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식물이요~~”

“어른들이 차로 끓여 마시는 거요~”

“라벤더, 로즈마리, 페퍼민트 같은 거요~~”

자연학교에 오는 초등학생들에게 허브가 뭔지 물으면 어린이들은 대개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물어본다.


“그럼 우리나라 식물에는 허브가 없을까?”

“…….”

‘허브’라는 말 자체가 외래어라서 그런 걸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산을 오르다보면 산자락에서 독특한 향내가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이 향이 어디서 나는 거지?’하고 냄새의 진원지를 찾아가다보면 발길 닿는 데는 영락없이 초록풀이다. 흔히들 말하는 허브라고나 할까.


‘푸른 풀’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 허바(Herba)에서 유래된 허브(Herb)는 ‘향과 약초’를 의미하는 말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잎이나 줄기가 식용과 약용으로 쓰이거나 향과 향미로 이용되는 식물’로 정의된다.


요즘 어린이들이 흔히 알고 있는 허브는 라벤더, 로즈마리, 페퍼민트, 레몬밤 등이다. 이처럼 꼬부라진 이름을 가진 외국식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허브가 많다는 사실이 어린이들에겐 아직 낯선가 보다. 생활 속에서 양념으로 흔히 쓰는 생강, 마늘, 계피, 초피가루, 민간요법에 약초로 쓰이는 쑥, 익모초, 게다가 단옷날 머리 감는 데 쓰던 창포까지, 알고 보면 모두가 허브식물인데!


우리나라에서 허브는 요리의 향과 맛은 물론 영양을 더하기 위해서 주로 쓰여 왔다. 살균효과가 있어 식품의 보존성을 높이는 데도 사용되었다. 향이 해충의 피해를 덜어주기 때문에 방충제로도 쓰였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기분 좋은 향기를 가지고 있어 방향제를 만드는 원료로도 쓰여 왔다.


우리나라 허브의 역사가 단지 그뿐이랴. 우리나라에는 역사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허브가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할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풀인 ‘마늘 스무 통과 쑥 한 자루’를 주면서 그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 일렀다. 곰은 잘 견뎌내어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견뎌내지 못해 사람이 못되었다. 그 후 웅녀는 더불어 혼인할 사람이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이 사람으로 변신, 웅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가 단군왕검이다.


예로부터 쑥과 마늘은 나쁜 것을 물리쳐준다고 여겨졌다. 마늘의 강한 냄새는 나쁜 귀신이나 액을 쫓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쑥을 태우면 그 집의 나쁜 기운이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여하튼 쑥과 마늘은 건국신화에까지 등장하는 뜻 깊은 식물이다. ‘우리나라’란 말과 ‘최초’라는 말과 ‘허브’라는 말의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허브’는 “쑥과 마늘”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어린이 친구들 중에 단군신화에 나오는 식물이 하필이면 왜 ‘쑥과 마늘’이었는지 묻는 친구가 있다. 흐음, 쑥과 마늘을 날로 먹었을 때의 맛 때문일까. 혹시라도 그 쓰고 매운 맛이, 인간이 되기 위해 참아야 하는 고통과 시련과 인내를 뜻하는 것이었을까. 하긴, 굴속에서 먹고 견뎌야 하는 식물이 쑥과 마늘이 아니고 라벤더나 로즈마리, 페퍼민트, 뭐 이런 것이었다면 백일쯤은 호랑이도 거뜬히 견뎌내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곰과 호랑이 외에, 누구라도 다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만약 그랬다면 세상이 전혀 달라졌겠지!


단지 쑥과 마늘에서 시작된 것이 우리나라 허브의 역사이지만 그 쓰임을 살펴보면 나무나 풀 중에 약이 되지 않는 식물은 드물다. 처음 하늘이 열린 때가 언제였더라. 건국 이후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집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먹을거리가 되고 약이 되고 향기까지 뿜어내는 허브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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