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남 시민기자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올해는 시절이 좋아서 예년에 없는 풍년이란다. 품종에 따라서는 과잉생산으로 운반비도 안 나와 밭에서 갈아엎는 안타까운 일도 있다고 한다. 반세기 전만해도 가을이면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나락(벼)이삭을 줍는 할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다. 얼핏 멀리서 보면 한 폭의 명화를 방불케 할지도 모르지만, 땅 한  뼘 없는 서러운 삶에 그나마도 논밭 주인이 떨어진 이삭은 줍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그랬다. 우리나라 인심이 그랬다. 이웃 간에 훈훈한 정이 오갔다. 양식이 떨어지면 서로 꿔주기도 하고 여유가 있으면 그냥 퍼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어려웠던 보릿고개를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나가 벼이삭을 주워서 절구에 찧으면 며칠 양식은 족히 해결이 되었다. 인심이 후한 논주인은 이삭 줍는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벼이삭을 흘리고 갔다. 없는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려는 배려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락이삭이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벼를 낫으로 베는 것이 아니라 농기구(콤바인)로 수확을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부대자루 속으로 싹쓸이를 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삭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과연 줍는 사람이 있을까?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예부터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도 있다만, 열 사람이 밥 한술씩 보태면 한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이다. 본디 자기 총수입의 10분의1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한 구제로 써야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질병으로, 배고픔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득 선친의 말씀이 생각난다.

“땅은 만 사람의 공동관리 품목이다. 한 사람이 아무리 많은 땅을 사유(私有)하고 있어도 막상 자기가 소유할 수 있는 실 평수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대통령이나 산골촌부나 똑 같다는 것이다. 즉 서면 발바닥 면적만큼, 앉으면 엉덩이 평수만큼, 누우면 자기 키 만큼 그 이상은 아무리 기를 써도 차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그대로 고스란히 반납하고 가야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수확의 계절에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남기는 생활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이 있었으면…. 다행히도 요즘 세상에도 뜻있는 단체나 기관, 개인이 이러한 정신에 동참하여 나눔의 손길을 펴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올해도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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