 요량, 오직 이것 때문에, 남사당패를 따라다니며 윷판을 벌여온 전문 도박꾼 윤판석이를 스카웃해다가 연봉 쌀 닷섬을 주기로 하고 이적(?)해 왔다.

잘은 몰라도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유명 선수를 스카웃하기 시작한 최초가 될지도 모른다.

“자네 윷판깨나 벌였다지?"
“물론입죠. 전국 방방곡곡 한다 하는 윷판에서야 윤판석하면 윷판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되었네. 아랫마을 미륵뜰 사람들과 매년 보리흉년 떠넘기기 대항전을 치렀네만 그 쪽엔 고봉수라는 천하명수가 있어서 당해낼 재간이 없더니만 이제야 제놈이 임자를 만난게로군"

어느덧 해가 바뀌고 계해년이 되었다.
좌찬현의 소임은 이곳 최좌수를 찾아 갔다.

“좌수어른, 금년에는 우리 마을이 이긴다는 것은 따논당상 아닙니까?"
“허허허 그거야 대강 그런 셈이네만"
“그래서 말입니다요. 이번엔 우리 마을에서 판을 벌이는게 좋을까 해섭죠"
“우리 마을에서 주최한단 말이지?" "그렇습죠. 마침 박서방네 돼지 뗄 때도 됐구하니 대동쌀 내서 암톳 한 마리 상으로 걸면 됩니다"

대회의 유치가 결정되자 미륵뜰로 사절단이 파견되고 교섭이 성립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마침내 대회 날이 왔다.
최좌수댁 사랑채의 넓은 마당 동편에는 좌찬현의 응원단이 서고 서편에는 미륵뜰 응원단이 섰다.
좌우로는 농기가 드높이 섰고 아래에는 대문짝 크기의 마판이 놓아졌다.

치-잉!
드디어 대회전이 벌어졌다.
과연 희대의 명승부였다. 고봉수가 모를 치면 윤판석이도 모를 치고, 두 동산이 업고 뛰는 마판, 뺄모 쳐서 나꿔채고, 쫓고 쫓기며, 잡고 잡히고, 예상을 불허하는 혼전을 펼쳤다.
심판장의 해설과 전황이 흘러나올 때마다 박수와 함성이 터졌고, 잡고 잡힐 때마다 농악소리가 낭자했다.

“자 막판 시작입니다. 먼저 좌찬현 윤판석 던질 차례요"
“으랏차 나가신닷!"
“한 모만 더 치면 얘기는 끝난다. 천하에 고봉수 다섯 모 빼신다. 보구만 죽어랏! 에라이 썅!"
-투투툭 땔그럭-
“와야야- 귀신이 곡할 노릇 아녀? 진짜 다섯 모다! 신통, 맹통 꼬불통이다. 하하하"

미륵뜰 사람들은 서로 엉겨붙어 어깨춤, 엉덩이 춤, 덩덕깨비 춤으로 통쾌무비한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해에 있었다.
당연한 귀결처럼, 매년 보리흉년을 떠 넘긴 실력으로 미륵뜰 사람들에게 영웅시되었던 고봉수는 이런 불평이 떠올랐다.

“나 아니면 이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보리 흉년을 떠넘기남? 그건 그렇구 말여 어떤 동네에서는 연봉으로 쌀 닷섬씩이나 들여서 선수를 사 왔다는구면서두 이건 뭐여? 이 고봉수 나리한테는 쌀은 그만두고 겉보리 닷되도 돌아오는게 없지를 않나베? 윤판석이가 쌀 닷섬짜리라면 이 고봉수 어른은 열섭짜리도 더 되지 암…"

세월은 쉬지 않았다.
미끈 유월, 어정 칠월 하더니 얼핏설핏 시동지 섣달이 되었고 집집마다 제수하여 설빔 준비에 분주한 철이 되었다.
고봉수가 용인 대목장을 보러 가는 길에 좌찬현 사람들을 만났다.

