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지를 즐기는 사람 중의 하나다. 쓰는 것뿐 아니라 받는 것까지도. 사실 편지라는 건 쓰는 중에도 흐뭇하지만 받아 보는 행복 또한 무척 크지 않은가!


  몇 해 전 여럿이 함께 하는 영성수련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식사가 끝날 때마다 차가 배달되었다. 워낙 특별했던 차였던지라 나는 아직도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걸 ‘편지차’라 불렀다. 편지차는 참가자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사랑과 격려와 공감의 메시지였다. 편지를 써 보낸 이도 이미 체험한 사람들이었기에 같은 공감대에서 읽는 편지는 차 한 잔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었다. 글도 향기를 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편지차는, 처음 접했을 때 생소함이 컸던 만큼이나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가슴 설레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이젠 편지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마음 나누는 친구들이 먼 나라에 가 있는 요즘은 소식을 바로바로 전해주는 전자우편이 고마운 수단이 되어 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후다닥 쓴 다음 툭 쳐서 보내고 마는 이메일과는 달리, 빈 종이에 글자를 써 내려가고 그것을 접어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기까지, 한참 동안 여운에 잠길 수 있는 손글편지가 참 좋았다. 하지만 그 또한 너무 오래되고 드문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펜으로 편지를 쓰는 시절은 아니고! 공식적인 글은 더더욱 컴퓨터의 힘을 빌리는 세상이고! 그래서인지 더욱더 내용에 따라 글이 향기를 품기도 하고 그렇지 않게 되기도 한다. 


  지난 달 중순 경 모 환경단체 주최로 열린 ‘생태적 관점에서 본 하천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가 및 용인시 하천과, 그리고 시민이 함께 모여 용인의 하천현황에 대해 발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토론회에서는 잘된 것은 칭찬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며,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부분에서는 서로 힘을 모으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덕분에 발제자로 참여했던 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토론회와 관련된 일이 갈무리될 즈음인 지난주, 시민단체 사무실에 들렀다가 우연히 편지 한 통을 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편지는 아니고 용인시에서 환경단체 앞으로 보낸 공문이었다. 토론회 때 건의된 의견에 대한 회신으로, 건의사항을 잘 반영하여 하천 생태 보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민․관 협력 체계 구성을 제안한다는 하천과의 입장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손으로 직접 쓴 글도 아니고 안부를 묻는 편지는 더더욱 아닌 딱딱한 문서였지만 집어 드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것은 한 장의 향기 있는 편지차로 내 마음에 다가왔다. 지금까지의 관행과는 다르게 주최 단체 앞으로 기꺼이 답변을 보내준 하천과의 작은 배려에서 정성과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오래되어 빛조차 바래버린 편지로 가득한 상자를 열어본 적이 있는가. 살짝 들치기만 해도 그 안에서는 추억이란 놈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것들 중 하나라도 꺼내보는 건 마치 내가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호기심이 발동되는 일이다. 물론 보다보면 ‘그 시절엔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참 진지하게 주고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때로는 픽-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 통의 편지차로 배달된 하천과의 공문도 세월이 지난 다음에 보게 되면 ‘시에서 이런 답변도 보내주었구나’ 싶어 픽- 웃음이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훗날엔 그 또한 추억 한 가닥으로 술술 풀려 나오게 되지 않을까. 흐뭇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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