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섬 '쿠바'

▲ 쿠바혁명의 주역이자, 불꽃같은 삶을 살다 39세에 처형당한 체 게바라는 쿠바 문화의 아이콘이자, 관광상품이며, 정신적 지주다. 쿠바 어디를 가든 그의 초상화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진은 쿠바 혁명의 결정적 전투가 됐던 산타클라라 시 기념관 앞에 있는 체 게바라 동상.

“명가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나라?”
“시가 담배와 럼주가 유명하다던데…참, 그 사람들은 춤과 노래도 좋아한다대.”
“뭐니뭐니해도 의료보장제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

출발하기 전 여러 사람에게 던진 쿠바에 대한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다. 그런데 눈으로 확인한 실제가 그랬다. 원시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살사 춤이 온 몸을 휘감고 음악이 강물처럼 흘렀다. 화려하진 않지만 스페인풍의 고풍스런 도시 속에 느껴지는 여유로운 삶이 있었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최고의 문화 아이콘이자 관광상품인 이상한(?)나라였다. 쿠바는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줬다.

우리 지역농업의 위기와 대안적 농업의 미래를 살피려는 연재 주목적 외에, 쿠바를 대표하는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가난한 사회주의 빈국이 세계최고의 의료제도라니...
쿠바는 이미 잘 알려진 바대로 생태 도시농업 못지않게 독특한 의료제도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196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쿠바를 건강 보건 면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나라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이미 국제적 인증을 받은 바 있다.

쿠바는 영아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로도 알려져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Unicef에 가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의사 수다. 이미 1993년 국민 231명당 의사 1명, 국민 1623명당 치과의사 1명이었다. 물론 모든 의료 서비스는 무료다. 가정방문 치료제도가 정착돼 있어 의사와 간호사가 직접 예방교육과 건강교육을 실시한다.

▲ 사회주의 빈국이면서도 세계최고 수준의 의료제도를 갖춘 쿠바에선 수시로 병원을 찾아 무료 검진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예방보건정책은 예기치 않은 고민을 안겨 주기도 했다. 전체인구의 18%가 60세 이상이면서 평균 수명이 78세에 달한다. 고령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쿠바의 의료시설을 둘러보면서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의료제도를 정착시켰을까 하는 점이었다. 알다시피 쿠바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사회주의 국가다. 게다가 자칭 민주주의 수호자라고 말하는 미국이 바로 옆에 있다. 엄청난 군사비가 필요했음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이 같은 성과를 이룬 것은 쿠바혁명의 가장 큰 명분 중 하나였던 것이다. 

1959년 쿠바혁명 전만해도 쿠바 의료는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사적 의료체계였다. 혁명 후 체제에 반대하는 3000여명 이상의 의사들과 의대교수들이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민간병원과 제약회사를 국유화했고, 전국을 시단위의 건강지역으로 나눠 의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던 외딴마을까지 다가가는 의료정책으로 재편했다. 특히 미국으로 떠난 의사들의 빈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의학교육도 집중 육성했다. 이는 체 게바라가 의사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의대생 시절 10개월에 걸친 자전거 여행을 통해 본 중남미 민중의 비참한 삶의 경험이 혁명에 뛰어든 동기였음에 비춰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 카스트로는 없고 체 게바라만 있었다
우리는 쿠바하면 대개 카스트로를 떠 올린다. 늘 군복차림에 긴 수염을 한 그의 모습은 정작 쿠바에 없었다. 대신 체 게바라만이 넘쳐났다. 1959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린 후 함께 혁명을 이룬 두 주역이지만. 공항에서부터 아바나 시내로 향하는 도로변, 공공건물, 그리고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체 게바라의 초상화는 어디에든 있었다. 심지어 관광지에서 파는 티셔츠에는 어김없이 게바라의 얼굴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관광가이드나 일반 시민들 조차 “만약 체 게바라가 지금 살아있다면… ”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할 정도로 그는 쿠바인의 영웅으로 가슴속에 남아있다.

