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말해 본다 - 허울뿐인 저상버스 운용실태

2. 교통약자를 위한 계획 없는 도시, 용인의 자화상 -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은 의뢰중?

3. 대안은 없는가? - 교통약자 위한 시조례 제정의 당위와 그 방안

차도를 달리는 휠체어를 본적이 있는가? 무심코 지나쳤던 광경엔 평범한 권리를 함께 하지 못하는 이웃들의 모습이 있다. 본지는 지금껏 외면당해온 용인시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현실을 밝히고 함께 사는 용인의 청사진을 그려 보고자 한다.

시민 12만명에 1대꼴… 증차계획 없고 운행시간도 들쭉날쭉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몸이 불편해 전동휠체어를 타는 강석문씨(47·공세동)는 오늘 또 ‘포기’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지인이 알려준 문화교실을 가고 싶어도 그곳까지 갈 차편이 없는 것. 김량장동에 위치한 문화교실까지는 버스로 불과 20분 거리지만 강씨의 집에서 그곳까지 가는 차편은 저상버스 한 대가 없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콜센터 차량 역시 주말에는 운행하지 않아 강씨가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장애인콜센터 차량을 이용하려 해도 3일전에는 예약을 해야 하죠. 갑작스런 일이 생길 때는 정말 답답해요. 주말이 되면 아예 이동수단 자체가 없구요. 사설 콜밴을 부르면 집에서 수원역까지 가는데 편도만 4만원이나 든답니다. …”

≫한겨울에 두 시간 기다린 저상버스...  

뇌병변으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학현(26·동백동)씨는 작년 겨울 몹쓸 경험을 했다. 백화점을 들리기 위해 저상버스를 기다렸지만 두 시간 반을 기다려도 타지 못해 결국 ‘포기’했던 것. 용인시에 하나 밖에 없는 저상버스노선 조차 그는 이용할 수 없었다.

“저상버스야 분명 왔었죠. 문제는 서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는 거죠. 그 후로 다시는 버스를 탈 시도를 안했어요” 정류장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이씨는 손을 흔들어도 서지 않는 저상버스를 보며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한다.

강씨와 이씨는 왜 평범한 시민들처럼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일까. 용인 시민이 누구나 평범하게 누리는 권리가 그들에게는 왜 보장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이 지금도 삶의 수 많은 기회와 도전들을 ‘포기’해야 하는 까닭은 이동권이 확보되지 못한 차별적 현실에 있다.

≫83만 인구 용인, 저상버스 노선 하나에 고작 일곱 대

최근 발행된 용인소식지(97호)를 보면 ‘희망찬 용인’이라는 모토와 함께 용인시의 비전이 제시된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장애인 저상버스 확대운영’이라는 문구. 이 홍보문구만 보자면 용인시가 장애인 이동권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용인시를 경유하는 200여개 버스노선 중 현재 저상버스를 운용하는 노선은 단 한 개뿐(820번, 경남여객). 2006년부터 7대가 도입된 저상버스는 올해로 3년째 운행되고 있지만 시차원의 증차 계획은 뚜렷하지 않은 실정이다. 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올해는 물론 내년에도 증차 계획은 확정된바 없으며 2010년 CNG충전소가 시내에 설치되는 때에 맞춰 증차할 계획”이라고.

▲ 용인 및 주변 도시 저상버스 보유현황과 저상버스 대비 인구비율
인접한 서울의 경우 이미 2013년까지 전체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교체할 예정이고 수원시는 올 해에만 19대가 추가로 증차될 예정이지만 용인시의 대책은 한심한 수준이다. 

용인시가 저상버스 증차의 난점으로 내세우는 CNG충전소 역시 수원시는 이미 5년전 시비를 들여 지었다.<표 참조> 작년엔 시가 차고지를 제공하고 삼천리가스사에서 기부채납 방식을 통해 충전소를 추가 건립해 CNG로 운행되는 저상버스의 충전지 확보에 만전을 기했다.  이제야 차고지 설계를 준비하는 용인시와는 너무도 상반되는 모습들이다.

≫그나마 운행되는 ‘저상버스’도 ‘엉터리버스’

그렇다면 현재 노선에 배치된 저상버스들은 제대로 운행되고 있을까? 지난 14일 용인IL센터(소장 노승돈)와 함께한 ‘저상버스 탑승체험’을 통해 저상버스 운행 시스템에 여러 문제점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저상버스 운행에 안전수칙 등 기준 없어 
현행 저상버스 운행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을 위한 운행지침이나 규정 등이 전무한 것. 조사 결과 시내버스 운행을 감독하는 시에서는 저상버스 운전자에 대한 교육이나 운행지침 등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14일 탑승체험에선 탑승판을 펼치고 닫는 것 외에 이용자에 대한 아무런 지원활동을 하지 않는 운전자가 많았다. 운전자의 불찰로 인해 미처 휠체어를 고정하지 못한 탑승자가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체험에 함께한 활동보조인 박관호(58·언남동)씨는 “탑승자에 대한 기본적 배려가 없다. 운전자가 장애인에 대한 기본인식과 안전의식이 없는 것 같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 어렵게 오른 저상버스, 휠체어락 부분에 바퀴가 들어가지 않는다. 시와 버스회사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주객이 전도된 배차시간
용인에서 운행 중인 저상버스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관성 없는 배차시간이다. 상식적으로 저상버스와 일반버스는 차량 비율에 맞게 순서를 정해 운행해야 되겠지만, 같은 차종이 3~4대가 연이어 운행되는 사례가 다반사다. 탑승자의 편의는 무시한 채 운전자의 교대시간에 맞춰 배차간격을 조절하다 보니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 그나마 일곱 대 밖에 없는 저상버스 마저도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6개월 전 고장난 탑승판 그대로 방치 
“타지 마세요.”
버스회사에 미리 전화를 걸어 저상버스를 타러 간 이용자에게 기사는 이렇게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실랑이가 벌어지고 나서야 알고 보니 탑승판이 고장났던 것. 지난 겨울에 고장난 것을 아직까지 방치한 것이다. 달리 유추해 보자면 그 동안 해당 저상버스를 이용한 휠체어 이용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버스회사 관계자는 저상버스가 고장난 사실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고장난 버스를 기다렸던 이용자는 결국 땡볕에서 한 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야 다음 저상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시민사회, 이동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 가져야

용인시의 저상버스는 국비를 포함 초기 7억원의 시비가(대당 1억원씩 지원) 투입되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세금이 투입된 것이다. 하지만 두 시간을 기다리다 승차를 포기했던 이학현씨의 일화나 6개월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은 저상버스 사례는 저상버스 사업이 얼마나 파행적으로 운행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문제는 저상버스 하나에 있지 않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예전보다는 좋지?” “많이 좋아지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 시민사회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해 얼마나 무심히 여기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돈만 들여 만들어 놓으면 머합니까. 무용지물인데. 이런게 형식주의 아니겠어요? 만들어 놓은 용인시나 그걸 보고 묵인하는 시민들이나 그냥 묻어가는 거죠…” 저상버스 탑승체험에 참가한 어떤 이의 말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웃에게 채워진 족쇄를 방관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논의가 시민사회 각처에서 심도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도건 시민기자

▲ 820번 버스 배차 간격. 개념 없는 배차관리로 다음 저상버스까지 1시간 5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경기도버스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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