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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엽서 - 호암미술관에서

바람이 자못 차가워졌다. 덥다 덥다 했는데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긴팔 옷을 입게 하고 덧옷을 찾게 한다. 커튼을 손질해서 미리 달아놓은 게 흐뭇해지는, 서두른 보람이 있었다. 이제 여름의 끝자락이 아닌 그야말로 가을이다.

 오전 일찍 호암미술관엘 찾아갔다. 구절초와 쑥부쟁이 한 무더기가 반기는 작은 길을 걸어가서 숨어 있듯 자리 잡은 찻집에 가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오늘의 길동무와 갑작스런 찬바람을 이야기하고 읽은 책 이야기, 사람들 이야기를 했다.

 햇살이 따가운 게 아니라 벌써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하면서 미술관 앞마당을 걸었다. 마치 옹기종기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듯 모여 있는 벅수들의 모습과 표정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고나서 그 곁을 지나 연잎들이 바람을 감고 서있는 연못을 돌아 올라가서 부르델 정원으로 갔다. 그 곳은 벚꽃 필 때를 빼면 늘 오가는 사람이 적어서 고즈넉할 때가 많다. 작은 분수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줄 지어 서서 굵기를 더해가고 있는 나무들의 풍경이 멋지다.

 다시 걸어 올라가서 ‘그림 속의 글’ 전시회를 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갔다. ‘그림 속의 글’은 한국의 전통 회화 41점을 통해 그림과 글의 관계를 파악하며 동양의 시(時), 서(書), 화(畵)의 일체 사상을 이해하는 기획의 전시회였다. 그림 속의 인물들, 서체, 풍경, 그린 이와 글쓴 이 등을 찬찬히 살펴보는 재미가 괜찮았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 전시실 조명이 다른 곳보다 더 어두웠지만 그만큼 더 가 가까이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새롭게 느껴지는 우리의 옛 그림들이 있다.

 2층 넓은 창가에서 건너편 산과 호수를 바라보는, 관람 중의 여백을 잠시 즐겨도 좋다. 바람이 지나는 호수가 일렁이며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물의 흐름을 따라 보는 이의 마음도 그렇게 일렁이며 반짝인다. 물 따라 바람 따라 물같이 바람같이...... 잠시 잔잔하던 수면이 다시금 눈부시게 반짝인다. 반짝이는 물결을 매만지듯 애틋한 이름들을 그리움으로 호명해본다. 기억들은 또 다른 물무늬를 그리며 반짝인다.

 언덕을 내려와서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를 지나 미술관 매표소로 나와서 그 앞부터 큰 해태상이 있는 곳까지의 벚꽃나무 길은 용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이다. 이정재와 전지현이 함께 나온 영화 <시월애>에서도 나왔던 길, 드문드문 문인석이 벚꽃나무 사이사이에 숨어 있듯 서 있고 울타리 바깥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길...

그 길 끝에서 호수를 바라보니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호수가 바람에 일렁인다. 구름은 경쾌한 붓놀림처럼 이리저리 흩어진다. 바지랑대 높이 기댄 줄에서 바람 휘감으며 잘 마른 빨래처럼 마음도 영혼도 평안하다.

 모쪼록 사는 곳 가까이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풍경 한 자락 품어 보시기를...

 (월요일 휴관, 화~금 10시~18시, 일반 4천원, 학생 3천원)

   

   
벅수
   
연꽃정원가는 길
   
호수

노영미 시민기자  romiya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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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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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후 2008-10-23 10:39:24

    며칠은 바쁘다 싶게 살았더니 언젠가부터 거리의 낙엽은 백열등 조명을 쏘인듯 하네요.
    기자님 글 따라 호암미술관을 다시 한번 둘러보니
    코끝이 쨍~ 한것이 나도 그곳에서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는 소망만 간절하네요,
    이번주는 어딘가로 갈수있으려나..   삭제

    • 모모 2008-10-01 08:26:21

      어제는 운전하다가 빨간불일때 얼른 휴대폰을 꺼내 하늘을 찍었습니다. 제 핸드폰에는 하늘 사진이 몇장있습니다. 주로 가을에 찍은것 같습니다. 그만큼 예뻐서 놓치기 싫었죠... 사진이 참 잘 나왔네요.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희원 주변으로 늘어서 있었던 석상들이 참 인상깊었었는데....아이들 데리고 한번 더 다녀오고 싶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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