프랑스의 대표적 근대 지성 장 폴 사르트르가 “우리 세기(20세기)에 가장 성숙한 인간”이라고 평했다는 체 게바라. 특히 지난 해 사망 40주기를 절정으로 게바라 열풍이 남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안락하고 평탄한 의사의 길이 보장됐던 체 게바라는 1959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에 동참했다는 것만으로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쿠바에서 전권대사와 중앙은행 총재, 각료 등을 지내며 현실 권력의 2인자로 머물렀다면 다시금 세계 젊은이들에 의해 열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안주하지도 특권을 누리지도 않았다. 1965년 게바라는 갑자기 쿠바의 모든 공석에서 물러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다시 세상에 드러낸 것은 아프리카와 볼리비아의 정글이었다. 그가 1967년 볼리비아군에 붙잡혀 39세의 나이에 처형될 때까지 이상을 이루기 위한 꿈을 한시도 놓지 않았던 불꽃같은 삶. 이것이 영원히 살아있는 체 게바라 열풍의 진원지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바나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얻어 수업장면을 지켜봤다. 한 학생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었다. 어린 여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띠요. 그런데 체 게바라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이 때 교장선생님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체 게바라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것은 카스트로죠.”

그랬다. 자신의 초상화를 내걸지 말도록 명령한 탓에 카스트로를 거리에서 대하긴 어려웠지만, 독립의 아버지와 함께 현실 지도자로서 한 축이었고,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체 게바라였다. 

▲ 아바나의 구도심 뒷골목. 스페인 식민지 시절 조성된 시가지는 전통양식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대부분 유네스코 지정 국제문화유산으로 올라있다.
 
# 쿠바 교육의 두 얼굴 
밖으로 알려진 쿠바 교육의 자랑거리는 거의 0%에 가까운 문맹율이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는 특히 혁명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도적인 과대홍보가 되기도 했었다. 단편적이긴 하나 쿠바 교육의 현실은 명암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찾은 아바나 구 중심가의 한 학교는 광장 옆에 나란히 하고 있었다.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학생들이 통일된 교복을 입고 공부하는 모습이 이채롭기도 했지만, 천진난만한 행동과 해맑은 표정만큼은 우리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급식은 인근 유기농 재배농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등 각별히 어린이들에 대한 당국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교실 벽에 붙어있는 카스트로의 연설문구에서 보여지듯 사회주의적 이념 교양과 주입식 교육의 한계도 느껴졌다. 또한 창살 속에 갇힌 듯 한 운동장 없는 좁은 공간과 교육 기자재의 부족 등 열악한 교육 환경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쿠바인의 일상인 춤과 노래
쿠바 국민의 절반가량은 흑인과 스페인계 백인의 혼열인‘뮬라토’다. 건강미와 탄력있는 다갈색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이들은 남녀할 것없이 매력적이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이 같은 인종적 특징은 쿠바 문화의 독특함으로 연결된다. 쿠바의 문화 역시 흔히 스페인과 아프리카인의 전통이 혼합된 형태라고 말한다. 스페인의 기타와 아프리카의 드럼이 어우러져 쿠바음악의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주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룸바와 차차차 등의 음악이며 살사, 콩가와 같은 춤이다.

아바나 어디를 가든 춤과 노래를 접할 수 있었다. 심지어 허름한 시골길에서도 원주민 노인들이 기타반주와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춤과 노래에는 또 술이 빠질 수 없는 것. 음악에 흥을 돋우기 위해 각종 술을 즐기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탕수수로 빚은 럼주다. 아주 오래 전 아프리카에서 노예선에 실려 사탕수수 농장에 팔려온 흑인들은 고된 노동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럼주를 마셨을 것이다.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커피와 향기롭고 독한 시가다.

#‘지상최대의 아름다운 섬’
콜롬버스가 쿠바를 발견했을 때 ‘지상최대의 아름다운 섬’이라고 말했다던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오랜 식민지 역사와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혁명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독특한 라틴 아메라카의 땅. 생태 유기농과 앞선 의료체계로 주목받고 있는 미래의 국가. 적대적인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가 관광수입의 상당부분을 올려주는 아이러니한 관광대국. 사회주의 나라이면서도 춤과 노래가 강물처럼 흐르고 개방적인 쿠바는 분명 매력적이다.

▲ 쿠바에서 음악과 춤은 일상일 뿐이다. 어느 관광지에 두 노인이 기타를 들고 베사메무쵸를 신나게 부르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엔 신기하기만 하다.
▲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의 집필배경이 됐던 한 주막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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