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 (16)

▲ 올해 마지막 탐사에 나선 대원들이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시 경계 지점을 걷고 있다.

눈발이 거세다. 시계탐사 이래 본격적인 겨울산행은 처음이다. 대원들은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눈길 산행 준비에 부산하다. 출발지인 안성시 천주교 수원교구 공원묘원에 도착하자 눈발은 좀 잦아들었다. 그리 춥지 않아선지 미끄러움이 덜하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조용한 산령을 깨운다. 3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쌓인 눈을 보자,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싸움이 벌어졌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뛰고 달린다. 웃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눈길을 걷는만큼 시계탐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간간히 대원들이 미끄러져 엉덩방이를 찢기도 하면서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간혹 눈 쌓인 나뭇가지를 흔들어 앞뒤로 지나는 대원들이 눈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겨울 산행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재미이자 추억이라 그런지 짖궂은 장난에도 웃음꽃이 피어난다.

▲ 눈밭을 걷는 대원들의 표정이 마냥 밝기만 하다.

이번 구간은 백암면 석천리와 안성시 삼죽면 경계에서부터 시작됐다. 백암 일대는 용인에서도 드물게 평야지대다. 구봉산 줄기를 맞대고 서쪽으로는 원삼면과 나뉘는 백암은 특이하게도 그 외곽을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을 뿐이다. 단지 벌판에 산 하나가 오똑하게 솟아있으니 조비산이다.

북쪽의 나랏님과 조정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저항의 산으로 도 불리는 산이다. 조비산은 그 형태가 특이하기도 할 뿐더러 보는 위치에 따라 풍기는 멋과 느낌이 다르다.

“오늘 조비산 실컷 보네. 본전 여기서 뽑았어” 양춘모 식생팀장의 말처럼 대원들은 걷는 내내 북쪽으로 눈을 돌려 조비산의 다양한 모습을 맘컷 감상할 수 있었다.

석천리의 어제와 오늘

안성시 삼죽면 갓치래미로 연결되는 길을 따라 내려온 대원들은 잠시 석천리 황새울 길을 걸었다. 마을에 있는 큰 소나무에 황새가 항상 깃들어서 생긴 이름이라는 황새울. 옛 지명은 ‘황석’이다. 소설가 윤정모씨가 이 마을에 머물면서 ‘황새울 편지’라는 글을 모 신문에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 후로 황새울이란 지명이 일반화됐다.

황새울은 얘깃거리가 많은 마을이다. 한국전쟁 때에는 선택의 폭도 없이 이념의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적지않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은 지역이기도 하지만 실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반계 유형원과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그가 살았던 17세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을 시기였다.

양반들이 글읽기에 충실하고 그것만으로 입신양명을 꾀할 당시, 반계 유형원은 이 같은 현실에 깊은 회의를 가졌던 모양이다. 무려 18년간 전국을 주유하며 세상을 경험하고 앞선 학자들의 문헌을 연구하여 현실적인 사회개혁안을 완성했는 바, 그것이 반계수록으로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그가 묻힌 곳은 마을회관 맞은 편 골짜기인 능말이다. 시 경계지점에선 거리가 있어 대원들은 그의 묘소 참배 기회를 갖진 못했다. 다만 ‘유형원 묘소’안내 팻말을 보며 잠시 ‘실사구시’로서 세상을 보고, 실천적 지식인의 삶을 살았던 350년 전의 한 인물을 생각해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석천리와 옥산리로 이어지는 시 경계는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펑펑내리던 눈도 어느새 그치고 포근한 날씨탓에 쌓였던 눈도 쉬 녹아버렸다.

이번 탐사 목표지점은 한택식물원 입구까지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탐사인지라 점심을 함께하며 회포도 풀고 모처럼 정담을 나눌 기회를 갖기 위함이다. 그래서일까. 대원들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 더욱이 한택식물원 입구에 늘어선 이름모를 붉은 겨울 열매가 반겨주니, 대원들은 어느새 추억에 새길 사진담기에 여념이 없다. 2007년 용인시계 대탐사, 약 300여리의 여정은 내년을 기약하며 이처럼 끝을 맺었다.

/용인시계대탐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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