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19)

이번 19차 시계탐사는 골프장을 무려 세 곳이나 지나야 하는 코스다. 시작 지점은 비에이비스타(구 백암비스타C·C가 있는 대덕산(309m)이다. 대덕산은 용인 백암과 이천 호법면과 모가면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찬 공기를 가르며 얼어붙은 눈길을 걷는 기분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조심조심 움직여 30여분 걸었을까. 몸에 땀이 차기 시작할 즈음 탐사단 일행은 어느새 정상에 닿았다.

▲ 비에이비스타C.C→ 대덕산→백암면 가창리→ 건지산→ 지산C.C

백암과 이천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대덕산. 예로부터 이천 사람들은 바로 입석재 고개와 대덕산 줄기를 넘어 백암장을 드나들었다. 아니 번잡한 교통로였다.

“곡창지대인 이천서 쌀을 지고 백암장으로 가는 행렬이 마을까지 뻗었지. 조용한 산골에 5일마다 사람들이 넘쳐 나던 곳이여”

여러해 전 박곡리 상촌의 한 어른에게 들은 얘기다. 조선시대 순조 32년(1832) 기록에 ‘배관장’이란 이름이 오를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백암장은 특히 쇠전(우시장)이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로로 컸다. 지금이야 골프장이 들어서 시계탐사단 조차 마음대로 통행할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지만 예전에는 이천과 용인의 경계를 넘어 일반민들의 큰 길이었던 셈이다.


이천사람들 백암장 넘나들던 대덕산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니, 우리가 걸었던 길은 시계 반대방향이었다. 용인의 동쪽에서 시작해 북쪽을 거쳐 서쪽으로, 다시 남쪽을 돌아 동쪽 길로 들어섰다. 대원들이 용인의 산하를 보자면 늘 고개를 좌로 돌려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상했다. 용인을 바라보기 위해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야 했다. 대덕산을 떠나 덕평 컨트리클럽을 거치고 봉의산을 넘어 329번 도로를 건넜는데, 다시 산에 들어서자 대열은 남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길을 잠시 잘못 들었던 것이다.

▲ 백암 원삼 전경

실은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시계탐사를 위해선 사전 답사를 하게 되는데, 참으로 힘든 일이다. 없는 길을 개척하는 것은 물론이요, 잘못 들어서게 되면 몇 번이고 되돌아가야 하니 실제 탐사보다 몇 배는 힘들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생긴다.

대원들은 어느 새 야트막한 산 능성을 따라 백암과 원삼의 경계마을인 가창리로 향했다. 어느 때보다 강행군을 소화한 대원들이 우뚝 솟은 건지산 앞에 섰다.

건지산은 내창마을에서 보면 영락없는 삼태기 모양이다. 그런데 원삼면 맹리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기와집 전면을 연상시킨다. 양쪽 봉우리가 높다랗고, 가운데 부분이 유선형의 안정감 있는 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 박주가리

군사통신 네트워트, 건지산 봉수대

그런데 건지산은 낮은 산이 아니다. 무려 411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역시 일 년간 탐사산행으로 다져진 대원들이었다. 중간에 한 번도 쉬질 않고 40여명의 전 대원이 무사히 정상에 올랐으니 말이다. 건지산 정상에 올라보니, 사방이 시원하고 먼 산들로 큰 원을 그린 것이 마치 요새와 같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 이 일대는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행군이 산성, 태봉산, 말무덤 등 지명은 물론이요, 의병항쟁과 3.1 만세운동도 이 지역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 건지산에는 조선시대 군사통신 네트워트인 봉수대가 있었다. 건지산 봉수대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 졌지만, 남쪽 망이산과 서북쪽 석성산 봉수대 사이에서 연락을 취하던 곳이다. 용인을 통과하는 노선은 동래(부산)-영천-의성-봉화-단양-제천-충주-진천 소을산-음성 망이산 각 봉화대를 거쳐 올라왔다. 석성산을 거치면 북으론 성남 천림산에서 최종 도착지인 남산으로 연결되었다.

▲ 건지산에서

결국 영남대로와 거의 비슷한 노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봉수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전국적으로 봉수대를 복원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역사의 주요 흔적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야가 확 트인 전망과 함께 산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장소로도 좋다는 점이 착안된 것이다.

건지산에서 지산컨트리 클럽하우스 쪽으로 하산 능선은 응달진 관계로 여전히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그런 여건을 활용한 것이 스키장이다. 온 산이 떠나갈 듯 음악소리와 함께 설원을 누비는 스키어들의 활강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근사하다. 그에 대한 시샘이었을까. 일부 대원들은 엉덩이 스키를 타며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 가 본다.

/용인시계대탐사단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