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15구간 식생

나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산, 역시 나무에 눈길이 많이 간다. 그 동안 잎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나무의 수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형뿐만 아니라 겨울눈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잎이나 꽃, 열매 없이 나무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겨울눈을 익히는 것인데, 겨울눈을 보기엔 지금이 적기다. 겨울눈이란 봄에 꽃이나 잎을 피우기 위해 미리 만들어져서 겨울을 나는 눈이다. 보통 나뭇가지에 동그랗거나 뾰족하게 달려있다.

▲ 굴피나무겨울눈

산 초입에 물오리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위치로 봐선 심은 것들일 가능성이 많다. 주로 절개지나 경사면에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심는 대표적인 나무가 바로 물오리나무다. 이 나무는 나무기둥에 사람 ꡐ눈ꡑ모양의 독특한 무늬가 있다. 이건 가지가 떨어진 곳을 나무 스스로 치료하면서 생긴 것인데 팥배나무, 찰피나무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물오리나무에 있는 이 눈 모양이 가장 선명하다. 부릅뜬 눈 모양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이 나무를 버릇없이 째려본다고 싫어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눈 많은 괴물처럼 생겼다고 무서워한다. 물오리나무의 또 다른 특징은 겨울눈이 성냥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겨울눈이 성냥개비 끝에 있는 ‘황’ 처럼 동그랗다.

▲ 진달래

물오리나무 옆에 호랑버들도 많이 보인다. 이 나무 역시 절개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나무로 겨울눈이 무시무시한 호랑이 발톱처럼 생겼다. 색도 붉은 갈색이어서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진달래와 철쭉도 나란히 자라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혼동하는 진달래와 철쭉은 겨울눈이 다르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열매도 다르다. 진달래가 겨울눈이나 열매 모양이 좀 날씬하다. 둘을 비교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나무를 좀 아는 사람도 혼동하기 쉬운 나무중 하나가 쪽동백나무와 때죽나무다. 물론 잎 모양도 다르고 수형도 다르지만 처음 나무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두 나무를 자주 혼동한다. 하지만 겨울눈을 제대로 보고나면 두 나무의 차이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쪽동백나무의 겨울눈은 벙어리장갑처럼 생겼다. 크기도 때죽나무에 비해 월등히 크다. 도깨비 뿔처럼 생긴 물푸레나무의 겨울눈도 멋지다. 굴피나무의 겨울눈도 멋진 자태를 뽐낸다. 떡갈나무는 커다란 잎을 내는 나무다. 큰 잎은 얼굴을 가릴 정도다. 겨울눈도 크고 멋지게 생겼다. 털까지 복슬복슬하게 나 있어 금방 구별할 수 있다. 털 하면 개암나무도 한 몫 한다. 잔가지가 온통 털투성이다. 보리수나무의 겨울눈은 꼭 보리처럼 생겼다.

가을에 앙증맞은 자주색열매가 달리는 작살나무의 겨울눈은 잔가지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마주나며 연한 갈색으로 끝이 약간 휜 길쭉한 모양이다. 생강나무는 동그란 꽃눈과 길쭉한 잎눈을 같이 볼 수 있다. 독특한 모양의 열매를 달고 있는 고추나무의 겨울눈은 참 매력적이다. 통통한 게 귀엽기까지 하다. 무시무시한 붉은 가시를 잔뜩 달고 있는 곰딸기의 겨울눈은 가시완 다르게 참하게 생겼다. 매끄럽고 싱싱해 보인다. 누리장나무의 겨울눈은 뾰족한 촛불처럼 생겼다. 회잎나무의 겨울눈은 초록색 기와를 차례차례 포개놓은 것처럼 생겼다. 조팝나무의 겨울눈은 꽃만큼이나 앙증맞고 예쁘며 팥배나무의 겨울눈은 날카로운 창처럼 생겼다.

▲ 개옻나무씨앗

온통 갈색의 산에서 다른 색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눈여겨보면 다른 색을 찾을 수 있다. 갈색 낙엽 사이를 뚫고 잣나무가 올라오고 있다.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나무가 힘겹게 올라오고 있다.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쥐똥나무와 청가시덩굴에선 검은색 열매를 찾을 수 있다. 청미래덩굴에선 빛바랜 붉은색 열매를 찾을 수 있다. 개암나무에선 연한 노란색을 띤 수꽃이삭을 찾을 수 있다. 물푸레나무에선 나무껍질에 있는 하얀색 무늬를 찾을 수 있다. 포도송이처럼 생긴 열매를 달고 있는 개옻나무에선 하얀 바탕에 검은색 줄이 가로로 쳐진 조그만 씨앗을 찾을 수 있다. 소나무나 노간주나무에선 생명력이 뚝뚝 떨어지는 초록은 아니더라도 검푸른 초록을 찾을 수 있다.

겨울 산에서 나무를 보는 또 다른 재미, 바로 겨울눈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온통 갈색, 회색의 산에서 숨겨진 색을 찾는 것도 재미있다. 물오리나무, 보리수나무, 갯버들, 오동나무, 산초나무, 상수리나무, 노린재나무, 국수나무, 느릅나무, 굴참나무, 올괴불나무, 매화말발도리 등 오늘도 수많은 나무들과 눈 맞춤한 하루였다.

