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17구간 생태

새, ·곤충 그리고 흔적

2008년 첫 시계탐사의 생태조사는 용인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비봉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봉황이 나는 형상을 한 산이라 비봉산(飛鳳山)일까? 지난번에 조사를 했던 조비산(鳥飛山)과 더불어 새와 관련된 산 이름이라 특이했다.

산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어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정상에 세워진 돌비에 ‘飛鳳山 372m’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추측이 맞았다. 한택식물원 입구로 들어가서 가막살나무와 중국단풍을 줄지어 심어놓은 곳을 지나 산으로 드는 길을 잡았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처음부터 발걸음 대딛기가 힘들었다.

▲ 쇠딱다구리
경사도 급해 생태탐사 단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역시 겨울산은 산새들의 천국이다, 일행들도 자연히 나무나 들꽃들보다는 새에 마음을 빼앗겼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 준 녀석은 쇠딱따구리다. 몸에 바둑판 모양의 무늬가 있는 녀석은 이 나무 저 나무를 돌아다니며 먹이 활동에 여념이 없다.

오색딱다구리, 큰오색딱다구리, 청딱따구리 등에 비해 몸집이 작기 때문에 이름에 작다는 뜻의 ‘쇠’자가 붙은 녀석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로 꼬리깃을 이용하여 나무에 수직으로 매달려 돌면서 나무 주위를 올라가는 녀석이다. 쇠딱따구리는 나무 타기의 명수다. 녀석은 주로 나무를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간다. 하지만 ‘나무 올라가기’ 기술로만 본다면 B급 정도라 할 수 있다. A급 정도의 기술 점수를 받으려면 나무발발이 정도는 돼야 한다.

녀석은 우선 빠르다. 그리고 빙빙 돌면서 올라가는 모습도 더 아름답다. 오늘은 만나지 못했지만 요즘 용인에서 자주 보이는 녀석이다. 나무 올라가기 기술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나무 거꾸로 내려오기다. 이 정도는 보여 줘야 A+정도의 기술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 기술을 구사하는 녀석이 바로 동고비라는 녀석이다.

오늘 비봉산에서 동고비를 많이 만났다. 녀석은 나무 거꾸로 내려오기의 달인(?), 아니 달조답게 우리 앞에서 많은 다양한 기술을 보여줬다. 장난감처럼 생긴 앙증맞은 모습으로 나무를 거꾸로 내려오는 녀석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산을 오를 수 있었다.

검은빛의 딱새 수컷과 갈색의 딱새 암컷도 만났다. 꼬리깃이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노랑지빠귀란 녀석도 만날 수 있었다. 크기는 직박구리 정도 되지만 비쩍 마른 느낌이 드는 직박구리에 비해 몸이 튼실하고 균형 잡혀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겨울에 찾아오는 겨울철새로 연한 갈색의 눈썹선과 배의 점무늬가 매력적인 녀석이다. 요녀석도 요즘 용인에서 자주 눈에 띈다. 경계할 때 내는 ‘캬아 캬아’ 하는 소리가 꽤나 시끄러운 녀석이다.

▲ 노랑지빠귀

굴뚝새도 만났다. 녀석은 산 입구에 있는 한택식물원 습지원 근처에서였는데 평소에 워낙 보고 싶었던 녀석이라 일행은 녀석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뒤를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의 집요한 추적(?)에 녀석도 감동했는지 잠시 나뭇가지에 올라 포즈를 취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정말 귀엽고 깜찍한 녀석이다. 참새보다도 작은 녀석은 전체적으로 짙은 갈색이고 꽁지깃이 바짝 위로 들려져 있다. 겨울 산행의 재미는 여러 가지다.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새 둥지, 벌레혹, 곤충알집, 고치, 새 깃털, 그리고 배설물, 이런 것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 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비봉산에서 처음 본 것은 멧돼지 배설물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소화 안 된 은행 열매가 잔뜩 들어있었다. 은행 열매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동물들이 거의 먹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멧돼지가 배가 너무 고팠는지 아니면 왕성한 식욕 때문인지 배설물엔 한줌이나 되는 은행 열매가 고스란히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었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몇 무대기의 멧돼지 배설물을 볼 수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동글납작한 멧토끼의 배설물과 길쭉한 타원형의 고라니 배설물도 볼 수 있었다. 한참 똥을 뒤지고 다니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곤충들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참나무혹벌의 벌레혹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지나치게 많다 싶은 정도였다. 소나무에는 매미나방의 알집도 보인다. 얼룩말 무늬를 한 조그만 노랑쐐기나방의 고치도 보인다. 보면 볼수록 정교한 솜씨에 놀란다.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렇게 다양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산에서 발견한 생명의 흔적,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나무

비봉산의 겨울나무는 참 다양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것도 있고 새순이 올라오는 것도 있었다. 연한 녹색의 잎을 달고 겨울을 견디는 녀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들은 진한 생명의 흔적을 간직한 채 조용히 겨울을 살아내고 있었다.

