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18)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많은 대원들이 함께했다.

그간 400리길 대장정을 하며 갖가지 악조건을 극복해온 터였다. 아마도 그런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강해졌음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이번 시계탐사는 백암면 일대를 걷는 코스다. 그 출발지점은 안성시 일죽면과 경계인 고안리 길마재다.

소에 짐을 실을 때 등에 얹는 기구인 길마. 아마 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같은 지명은 수지 독바위와 이의동 하동을 잇는 ‘길마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많이 확인되고 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시작한 탐사 길은 고안리와 안성 일죽면 방초리 사이로 형성된 200고지대 산등성이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고, 웬만한 높은 고지도 거침없이 헤쳐 나가는 탐사대가 오늘따라 복병을 만났으니, 다름 아닌 빙판길이다.

간간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인데다 사람의 발길이 닿아 굳은 산길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황영용 산행팀장이 아이젠 착용을 권했지만, 장거리 산행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지라, 대원들이 주저하는 눈치다.

▲ 상촌마을전경


치소가 있던 아곡을 지나며

▲ 대덕산을 향해 걷고 있는 탐사대원들.

안성 일죽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비교적 너른 들이 형성된 고안리 일대는 교통이 편리했다.

지금은 17번 국도가 마을 앞을 가로지르지만, 안성 일죽면 방초리와 이천시 모가면 두미리와 맞닿아 있어 3개 시계를 이루는 지점이기도 하다.

백암과 죽산, 그리고 일죽이 각각 시오리(6km) 거리다. 교통이 편리한 이유였을까. 과거 치소(治所)가 이곳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때 양지현의 고안면 소재지다. 아곡이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관아가 위치한 마을로 추정되는데, 실제 문헌 자료 등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양지현 읍지」에 따르면 “고안면은 양지현으로 부터 40리 거리에 있었는데 마을은 총 5개로 중상리 31호, 백동 42호, 봉리 17호, 주천리 42호, 입동 34호”라고 되어 있다.

북쪽을 향해 끝없이 걷는 산행에서 왼편으로 내려다보이는 고안리 일대가 저수지와 함께 시야를 채운다. 평화롭고 정겨운 모습이다.

자연은 이처럼 아름답고 스스로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문제는 사람이다. 지명만 해도 그렇다. 칠천, 지내, 소정이 고안리를 이루고 있는데. 지명을 통해선 마을에 대한 이해가 얼른되질 않는다. 칠천은 옻샘이고, 지내는 못안이란 뜻이며 소정(沼井)이란 한자를 풀어보면 이 마을이 물이 참 좋고 수량이 많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옻샘마을’얼마나 정겹고 좋은가. 굳이 칠천(漆泉)이란 지명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있을까.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서도 답답해진다.

사실터 고개 밑에 있는 대우인력개발원은 높이 솟은 건물로 인해 한 나절 탐사 내내 눈에 들어온다. 대우그룹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 ‘대우가족’이라면 한번 이상 들러야 했던 곳이건만 지금은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박곡리 폐사지 흔적들

점심녘이 되었건만 싸늘한 기운은 가시질 않는다. 그래도 양지쪽을 찾아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는 그 시간만큼은 시계탐사의 묘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덧 길을 나선지 3시간쯤 되었을까. 대덕산(309m) 정상부가 얼마남지 않았다. 이를 경계로 백암 박곡리와 이천시가 맞닿아있다.

발길 아래 서쪽으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부와 동쪽으론 골프장이다. 하는 수 없이 경계 안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덕산 줄기는 바위 하나, 샘물 한곳에도 애틋한 전설과 유래를 안고 있다. 상촌마을 초지단지 목장이 있던 찬샘골에는 작은 샘 3개가 나란히 있는데, 먼 옛날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면 그 첫째 샘에 앉아 손을 씻고, 두 번째 샘에서 얼굴을 가만히 비춰보곤 머리를 감았다 한다.

그리고는 세번째 샘에서 물을 마신 후 하늘로 올라갔다는 재밌는 전설이 남아있다. 경기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있는 용인의 대표 민속주 옥로주(玉露酒)가 탄생한 것도 이 같은 대덕산 계곡의 맑은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끄럼을 타다시피 하며 산등을 내려오던 대원들은 한 구조물을 보고는 한 마디씩 던졌다. “여기에 무슨 산성이 있었나?”비교적 정교하게 석축된 흔적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산성이다. 높이가 2m, 길이 25m의 이 석축 구조물은 박곡리 옹주암지(翁主庵址)다. 옹주가 궁중에서 쫓겨나 수도하던 암자라고만 전해지는 이 폐사지는 성문처럼 천정 구조로 된 출입시설까지 있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 백암 박곡리 옹주암지.

용인에서 발견되는 폐사지 가운데 이 정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없다. 안내판이라도 세우고 보호조치가 된다면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살아있을 텐데. 이 같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원들은 하루의 탐사일정을 마무리했다.

/용인시계대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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