“고봉수 아녀? 오랜만일세. 탁배기 한잔 하구가지-"
“길이 바쁘오. 저녁참에 들릅지요”
고봉수가 한망태기 장을 봐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좌찬고개 아래 목노집으로 들어섰다.
“고봉수 참말 왔구먼. 이리 들게. 다리도 쉴겸. 자네 윷놀이 비결이나 털어놓고 가세”
“비결이라는게 따로 있나요? 운수가 통해야죠”
“그럼, 그게 운수가 통한 거여?”
“글쎄올시다”
“고봉수, 이왕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이번 대회는 좀 양보할 수 없겠나?"
“양보라니요?"
“우리 마을은 자네 때문에 매년 보리흉년을 도맡아 왔으니 한 번 쯤은 져 달라는 거여"
“일부러 진다는 말입니까?"
“이봐 우리 동네에선 자네 때문에 쌀 닷섬씩이나 주구선 선수를 데려왔어,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이번에는 열섬으로 올려 놓고 선수를 고르는 중인데 차마 자네를 오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말여"
“그야 그럴테죠만"
“그래서 하는 소린디 자네한테 쌀 닷섬을 떼어 줌세, 까짓거 한 번만 눈감아 주면 되는 일 아닌가? 또 자네 마을에서야 자네한테 이렇다 할 보상도 없지를 않았는가?"
“맞아. 자네가 져 줬다고 해서 그게 표시날리 없고 하니 우리 마을 체면도 좀 세워줌세"

별로 싫지 않은 소리다. 이기고 생기는 게 아니라 지고서 수지를 맞춘다?- 세상엔 별 우스운 논리도 다 있다. 이게다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는 몸이시기 때문이다.
흠뻑 마신 탁배기 탓일까? 딱히 뿌리쳐 버릴만한 명분이 없다.

“나는 나, 나 좋은데로 하면 되지 않남?...."
“자, 그럼 약조 끝난 것으로 하세. 사례할 물건은 조만간 전달될 걸세"
“… …"
원정 경기방식으로 대회는 미륵뜰에서 열기로 되었다.
미륵뜰 사람들은 아침부터 대표선수인 고봉수의 문전을 드나들면서 금년에도 보리흉년을 떠넘겨 줄 것을 기원했다. 뿐만 아니라 이집저집에서 술도 보내고 떡도 보내고 하여 각기 격려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직 한 번도 패해본 일이 없다는 사실이 미륵뜰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긍지가 되고 있었다.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이 대회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큰 것이기도 했다.
미륵입상이 내려다보는 넓은 마당.
우측에는 미륵뜰 사람, 왼쪽에는 좌찬현 사람들이 둘러섰고 미륵입상의 좌측에는 농기가 드높이 나부꼈다.
말하자면 미륵입상의 면전이 본부석인 셈이며, 그 앞으로 마판과 낙판이 펼쳐져 있었다.

“일대 삼-"
“와- 드디어 우리동네가 이겼다. 윤판석이 만세!"

실로 처음 맛보는 승리의 쾌감이었다. 미륵뜰 사람에게 약했던 징크스가 이 한판 승부로 깨끗이 사라진 것이다.
이긴 쪽에서는 선수를 무등세워 새납과 농악을 앞세우고 의기충천 돌아갔다.
반면, 꼭 이길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패배를 맛본 미륵뜰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니 그사람 실력으로 이길 수도 있었던 판 아니었던가?”
“글쎄말여, 종반엔 너무 힘없이 끝났단 말여, 나래두 이길수 있는 상황 아닌가베?”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도 있겠지만 말여, 고봉수 정도 돼 가지구 끝마무리가 그게 뭐여?”
“이 시합이 있구선 처음 져본 것 아녀? 십년 전통이 오늘 박살이 났다는게 섭섭혀”

여기저기 수근대던 사람들이 한 둘씩 흩어졌다.
미륵앞에 혼자 남게 된 고봉수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 미륵님은 아실 거구면, 나는 양심을 속이구 마을 사람들을 배신한 거여. 아 그게 다 뭐여......"

박힌 듯 서 있던 고봉수는 미륵의 상을 바라보면서 짓눌러 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모양인가?
사람들의 기대와 여망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했을 어떤 임무를 져 버린 행위, 설령 마을 사람들은 모른다손 치더라도 저 미륵님이야 어찌 기만할 수 있을 것인가?
쌀 닷섬, 그것이 자신을 이처럼 떳떳하지 못한 인간으로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재물보다는 신망으로 얻어지는 무상의 대가가 더 크고 귀중했다는 사실들이, 자신이 동네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던 지나간 날들의 승부속에서 역력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 아-!"
그해 해동이 되자 고봉수는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렸지만 이로 인해서 좌찬현 사람들 간에는 경우 어둡고 염치없는 사람을 놓고 비유할 때 “미륵뜰 사람 저 먹은 공(죄)은 안다"는 말이 곧잘 인용되었지만,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이젠 이 말조차도 잊혀지고 말았다.

글/이인영(용인향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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