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들어가면 생명을 다하고 쓰러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전엔 눈에 띄지 않던 풍경들. 길게 가로놓인 나무들을 놓치고 지나갔던 건 이게 아니어도 볼 것들이 많아서였을 게다. 잎이 달려 있을 땐 볼 수 없던 것들을 이 계절은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준다. 다른 걸 뽐내느라 숲이 보여주지 않았던 것도, 다른 걸 살피느라 내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도. 그래서 겨울 숲은 더 매력이 있다. 숲 산책은 겨울에도 기분 좋은 일이다.


지난 주말 자연학교 아이들과 광교산엘 올랐다. 땅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낙엽이 두텁게 쌓인 산길을, 누군가는 잽싸게 뛰어올라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미끄러지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느린 걸음으로 뒤뚱뒤뚱 올라가기도 했다. 같이 출발해서 같은 길을 갔어도 도착은 다 달랐다. 그래도 목적한 숲에는 모두 다다르지 않았는가!


겨울 숲속에서 아이들은 집짓기를 했다. 날이 추워서 몸을 많이 움직이는 활동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이맘때 같은 활동을 했던 기억이 아이들을 그쪽으로 재촉했다. 내친김에 숲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써서 집을 지어보라고 권했다. 주변을 휘 둘러본 아이들은 가장 가까이 쓰러져있는 나무를 먼저 집어 들었다. 처음에는 길고 짧음도 소용없이 주워 모으는 데만 열중하더니 어느새 그들 스스로 무언가를 터득해낸다.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기둥으로 쓸 만한, 굵으면서도 기다란 나무가 몇 개쯤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챈 것일까? 나무 찾으러 다니는 발길이 점점 더 분주해진다.


아이들의 진지한 건축 활동을 보고 있자니 내가 즐겨보는 책 <나무야나무야>에 실린 글이 떠올랐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도리․들보․서까래․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구해온 나무들을 얼기설기 세우는 동안 몇몇 더 어린 친구들은 나무기둥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재미있어한다. 굵은 나무 몇 개가 기둥으로 세워지면서 엉성한 공간이나마 제법 움막 티가 나자 꼬마목수들도 더 신이 났다. 이제 키가 닿는 데까지 짧은 나무와 가는 가지들로 지붕을 엮고 벽을 두른다. 만들어가면서 뭐가 먼저이고 뭐가 나중인지 그들 스스로 ‘일의 순서’를 알아나가는 게 보인다. 한참 지난 뒤 어설프긴 해도 드디어 나무움막이 완성되었다. ‘아지트’라고 하던가, 새로 만들어진 그들의 공간을 아이들은 그렇게 부르며 뿌듯해했다.


새참으로 나온 모과차 한 잔으로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다음 달에 만나면 그 곳에 다시 가보기로 약속했다. 손수 지은, 손수 세우고 엮은 나무움막이 잘 있는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조마조마할까. 비록 생명을 다해 쓰러진 나무들이지만, 그 전에 이미 숲속 곤충들의 ‘아지트’가 되었던지라 껍질마저 툭툭 떨어져나가는 나무들이었지만, 내 힘까지 빌려가며 힘겹게 옮겨 세운 나무기둥이 움막을 잘 지탱하고 있어주면 좋겠다. 다음달까지, 그다음 달까지,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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