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시인께서야 굳이 꽃 하나를 두고 표현한 건 아니겠지만,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식물에게는, 또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생태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도 자주 묻게 되는 물음이다.

얼마 전 인터넷신문 ‘굿모닝용인’의 한 칼럼에서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댓글을 보았다. 잎 모양이나 꽃 색깔 등 약간의 차이만으로도 서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국화과(科) 꽃들은 일부러 찾아보거나 세밀히 비교해보지 않는 이상 이름을 가려 불러주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자랄 때 우리는 이런 꽃들을 모두 ‘들국화’라 부르지 않았는가. 하지만 막상 식물도감을 찾아보면 ‘들국화’란 꽃은 나와 있지 않다. 왜일까? 들국화는 들이나 야산에 피어 있는 국화과 식물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구절초’는 9월에서 10월쯤 줄기 끝마다 한 송이씩 큼직한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흰빛, 연분홍빛 꽃을 피우지만 모양이나 빛깔이 기후나 풍토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한다. 산구절초, 한라구절초 등 특징에 따라 약간씩 다른 종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조선국(朝鮮菊)이라고도 불렸다는 구절초는 단오 때 다섯 개였던 마디가 중양절(음력9월9일)이 되면 아홉 개가 되는데 이즈음에 잘라서 말려 쓰면 약효가 좋은 걸로 유명하다.

▲ (왼) 쑥부쟁이 (오른)벌개미취

어린순을 나물로도 먹는 ‘쑥부쟁이’는 주로 산이나 들의 축축한 곳에 자란다. 구절초에 비하면 크기가 좀 작은 연보랏빛 꽃을 7월부터 10월까지 피운다. 우리가 산이나 길가에서 흔히 보는 종류는 ‘개쑥부쟁이’로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열매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쑥부쟁이와 다른 점이다. 흰 꽃을 피워 계란꽃(개망초)과 닮아 보이는 미국쑥부쟁이가 요즘은 자주 눈에 띈다.

쑥부쟁이와 많이 닮은 ‘벌개미취’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그래서인지 ‘고려쑥부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지방도 있다고 한다. 구절초나 쑥부쟁이보다 좀 이르게 초여름(6월-9월)부터 연한 보랏빛 꽃을 피운다.

긴 타원형 잎이 눈에 띄는데, 쑥부쟁이와는 잎 모양으로 구별하는 게 오히려 쉽다. 관상용으로 무리 지어 심어 기르는 곳이 많다. ‘개미취’는 깊은 산의 축축한 곳에서 자라서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가을과 함께 떠오르는 꽃, 들국화. 꼼꼼히 살펴보면 생긴 모양이 다 달라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고, 부르면 부를수록 자꾸만 더 불러주고 싶은 예쁜 이름들이 있다는 걸 이젠 나도 안다. 구별해서 이름을 불러주려면 더 자주 보고 더 자세히 살피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물론. 하지만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가을을 아름답게 하는 꽃이 바로 들국화가 아닐까. ‘들국화’라는 이름이 나는 참 수수하고 정겹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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