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 오래 맛보지 못한 한국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의 포만감을 느껴본다.

유럽과 아시아의 접착점 실크로드의 시작이며 끝인 이스탄불은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다. AD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이전해 옴으로 도시의 번성기를 맞는다. 지정학적으로 이스탄불은 동서양 문화가 만나고 공존하는 곳으로 두 문화의 잔재들이 혼재되어 있는 곳이다. 1차 세계대전이후 수도가 앙카라로 이전되기 전까지는 정치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터키 제일의 도시로 남아있다. 영원한 수도 이스탄불.

우리는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블루 모스크-정식 명칭은 술탄아메드 1세 자미-의 거대함과 건축양식이나 기술들 종교적 파워 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주유적지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1~2km 반경 내에 있어 관광하기는 편했다. 히포드롬(로마 경기장)과 소피아 광장을 지나면 소피아 사원이 있다.

아야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예지라는 뜻이며 그리스 정교의 본산이다. 서기 360년 동로마(비잔틴)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세워졌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소피아 사원은 532년 니키의 난으로 소실된 것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복원을 시작, 537년 비잔틴 최고의 걸작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런 걸작품도 오스만트루크의 지배로 자미로 변경되어 모자이크에 회칠이 되고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다 근래에 와서 환원되는 수난을 격기도 했던 건물이다. 지금은 부분 부분 회칠을 벗겨내 원래의 모자이크 벽화를 볼 수 있다.

돔의 지름이 31m 높이가 54m의 거대한 건축물이 지금도 비잔틴시대의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모습은 문화재를 아끼고 보존하는 마음과 근래 숭례문을 화재로 잃은 우리들의 보존의식에 잘 대비되는 것 같다.

에레바탄 지하 저수지(지하궁전)로 발길을 돌렸다. 좁은 27개의 계단을 내려가 지하궁전에 다다라보니 거대함이 우리를 압도한다. 뿐만 아니라 시원함은 우리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음악이 흐르는 지하궁전은 또 다른 안식처 구실을 하기에 충분하다. 수많은 필-렛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유히 유영하는 모습도, 그 유명한 메두사의 두상이 놓인 위치 336개의 기둥은 각각의 모습으로 폭65m 길이 143m의 거대한 저수고가 지탱하고 있다.

지하궁전을 나와 톱프카 궁전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오스만트루크 제국의 궁전으로 1856년 압둘메짓 1세가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이전할 때 까지 400년간 제국의 궁으로 쓰여 진 곳이다. 근대 터키의 정치 중심이며 지금도 오스만 터키의 위용을 자랑하는 근위대 행진이 하루 한 차례 행하여 여행자에게 즐거음을 주는 곳이다. 제2정원의 하렘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되던 내궁으로 거세된 환관의 출입만 허용하던 곳. 지금은 도자기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제2정원 안으로 제3정원이 있는데 알현실로 쓰이던 곳이며 지금은 보물 전시관으로 술탄들이 사용하던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스탄불 여행의 꽃은 그랜드바자르(카팔르 차르쉬)이다. 실크로드의 종착점이며 시작인 콘스탄티노플을 번성하게 했던 상업의 중심지 세계교역의 모체는 단연 그랜드바자르에 있기 때문이다. 2000개가 넘는 상점은 지금도 성업 중이며 모든 관광객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서 보석류, 가축제품, 도자기류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된다.

그랜드바자르를 둘러보고 우리는 동양과 서양의 경계인 보스포러스 해협 크루즈 여행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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