청미래덩굴의 붉은 열매가 눈부시다. 이미 검은 갈색, 아니 진한 회색으로 변한 열매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직 붉은 생명의 기운을 간직한 채 매달려 새들을 유혹하는 것도 있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녀석이다. 붉은 기운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가 또 있다. 열매를 까마귀가 좋아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까마귀밥여름나무(까마귀밥나무라고도 한다)다.

▲ 까마귀밥나무

녀석은 아직 싱싱한 붉은 열매를 잔뜩 달고 있다. 하지만 열매를 자세히 보니 쪼글쪼글 마른 건포도 같이 변해 있다. 저 상태로 겨울을 견디며 새들에게 좋은 양식이 되리라. 인동덩굴은 말 그대로 겨울을 견디는 녀석이다. 참을 인(忍), 겨울 동(冬), 녀석만큼 겨울과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있을까? 파릇파릇한 새잎을 달고 녀석은 갈색 낙엽더미 속에서 싱싱한 겨울을 살고 있다.

쥐똥나무의 검은 열매도 보인다. 산 중턱에서 만난 커다란 늙은 쥐똥나무는 험난한 세월을 살았는지 앙칼진 가시를 잔뜩 달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흔히 보는 쥐똥나무와는 참 다른 모습이다. 산초나무는 이미 까만 씨앗을 다 떠나 보내버리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열매 껍질만 주렁주렁 달고 있다.

커다란 굴참나무 밑에는 잎 서너 개가 달린 도토리가 땅바닥을 뒹굴며 겨울과 장난치고 있다. 잔가지를 자세히 보면 예리한 톱으로 자른 듯 한 흔적이 보이는데 도토리거위벌레가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 한 짓이다. 지난 세월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덩굴손으로 썩은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다래도 보인다. 많은 나무들이 겨울에도 나름대로의 생명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들꽃

역시 겨울 산에서 들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틀린 말이다. 들꽃들이 지천에 있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 뿐이다. 하나하나 흔적을 찾아가며 생명이 왕성했던 시절을 유추해 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탐사활동이다. 가장 눈에 쉽게 띄는 녀석은 단연 노루발이다.

▲ 산누에나방고치

녀석은 한겨울에도 싱싱한 푸른 잎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란 꽃대 위에는 작은 호박처럼 생긴 열매를 자랑스럽게 달고 있다. 푸른빛을 내고 있는 것은 이외에도 더 있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산괴불주머니가 벌써 새순을 피우고 있다. 황새냉이도 연한 초록의 잎을 달고 잔뜩 땅에 엎으려 있다. 무덤가에는 털복숭이 붉은 양지꽃 새잎이 조심스럽게 세상을 살피고 있다. 그 옆에선 개망초와 꿩의밥이 언 볼을 비비는 아이처럼 시린 잎을 비비고 있다.

달맞이꽃은 긴 대롱같이 생긴 열매를 달고 멀리 떠나길 소망하고 있다. 열매를 따서 거꾸로 기울이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까만 씨앗이 쏟아져 나온다. 발밑에는 봄을 소망하는 달맞이꽃 뿌리잎이 붉은 장미 같은 모습으로 겨울을 힘들게 견디고 있다. 갈퀴덩굴은 검은 가죽질의 잎을 그대로 간직한 채 콩알만 한 까만 열매를 달고 있다.

삽주는 잘 말린 드라이플라워처럼 고스란히 제 모습을 간직한 채 산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참으로 많은 들꽃들이 겨울 산에 살고 있다. 우리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어서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조금만 눈높이를 낮추면 경이로운 자연의 세계를 느낄 수 있다. 눈높이를 낮추자. 그리고 몸을 구부리자. 그러면 놀라운 들꽃들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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