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18구간 생태

시계탐사의 생태조사팀원은 시계탐사 당일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시간적인 문제도 있지만 시계탐사대원들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생태조사는 많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어떤 때는 한 생물을 20여분 이상 관찰하기도 한다. 잘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는 현장에서 도감을 펼치고 토론도 불사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탐사 당일에 참여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생태조사팀은 따로 시간을 내서 시계탐사 대원들이 지나간 곳의 생태를 조사한다. 주로 월요일 오전부터 이루어진다.

물론 전 구간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시계탐사대원들이 지난간 곳 중 생태 조사가 필요할 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이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탐사 당일에 봤던 새를 우리 생태조사팀은 못 보는 경우도 있다. 또 날씨도 변수로 작용한다.

당일에는 화창했는데 생태조사 일에는 폭우가 내린다든가 폭설이 온다든가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탐사 당일과 여러 가지 상황이 안 맞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 같은 날이 그런 경우다. 18차 시계탐사 당일에는 약간 쌀쌀하기는 했지만 화창한 날씨였다. 하지만 생태조사 일에는 오전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생태조사를 하기에는 힘든 날이다.

▲ 개암나무

생태조사팀원이 모인 건 오전 10시. 수정산의 생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눈은 그칠 줄을 모른다. 생태조사는 고사하고 수정산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가 않아 보였다. 국도는 좀 나았지만 마을길로 접어들자 길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길이 미끄러워 조그만 언덕을 오르기도 벅차다.

수정사까지 가는 걸 포기하고 차를 인근 공장 주차장에 대놓고 걸어가기로 했다. 쏟아지는 눈 때문에 제대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사진은 고사하고 걷기조차 힘들다. 서로 말은 없지만 걱정하는 빛이 역력하다. 제대로 생태조사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산에 오르기나 할 수 있을까? (아래 글은 기존의 야생화, 나무, 새 등 분류해서 글을 썼던 방식을 버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을 오르며 본 것들을 중심으로 쓴다.)

눈 덮인 수정산은 동화속 세상

▲ 구름버섯
수정사에서 시작된 산길은 환상의 세계다. 아무도 밟지 않은 신천지 같은 산길, 발자국 하나 없는 순백의 길을 걷는다. 환삼덩굴이 헝클어진 머리처럼 뭉쳐있는 곳에 눈이 쌓인다. 그 곳에 반가운 녀석이 마중을 나왔다. 조그만 쇠박새, 녀석은 눈 덮인 환삼덩굴을 뒤적이며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다. 쉽게 먹이가 발견되지 않는 듯 신경질을 부린다. 한참을 쳐다봐도 날아갈 생각을 않는다. 쏟아지는 눈 때문에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다. 쇠박새를 뒤로 하고 다시 미끄러운 길을 걷는다.

길가에 ‘뚝갈’이 보인다.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열매가 신비로워 보인다. 찔레의 빨간 열매는 눈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작은 솔방울처럼 생긴 물오리나무의 짙은 갈색 열매도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소나무의 모습은 말 그대로 독야청청이다. 온통 순백의 세상에 푸른 생명의 기운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눈 때문에 축 처진 억새는 멋진 장식처럼 보인다. 흔하디흔한 개망초, 너무 흔해서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녀석, 눈 속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꽃이 다 진 뒤의 모습, 특히 눈 속에서 만난 녀석은 너무 아름다워 신비롭기까지 하다. 작은 개울을 따라 버드나무들이 보인다. 근처에는 물박달나무도 여럿 보인다. 눈 속에서 본 녀석들은 너무 멋지다. 웅장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 누리장나무

본격적인 산행, 여전이 눈(雪)이 눈(目)을 가린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길을 찾기도 힘들 정도다. 어림짐작으로 산길을 오른다.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한발 한발 산을 오른다. 생태조사라기보다 극기 훈련 같다. 순간, 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흑진주가 눈 속에서 빛나고 있다. 누리장나무다. 갈색 불가사리같이 생긴 열매받침과 아직 빛나는 검은색을 유지한 채 달려있는 열매, 거기에 쌓인 눈, 설명할 말이 없어 안타까울 정도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말 저 너머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냥 눈물이 난다. 자연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아니 눈길을 헤치고 올라 온 우리에게 은밀히 열어 준 비밀, 이것 때문에 우리가 눈길을 올라왔구나 싶다. 산이 드러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만다.

▲ 매미나방알집

산 중턱에서 길을 잃었다.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대로 가파른 능선을 올라가기로 한다. 멋진 바위에 잠시 기대도 보고, 썩은 나무에 붙어있던 구름버섯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을 뒤지기도 하고, 썩은 나뭇가지와 함께 뒹굴기도 하면서 오르다보니 산길이 다시 보인다. 조금 산길을 오르자 세상에, 별천지가 펼쳐진다. 온통 눈으로 덮인 아름다운 세상,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그냥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다. 탄성도 나오지 않는다. 탄성을 지르는 것이 불경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 찔레

생강나무 겨울눈 노박덩굴 열매의 감동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는다. 여기가 마지막이구나. 쌓인 눈 때문에 길도 안 보이고 아래가 낭떠러지로 연결된 바위를 오르는 것은 엄두도 안 난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자세히 보니 바위 위쪽으로 조그만 통로가 하나 보인다. 겨우 한 사람 빠져나갈 정도의 통로다. 등에 맨 배낭을 벗어야만 지나갈 수 있을 아주 좁은 통로다.

그래, 짊어진 짐, 멍에, 쓸데없는 것들 다 버리고 맨몸으로 오르자. 버려야만 오를 수 있다면 버리자. 마음을 정리하고 통로를 빠져나온다. 아,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눈앞에 펼쳐진 선경(仙境), 필시 신선의 세계에 들어 선 것이리라.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진 눈꽃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수도 없이 보아왔던 생강나무의 겨울눈, 동그란 꽃눈과 길쭉한 잎눈, 선경에서 만난 생강나무의 겨울눈들은 그대로 보석이 되어 빛난다. 하얀색 하나로 어떻게 저런 화려함을 연출할 수 있을까?

▲ 수정산

눈앞은 그대로 환상의 세계가 된다. 생강나무 겨울눈이 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 노박덩굴이 바로 우리 마음을 빼앗는다. 빨간 열매를 싸고 있던 열매껍질, 세 갈래로 갈라진 연한 오렌지색 열매 껍질이 눈 속에서 매달려 빛을 발한다. 눈이 부셔 황홀할 정도다. 조금 더 오르니 돌무더기가 보인다. 그리고 눈에 익은 나무 팻말, 용인의 여러 산에서 보았던 그 정겨운 나무 팻말, 거기에 ‘수정산 348m’라고 적혀 있다.

내려오는 길도 역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했지만 오를 때와 다른 호사를 누린다. 눈앞에 펼쳐진 정경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림에 빨려들 듯 그렇게 산을 내려왔다. 눈 쌓인 수정산에서 우린 모두 그림 속의 인물이 되었다. 아, 아름다운 산 수정산!!!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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