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상상력이 지역을 바꾼다

용인의 작은도서관과 독일 베를린의 ‘우파파브릭’

글 싣는 순서

① 지역문화공간, 삶의 변화를 이끌다
② 지역문화공간이 진화하고 있다
③ 버려진 공간, 문화적 상상력과 마주치다
④ 공장이 놀이터로, 창고가 미술관으로
⑤ 희망의 공간, 문화적 상상력이 지역을 바꾼다

용인, 독일을 벤치마킹 하자

지난호에서 짚었듯이 용인은 크게 농촌지역인 처인구와 도시지역인 기흥·수지구 중심으로 동서로 나눠져 있다. 토착민이 이루고 있는 농촌지역인 동쪽과 신도시개발로 유입된 이주민으로 구성된 서쪽은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사회문화전반에서 대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그동안 용인에 기반을 두고 살아온 동부주민에 비해 대부분 이주민으로 구성된 서부지역 주민들은 주로 서울, 분당에 일터나 생활권을 두고 있어 애향심이나 지역공동체의식이 약하다. 게다가 문화시설을 비롯한 기반시설이 기존의 생활권 지역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용인을 빠져나가고 있다. 용인이 베드타운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작은도서관 운동은 이주민들을 용인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지역공동체 문화다.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을 가지고 있던 서부 주민들은 주변에 변변한 공공도서관 하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개인이 아파트 상가를 임대해 도서관을 꾸미기도 하고(느티나무 도서관), 주민들이 뜻을 모아 아파트 내 유휴공간을 도서관으로 활용(장미도서관)하기도 했다.

인력난과 재정난 등으로 어려웠지만 작은도서관들은 ‘용인작은도서관협의회(이하 용도협)’를 결성하고 힘을 모았다. 용도협의 출범은 기존의 작은도서관 뿐 아니라 그동안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모아 용인의 작은도서관 운동을 활성화시켰다.

작은도서관은 마침내 마을의 문화중심지로 성장하며 지역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게 됐다.

폐허를 딛고 문화생태마을로

독일 베를린에도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폐허가 된 유휴공간을 활용했음은 물론이다.

우파파브릭은 도심 내 문화생태마을로 문화센터, 연극공연장, 야외무대, 스튜디오, 춤 교습소, 체육관, 카페, 레스토랑, 유기농 식품점, 게스트하우스 등이 갖춰져 있다.

문화센터에서는 지역주민을 위한 워크샵이 개최되고 체육관에서는 아시아 격투기를 배울 수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우파파브릭을 찾은 지역주민에게 아늑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으며 한 켠에 자리한 동물농장에서는 엄마들이 아이 손을 잡고 나와 당나귀를 타며 소풍을 즐긴다.

▲ 우파파브릭동물농장에서당나귀를 타며노는 아이들.
      ▲ 체육관에서는 동양무술수업이 한창이다.

우파파브릭은 원래 독일의 필름영화제작소가 지원하는 필름현상소였다.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고 서베를린에 있던 제작소와 동베를린에 있던 현상소의 공동작업이 불가능해지면서 이곳은 폐허로 변해갔다.
1968년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시대, 베를린으로 이주하면 군 면제 혜택이 있었던 탓에 학생, 수공업자 등 젊은이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이들은 베를린에 산재해 있던 빈 공장 등에 모여 생활하고 문화 공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우파파브릭도 그 중의 하나였다.

우파파브릭에 모인 젊은이들은 1978년 3개월 동안 작은 공동체마을을 만드는 페스티벌을 벌였다. 마을을 만드는 데 도심 쓰레기와 버려진 재료들을 재활용했다. 또한 세계 최초의 태양열 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는 자연발효 화장실을 개발해 지역주민들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역 주민들은 생소한 풍경에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페스티벌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공장 주인들은 예술가들에게 아예 거주해서 공동 작업을 할 것을 제안했다. 마침내 1979년 6월9일 우파파브릭이 공식적인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 우파파브릭을 찾은 주민들로 가득찬 카페. 카페의 수익금은 우파파브릭의 운영자금으로 활용된다.

현재 우파 파브릭에는 30명의 거주자(12세대)와 200여명의 협력자가 생활한다. 협력자란 정원손질, 사무직 등 우파파브릭에서 제공한 일자리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화가, 수공업자 뿐 아니라 청소부까지 모두 고용계약서를 작성한 사람들이며 원한다면 얼마든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파파브릭은 지역주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이다. 주민들이 배울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워크샵을 개최해 참여를 유도하며 매주 10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와서 배우고 간다. 어린이와 연금을 받는 노인을 연계시켜 함께 자전거를 고치고 컴퓨터를 배우는 1·3세대 멘토링 같은 활동과 벼룩시장, 주민을 대상으로 상담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우파파브릭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와 문화행사, 프로그램 등으로 주변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도 상당수다.

우파파브릭 동물농장에서 만난 지역주민 마그나 앙글라(Magna Angela)씨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일주일에 한 두 번 우파파브릭을 찾아온다”며 “동물도 태워주고 요가와 꽃꽂이 강좌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마그나 앙글라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가 우파파브릭을 이용하기 위해 다시 이곳으로 이사해왔다.

우파파브릭은 현재 지역주민은 물론 세계각지에서 연간 25만~30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지역공동체문화로 동서통합 실마리

용인의 작은도서관과 독일 베를린의 우파파브릭은 뜻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한 지역공동체 문화의 현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파파브릭이 거주자와 협력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것처럼 작은도서관도 지역주민의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프로그램 또한 지역주민 중 영어를 잘하거나 꽃꽂이 자격증 등을 갖춘 사람을 활용해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외부강사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는 재정이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파파브릭 또한 재정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우파파브릭은 정부에서 지원받는 부분이 미미하기 때문에 대부분 카페, 레스토랑, 빵집, 교습소 등을 통해 생기는 수익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거주자와 협력자들은 대부분 1인당 3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월급은 1개 직업으로 한정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의적 생각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주민의 많은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용인은 이미 작은도서관 운동을 통해 지역공동체 문화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대형복합문화시설의 건설에도 이를 외면하는 서쪽주민과 접근성이 떨어져 문화적으로 소외받는 동쪽주민 모두 지역공동체 문화를 통해 통합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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