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젠 가을도 체면을 챙겼는지 아침저녁으로 옷깃 사이로 으스스함을 느끼게 한다. 천시(天時)는 어김없이 지구의 지축을 기울여 이 땅에 높다란 푸른 하늘과 거둠의 시절을 끌어다 놓아 주었다.

지금 이산 저산에서는 자연이 붓끝으로 그려낸 단풍잎들이 방에 갇힌 나를 끌어내려 한다. 때 맞춰 은둔거사를 자처하고 잠적한 Y사장의 “가을 낙엽들의 경염(競艶)이 볼만하니 속진(俗塵) 뒤로하고 맑은 바람에 살찌우시라”는 꼬임의 전화가 내 마음을 잔뜩 흔들어 놓았다.

알려준 대로 버스 타고 내려서 걷고 하여 찾아든 그곳은 빼꼼이 하늘만 쳐다보는 높은 산 밑 골짜기 옆의 암자이였다. 다섯 시간의 노독을 핑계 삼아 산채공양을 끝내곤 방안 가득 찬 오존 속에 쌓여 만사를 잃었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독경소리에 나를 다시 찾아 암자 옆 들쭉날쭉한 바위들을 잡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흐르는 맑은 물 속에 손끝을 밀어 넣었다. 손끝을 타고 오르는 차가움.

내 얼굴이 얼비치며 손끝을 무언가가 건드린다. 하얀 배를 보이는 피라미 떼들이 손님인 나를 환영하듯 우우하고 떼 지어 내 옆으로 왔다간 이내 저 위쪽으로 올라간다. 두 손을 담가 한 움큼 물을 받아 얼굴을 닦는다. 찌르르한 차가움이 얼굴을 옥죈다. 몸으로 퍼진다. 집에서 ‘아리수’로 세수할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사람의 손을 거친 물과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은 산속의 물과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바보로 만든다. 다시 한 움큼 담아 얼굴과 목둘레에서 귀 바퀴까지도 찬물로 세례를 하다가 분명 환청 소리를 들었다.

“왜 이토록 차가움을 당신의 집 뒤 금어천에서는 못 느꼈소?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요?”

“글세, 당장 뭐라고 대답해야 옳을지 모르겠소. 하지만…”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십년도 넘는 일이다. 북적대는 서울거리를 피하려고 찾은 이곳 고림동. 집 뒤로 넓지 않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물 속에는 피라미며 다슬기에 고동도 있었고, 비온 뒤엔 꼬마들의 물놀이장이 되기도 한다는 중개인의 말보다 피라미 노는 이 개울에 반해 터를 잡은 것이 엊그제 같았다. 하지만 이젠 집 앞 뒤 시멘트 정글로 앞산도 없어지고 빈 땅에 재변들이 일면서 연기 안 나는 굴뚝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맑은 금어천을 볼 수 없게 되었고 달라진 차가움 따라 피라미며 고동의 모습은 신화 속으로 사라지면서 속이 안 보일 풀숲으로 바뀌었다.

조금 전의 환청도 꼼꼼히 따져보면 누구 잘못인지 가늠이 안 간다. 세계 인구 80억을 따지기 앞서 우리가 사는 이 남한 땅이 303억1200만평이라고 하나, 이 넓은 땅 어느 곳 인간의 손발이 안간 곳이 없으니 우리 모두의 책임 아니냐고 물으면 책임 전가일까?

올해도 말아가리산 속에서 흐르기 시작하는(길이 6킬로라하던가) 이 금어천이 찾아드는 경안천을 살리려고 ‘2008년 경안천 축제’가 열렸다. 금어천 생태습지에서 경안천 발원지까지 탐사하는 행사, 경안천 따라 자전거 타기, 치어방류, 그림그리기·글짓기, 뗏목타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졌다고 하나 시선 끌기 행사에 그쳐 아쉬웠다는 뒷 소식들보다 ‘작지만 큰 위협 용인 경안천 한강 상수원인 팔당 유입량 1.6%에 불과한데 오염비중은 16%’ 라는 작년 3월 22일자 C일보 기사도 다시 기억해 둘 일이다.

경안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금어천 골짜기마다 버려지고 썩어가는 생활 쓰레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덩달아(?) 맑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시민의 소견이지만….
/시민기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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