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쾅거리는 어린 발자국들은 간데 없고 굳게 잠겨버린 교실너머로 먼지내린 칠판이 보인다.
3년까지만 해도 팍팍한 가구단지 한 틈에선 새싹들의 노래소리가 울리고 운동장에 선 체육수업이 진행됐을 텐데도 시멘트로 발라버린 운동장과 낡은 교실앞에서 그날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수지읍 동천리 염광원분교터, 나환자들의 자녀를 위한 분교로 활용됐던 염광원분교는 지난 96년 폐교됐다.
빼곡이 들어찬 가구 공장, 도매상 사이에 작은 건물하나로 교육을 대신하던 건물이 이제는 낡을대로 낡아 2층만 간간이 마을회관으로 이용될 뿐이다. 운동장은 간데없고 새롭게 덧입혀진 시멘트 위로 차들만 나란히 주차해 있다.
언뜻 지나가면서는 도저히 학교터라고 알아보지 못할 흔적 사이로 구석 한 켠에 걸린 문패가 이 곳이 염광원분교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96년 6월 폐교 이후 용인시가 주민 공공이용시설로 무상 임대해 오고 있지만 새로운 투자에는 교육청과 용인시가 서로 미루고 있을 뿐 활용도는 극히 미미하다.

원삼면 목시리 끄트머리인 안성 경계지점에는 염광원분교 보다 조금 큰 학교가 낯선 간판으로 인사한다. 청룡분교터다. 이제는 수원교육청 재산으로 분류돼 청소년수련원으로 활용중이다.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자 미래였을 학교터가 그나마 타시군의 것으로 바뀌며서 주민들은 그저 굳게 닫힌 교문만 바라볼 뿐이다.

다시 남사면, 통삼리 깊숙한 곳에 91년 폐교한 서촌분교, 수원의 수원중장비운전직업전문학교에 유상 임대돼 활용중이다. 폐교 당시에는 수원교구 천주교유지재단 가톨릭청소년문화원으로 이용되려 했으나 임대료가 비싼이유로 오늘의 중장비직업전문학교가 들어오게 됐다. 서촌분교 임대료는 월 243만원꼴로 연간 2911만5천여원, 주민들은 학교터를 바라볼 때마다 '농촌을 경시하기 때문에 학교를 없앤다'라는 원망을 지울 수 없다.
관내 3개교에 이르는 폐교현황은 대충 이러하다.

청룡분교는 수원교육청으로, 염광원분교는 용인시에 무상으로, 서촌분교는 유상으로 임대돼 운영된다. 폐교된후 아무도 도맡아 관리해 주지 않는 시설들은 낡을대로 낡아 동네의 흉물로 변해만 간다.
이제 앞으로 몇 개의 학교가 이들 폐교대열에 보태질 예정이다.
97년말 분교장으로 개편한 원삼면 두창분교, 백암수정분교, 구성동진원분교 등 1백명미만의 초교와 20명미만의 분교가 그 대상으로 도마위에 올려져 있다.
그러나 이미 폐교된 학교에 대한 미미한 활용수준, 지역교육 및 지역사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 상황 등은 주민들로 하여금 농촌교육, 지역교육을 더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문닫은 학교활용촉진법을 제정해 임대료하향조정, 활용방도개선 등을 통해 폐교활용을 활성화하겠다고 뒤늦게 밝혔지만 얼마만큼 달라질지는 지켜 볼 일이다.
"가가호호 설립자금을 기탁해 만든 학교가 왜 주민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을 닫아야 한단 말입니까. 콩나물 교실에서의 도시형 수업이 아닌 농촌형 교육은 정녕 필요없단 말입니까"
97년 분교장으로 개편된 두창분교 학부모들은 98년 통폐합 절대반대 학부모 연대모임을 결성, 학교지키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때로는 교육청 관계자들의 멱살을 잡기도 하고, 큰 언성이 오가기도 했다.
교육청측은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일뿐 지역 여론은 이미 기울었다고 밝히지만 더 이상 서둘러 폐교를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분교장으로 격하된 학교의 학생들은 상당수가 희망을 뒤로하고 빠져나갔다. 98년 34명에서 올해는 29명 수준, 교육부의 별다른 농촌학교 육성화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학생수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단 두창분교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 소규모 농촌학교들의 모습이나 다름없다.
교육청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02년까지 2017개교가 대상에 올랐다. 이들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의 주민들은 왜 농촌교육을 저버리냐고 항변한다.
작고 자연친화적인 교육은 물론 가까운 곳에 안심하고 학교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교육부의 경제적 논리에 근거한 학교구조조정으로 오히려 이농이 부추겨지고, 농촌이 피폐화 된다는 우려도 높다.
학자나 교수들은 주민들이 원한다면 폐교할 수 있지만 반대를 무릅쓰고 교육시설을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물론, 용인교육청의 고민도 적지 않다. 현재 폐교대상에 올라있는 학교들을 인근 학교로 통폐합하더라도 과밀학급이 되지 않고, 같은 농촌지역이기 때문에 마이너스 보다는 오히려 사회성 교육, 인성교육, 단식수업 등으로 교육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폐교된 학교를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하겠다는 다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과 한 호흡을 해 온 학교를 없애겠다는 교육부의 논리가 주민들에게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과제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학교는 그 지역의 희망이요, 공동체의 중심으로 자립잡고 있기 때문이다. 수치와 통계에 기반한 교육정책보다는 학생과 지역에 기반한 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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