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거미
거미가 참 징그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징그러워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른이라고 해서 어린이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인지 '곤충이냐, 아니냐'를 두고 아리송해 할 때를 빼고는 거미가 우리의 관심을 끈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거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한 마리의 아름다운 거미를 만나면서부터다.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워, 여덟 개의 다리만 아니라면 거미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거미, 바로 그림책 "소피의 달빛담요"(에일린 스피넬리 글/제인 다이어 그림/파란자전거)에 나오는 집거미‘소피’다.


소피는 예술가였다. 그녀가 만든 거미줄은 이 세상 어떤 거미줄보다도 아름다웠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소피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어느 곳도 반겨주는 곳이 없다.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는 젊은 여인의 뜨개질 바구니 속에서 쉬게 된다. 그런데 그 여인은 털실 살 돈이 없어 곧 태어날 아기의 담요를 뜨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아기는 너덜너덜하고 우중충한 주인아주머니의 담요를 덮게 될 것 같았다. 소피는 담요를 짜기 시작한다. 달빛에다 별빛을 조금 섞어, 향기로운 솔잎 이슬 조각과 밤의 도깨비불, 옛날에 듣던 자장가, 장난스런 눈송이까지 넣어서, 그리고 담요의 마지막 귀퉁이에는 바로 자신의 가슴을 넣고서.


소피는 생애 최고의 작품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사랑이고 희생이었다. 우리들이 하찮게 여겨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거미가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기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거미는 더 이상 징그럽거나 싫은 존재가 아닌, 어머니의 마음을 지닌 따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림 그린 이는 소피를 그릴 때 '육아거미'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거미들은 먹이를 잡기 위해서 거미줄을 사용하는데, 육아거미는 거의 한 가지 목적, 아기 거미를 숨기고 보호하기 위해서만 거미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거미 중에는 사람 이상으로 뜨거운 모성애를 지닌 거미가 많다. 예컨대 ‘애어리염낭거미’는 밀폐된 방안에서 알을 낳고는 새끼들이 깨어날 때까지 알주머니를 지키다가 깨어난 어린거미로 하여금 자신을 뜯어먹게 하고는 죽는다고 한다.

요즘도 밖에 나가면 곳곳에 무당거미들이 보인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기 전에 알 낳을 준비를 하느라 무당거미들이 서두르는 때가 되었다. 어미무당거미는 알을 낳기 전에 침대보를 깔듯 거미줄을 깔고, 그 위에다 알을 낳고, 산란이 끝나면 다시 거미줄을 뽑아 알을 덮은 뒤 나무껍질이나 낙엽, 곤충의 사체를 이용하여 알주머니가 아닌 척 위장해놓을 것이다. 그러고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알을 지키다가 추운 날씨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우리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심지어 징그럽다며 멀리하더라도, 애틋하고 아름다운 거미의 모성애는 변함없이 저들의 세대를 이어가는 끈이 되고 있다. 또한 거미에 대해 갖고 있는 좋지 않은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해충’이라 부르는 벌레들을 먹고사는 거미의 타고난 습성 덕분에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거미의 덕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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