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경남의 겨울밤은 유난히도 춥고 길었다. 특별한 생산품도 없고 발전할만한 고장도 못되는 곳이었다. 다만 조선종이(한지)가 유명하다고 들었다. 그런 추운 겨울밤이면 동네 동갑내기 몇몇 처녀들이 모듬밥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다. 오죽이나 먹을 것이 없으면 그럴까 하겠지만 참석해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시골은 저녁밥을 어둡기 전에 먹기 때문에 밤 9시쯤 되면 입이 심심해진다. 한 달에 한두 번 날짜와 시간을 정해서 부모님이 큰집 제사에 간다든지 다른 일로 집을 비우는 일이 있으면 그 집에서 모인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홀어머니 집으로 모인다. 핑계는 수놓는 일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대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만가만 하면 들키지 않는다. 또 알아도 어머니들은 눈감아 준다. 모이는 수는 대개 여섯 명 정도다.

각자 쌀, 삶은 보리쌀, 동치미 무, 얼음이 둥둥 뜨는 동치미 국물, 멸치 젓국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짜고 매운 시퍼런 배추김치, 간혹은 어른들 밥상에서 남은 갖은 양념한 깻잎김치나 대구알젓이라도 갖고 오는 친구가 있는 날은 그야말로 금상첨화이다.

쌀을 한데 모아서 씻어 솥 밑에 보리쌀을 깔고 쌀을 앉히고 솥 한쪽에 된장 뚝배기를 살짝 파묻고 갈비 불을 지핀다. 된장은 이 고장 명물인 짚장을 빡빡하게 풀고 멸치 한두 마리 넣고 대파를 숭숭 썰어서 넣는 것이 고작이다. 국물 없이 수저로 뚝뚝 떠서 밥에 착착 발라서 먹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매 번 두 사람씩 교대로 밥을 짓는대 방에서는 수는 놓지 않고 수 바구니를 저만치 밀어놓고 수다를 떨며 부엌으로 난 사이 문 쪽으로 연신 재촉이다.

“갈비 애끼지 말고 때라! 밥이 와 이리 늦노!” 하고 재촉을 하면
“용천하네! 문디이 가시나아들! 걸뱅이 헌 배를 찼나. 초저녁에 묵은 밥은 다 오데로 가고 저 야단이고!.” 하며 부엌에서는 맞장구를 친다.

“된장은 짚장 이가 청국장이가?”
“오냐 오늘은 짚장 일세 귀한 메르치 한 마리 옇고(놓고) 파 넣고 쌀뜨물 톡톡하게 받아 붓고 솜씨 있는 대로 다 부릿데이(부렸다)”

“두 사람 묵다가(먹다가) 세 사람 죽어도 모르겠다. 이 말이다.”
“하모하모(그래그래). 그런데 한 사람은 와 많노! 두 사람 다 죽는데 빙시이(병신) 같은 기이(것이). 산술도 까먹었나”

“하하 호호 히히...”  소리를 죽여가면서 처녀들은 깔깔거린다. 마음이 급해서 뜸도 덜 진 밥을 골고루 섞어서 큰 놋 양푼이에 퍼담고, 사람 수대로 수저를 꽂아 보글보글 끓는 된장 뚝배기와 함께 양철 두레상(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게 만든 큰 상) 위에 올려놓는다.

“자-자- 어서 오이라. 많이기다렸제? 보자- 모가지가 얼마나 길어졌노?”
“아이고! 춥은데 밥 하이라고 욕 봤데이. 보시다 시피 모가지가 요렇게 학 모가지가 됐네. 하 하 하.....”

농담을 주고받으며 모두들 둘러앉아 꿀맛 같은 밤참을 먹는다, 밥이 입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씹을 사이도 없이 술술 넘어가 버린다.

"야아들아! 오늘 이 짚장 대기 맛있네. 뉘 집 장이고? ”
“물어보나 마나지 짚장 카믄(하면) 윤이네 아잉가베”
“우째 띠우길레 요리도 맛있는지 몰라. 시집가기 전에 윤이 어머이한테 좀 전수를 받아야겠다”
“아이고 꼴에 시집은 갈 모양이네?”
“뭐라고! 뉘고! 지금 그 말한 베라먹을 가시나아는!”
“내다! 우짤끼이고. 니는(너는) 짚장 안 배워도 내한테만 잘 비이면 되는기라. 알았나? 어차피 우리 집에 시집 올 건데, 이 시누님만 잘 모시면 돼. 하 하 하”

모두들 밥 먹다가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는다. 제잘거리면서도 밥 수저는 쉴 새 없이 입으로 들락거린다. 밥을 고봉으로 한 술 폭 떠서 그 위에다가 길게 찢은 시퍼런 김치 한 끝을 척 걸쳐 얹고, 왼 손으로는 김치 줄기를 잡고 하늘을 쳐다보고 입으로 갖다 넣는다, 그리고는 된장을 한 술 똑 떠서 입에 넣고 씹으면서 동치미 국물을 떠먹고 길게 쪽쪽 썬 동치미 무를 어적거린다. 그 맛을 무엇에 비하랴. 임금님의 수랏상인들 이렇게 맛이 있을까.

긴 긴 겨울밤을 다 큰 가시네들은 가끔 이렇게 모여서 부산을 떨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한림에게는 새로운 추억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고향 모습을 70세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한림은 생생하게 회상하며 세밀하게 그림으로도 그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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