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지난오월 계단을 내려오다 삐끗하는 바람에 발목을 다친 적이 있다. 그럴 땐 다른 어떤 치료보다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특효라고 하거늘 나는 바로 다음날도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픈 걸 무릅쓰고 나가고 말았다. 무식이 병을 키웠다고 해야 하나, 대수롭지 않게 다친 일이 그 후 두고두고 시간을 끌면서 통증을 달고 다녔다. 여러 가지 방법을 쓰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한동안 절뚝거리면서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


  그런 내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친구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해왔다.

  “내가 발목을 완전히 낫게 해줄게. 시골 갔다가 특효약을 알아왔거든.” 

  “특효약? 그게 뭔데?”

  “탱자! 탱자를 설탕에 절여놨다가 나중에 그 즙을 먹으면 삔 데 아주 좋대.”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때이니 탱자도 예외는 아닐 게다. 하지만 따뜻한 곳을 더 좋아하는 탱자나무는 이쪽보다는 남부지방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다. 아랫지방에서 자란 나한테도 탱자는 흔하디흔하던 놀잇감이었다. 집 주변에 숱하게 자라난 탱자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우리 남매 여럿은 그것이 노랗게 익기도 전에 가시 사이로 손을 비집고 넣어 양쪽 주머니가 불룩해지도록 따 넣었던 기억이 난다.


  탱자를 먹는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어서 싫증이 나도록 갖고 노는 게 전부였고, 그러고도 마룻바닥에 좀 더 굴러다니다가는 버려지는 것이 탱자의 일생이기 일쑤이던 시절이었다. 건강하게 뛰놀던 우리들에게 ‘먹지 못 한다’는 건 곧 ‘쓸모없음’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러던 탱자가 약이 된단다. 깜짝 놀라 여기저기 뒤져가며 찾아보았다. 그런데 탱자가 ‘삔 데 약이 된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탱자가 습진이나 두드러기에는 훌륭한 약이 된다는 사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시켜 주신다. 옛날부터 두드러기가 생기면 탱자에 물을 붓고 달인 다음 그 물을 먹기도 하고 몸에 바르기도 했다고. 탱자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는 비염으로 인한 코막힘을 뚫어주므로 잘 때 머리맡에 두어도 좋단다. 또 잘 익은 탱자를 한 번 정도 잘라서 설탕에 재어두면 샛노란 즙이 배어나오는데 그걸 차로 마시면 소화도 잘 되고 가래 삭이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세상에 쓸모없는 거라곤 없다지만 탱자는 그 색깔이 가져다주는 황홀감이나 놀잇감으로서의 쓰임 외에는 다른 쓰임이 없는 줄 알고 살아왔는데. 심지어 탱자나무의 가시는 삶은 다슬기를 빼먹는 데라도 쓰지만 탱자는 도통 쓸데가 없는 열매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래서 그런가, 뒤늦게 알게 된 탱자의 쓰임새가 더 반갑다.

 


  탱자에 대한 정보를 전해들은 며칠 뒤 나도 우연히 스무 개 정도의 탱자를 주울 기회가 있었다. 깨끗이 씻었을 때 드러나는 눈부신 노란색을 만끽한 뒤 지금은 설탕에 푸욱 절여놓고 기다리는 중이다. 세상에 그 무엇도 쓸모없는 건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줄 탱자의  멋들어진 ‘활약’을 기대하며.

노랗게 익은 탱자

탱자열매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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