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옥현, 한송이, 한나래, 최경자 가족.(왼쪽부터)

“고고천변 일륜홍 부상에 높이 떠
양곡의 잦은 안개 월봉으로 돌고 돌아
어장촌 개 짖고 회안봉 구름이 떴구나
노화는 다 눈 되고 부평은 물이 둥실
이룡은 잠자고 잡새는 펄펄 날아든다.”

 -남해성 판소리 수궁가 중


“집안이 3대째 국악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합니다. 핏줄은 못 속이나봐요, 접하기 힘든 문화인만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내 형제, 가족입니다.”

1962년 처음으로 아쟁산조라는 국악 형식을 만들어 보급한 한일섭(1929~1973)씨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예능보유자 후보 남해성(78·본명 남봉화)명창의 아들, 손자 손녀들이 한자리에서 국악 한마당을 펼치며 3대째 국악의 소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6월 KBS Home 1TV 시사교양 국악한마당에 한옥현(50·처인구 고림동)씨의 대가족이 출연해 판소리와 아쟁 피리 장구 가야금 해금 소리의 아름다움을 들려줬다.

▲ 고 한일섭, 남해성 부부


■어머니는 명창 남해성

고 한일섭씨와 남해성 명창의 큰아들 한세현(53)씨가 국립국악단 민속악단 악장으로 활동중이며 피리를 전공했다.

한세현씨의 큰아들 한림(24·한양대학원1) 군은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아쟁을, 둘째아들 한빈(22·한양대국악과3)군은 해금을 전공했다. 또 고 한일섭씨의 둘째 아들 한옥현(50·고림동)씨의 큰딸 한송이(22·이화여대3)양은 가야금을 전공하고 둘째 딸 한나래(19·국립국악고) 양은 피리를 불며 3대가 국악 인생을 살고 있다. 

전남 화순 출신인 고 한일섭씨는 아쟁산조를 처음 만들어 보급했다. 이후에는 태평소 시나위를 만들어 풍물, 무속, 불교음악에서 사용되던 태평소라는 악기를 공연무대에서도 연주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 고 한일섭

▲ 한세현 연주 모습.

“남도음악의 거장인 아버님의 아쟁산조와 태평소 시나위는 남도지방의 무속음악에 근간을 두고 있지요. 아버님은 본디 판소리 명창이었지만 천재적인 음악 구성능력이 있어 수많은 신민요와 창극들을 작곡하셨고 아쟁산조, 호적산조를 냈으며 대금산조도 구음으로 구성하셨습니다.”

고 한일섭은 국악인들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에 젊은이들을 자기 집 다락방에 기거하게 하며 아쟁산조, 대금산조를 가르쳤다. 그때 공부한 제자들은 박대성, 박종선, 윤윤석 등이 손꼽힌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큰아들 한세현씨는 국악의 길에 뛰어들었다.

“큰 형님은 서울 국악예술고교에서 지영희씨에게 피리를 배우고 그 후 독학으로 피리의 일가를 이룬 이 시대의 달인입니다. 형님이 연주하는 산조는 피리 특유의 다양한 음색을 통해서 우리들 혈맥에 흐르는 전통적이고 동질적인 정서를 진하게 느끼도록 이끄는 매력이 있죠.”

또한 그림을 그리듯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명창으로 알려진 어머니 남해성 명창은 17세때 만정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춘향가를 익히고 박초월 명창으로부터 수궁가를 시사받았다. 또 85년 남원 춘향제 판소리 부문 명창부 대통령상, 94년 KBS 국악대상 판소리부문 대상 등을 수상하는 등 한평생을 우리 소리로만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어머님은 현재 전남대학교 국악과와 남원국악예술고등학교에 출강할 정도로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판소리를 전수하고 싶다며 고향에 내려가셨죠.”

남 명창 그녀의 60여년 소리인생은 판소리계의 위상 강화와 대중화를 이루는데 바치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국악사랑은 생명줄인 탯줄처럼 아들과 딸들을 거쳐 손자와 손녀까지 되물림 되면서 자연스레 전승되고 있다. 대대로 한 집안에서 국악인들이 나온 것은 보기 드믄 사례다.

집에서 막내인 한나래 양은 “어렸을 때부터 판소리나 민속악기를 배워 뭘 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할머니 큰아버지를 따라 소리와 악기에 관심을 갖다보니 국악인이 돼 있었다”며 웃었다.

▲ 할머니 남해성 명창.

사촌들도 국악가족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에는 모두 국악 얘기에 바쁘다. 특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한옥현씨의 조카와 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또 배움이 같았던 이들의 대화 내용은 각자의 악기소리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옥현씨는 “저는 부모님의 반대로 국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판소리와 장구 등을 집에서 배웠습니다. 지난해 기회가 돼 어머님과 형님, 조카와 딸이 함께 하는 무대에 섰는데 참 의미가 크더군요.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한 씨는 소리는 너무 힘들고 국악계 입문이 힘든 것을 알았지만 딸들의 재능을 막을 수 없어 적극적인 후원자의 역할을 했다. 7년간 두 딸의 서울 고등학교를 새벽마다 등교시키며 연습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올해 막내딸인 한나래양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한국음악과에 합격했다.

“아버지의 후배, 큰아버지의 후배가 된 자식들의 모습이 큰 영광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각자의 능력을 키우며 누구보다 연습에 임하고 있는 딸들이 대견해요. 재능의 피를 이어받아 끼도 있지만 피나는 노력 없이 얻는 연주는 없다고 봅니다.”

한씨는 이어 “할머니 덕에 자연스레 소리를 접하고 국악을 지키고 가꿔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공부하고 있는 조카와 딸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역할을 할겁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한송이양 하이서울페스티발 공연.(맨 왼쪽)

▲ 한림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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