▲ 노랑턱멧새

 새와 곤충

역시 겨울 산에선 새가 눈에 많이 띈다. 그 동안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인 녀석은 노랑턱멧새다. 녀석은 이름 그대로 턱 밑이 노랗다. 되새들도 보인다.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겨울철새로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다닌다. 크기는 노랑턱멧새와 비슷하다. 멱 주변에 붉은 갈색이 많은 녀석이다. 나무를 거꾸로 내려오고 있는 동고비도 보인다. 통통한 몸매가 매력적인 녀석이다. 녀석은 딱따구리가 쓰다 버린 나무 구멍을 자신에게 맞게 리모델링하는 녀석으로 유명하다. 구멍 주변에 흙을 발라서 구멍 크기를 자신에게 맞게 줄여 사용한다.

딱따구리가 쓰던 구멍을 그냥 사용하지 않고 힘들게 줄여서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구멍이 크면 천적이 들어오기 쉽다. 그리고 큰 구멍으로는 큰 천적이 들어올 수 있다. 동고비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구멍 크기를 자기 머리에 맞춘다. 자신이 겨우 들어 갈 수 있는 크기로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놔도 딱따구리가 마음이 바뀌면 집을 내주어야 한다. 딱따구리가 다시 자신의 옛집을 사용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동고비 정도는 금방 쫒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소나무가 자라는 곳에 쇠박새가 보인다. 작고 앙증맞은 녀석이다. 크기가 참새 3분의 2 정도 되는 녀석으로 멱에 조그만 검은색 무늬가 있다. 이 무늬가 넥타이처럼 길면 박새, 스카프처럼 목둘레를 감싸면 진박새다. 박새 중에 가장 작기 때문에 이름에 작을 소(小)의 뜻을 가진 ‘쇠’ 자가 붙었다.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녀석이다. 녀석 주변에 녀석보다 훨씬 작은 새가 보인다. 부산하게 날아다니는 것이 방정맞아 보이기까지 한다. 상모솔새라고 불리는 아주 작은 새다. 연한 회색과 연두색의 깃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검은색 머리에 오렌지 빛 줄무늬를 가지고 있는 멋진 녀석이다. 이 무늬가 상모를 쓴 것처럼 보이고 소나무 씨를 좋아하기 때문에 상모솔새란 이름이 붙었다. ‘찟찟’ 하는 작은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소나무나 단풍나무 등을 이리저리 바쁘게 날아다니며 씨앗을 먹는 녀석이다.

사교성이 뛰어난 곤줄박이도 보인다. 곤줄, 즉 검은색 줄무늬가 있기 때문에 곤줄박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이다. 혹자는 녀석의 몸 색이나 무늬가 전통 혼례 때 여인들이 얼굴에 그렸던 ‘곤지’ 처럼 보이기 때문에 곤지박이가 변하여 곤줄박이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등산객들과 아주 친한 녀석으로 손바닥에 땅콩을 올려놓으면 와서 먹을 정도다.

▲ 깃털

숲의 수다쟁이 직박구리와 멋진 비행 솜씨를 자랑하는 까마귀도 보인다. 까마귀는 ‘재수 없는 새’ 라는 인식 때문에 괜히 녀석을 보면 침을 ‘퉤’ 하고 뱉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왜 까마귀는 재수 없는 새가 되었을까? 제주도에서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까마귀는 저승사자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죽을 사람의 명단을 가지고 가서 그 사람 앞에서 울면 저승사자가 그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가 그만 그 명단을 잃어버리고 만다. 겁이 난 까마귀는 아무대서나 울어버렸다고 한다. 그 때마다 저승사자는 그 사람을 데려가고, 그 때부터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든가 재수 없는 일이 생긴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까마귀는 새 중에서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새다. 어미를 극진하게 봉양하는 새로도 유명하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고사가 있을 정도다.

겨울 산에서는 곤충들을 보기 어렵다. 흔적들만 보일 뿐, 참나무혹벌의 벌레집이 많이 보인다. 속이 훤히 드러난 것도 보인다. 버드나무에 달려있는 수양버들혹파리의 벌레집도 보인다. 노랑쐐기나방의 고치도 보인다. 길쭉한 콩알처럼 보이는 고치는 갈색 줄무늬가 있어 아름답다.

야생화

꽃이 지 난 왕고들빼기의 모습이 하얀 별처럼 보인다. 이고들빼기도 별을 잔뜩 달고 있다. 은대난초의 겨울 모습은 특이하다. 하얀색 꽃이 피었던 자리는 타다 만 나무기둥처럼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다. 잎과 열매가 고스란히 말라있는 모습이 폐가처럼 보인다. 지난 날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등산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을 은대난초의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하늘말나리의 씨방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하늘을 날기 전 마지막 점검을 받고 있는 기구 같은 모습니다.

▲ 고삼씨앗

특이한 모습을 한 풀이 보인다. 키는 1m 정도. 붉은 갈색의 줄기가 휘어짐 없이 꼿꼿하다. 언뜻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꼬투리를 잔득 달고 있다. 벌어진 꼬투리에는 길쭉한 팥알 모양의 열매가 들어있다. 고삼이다. 쓸 고(苦)자를 쓴다. 잎과 뿌리가 무척 쓴 식물이다. 이 식물을 가르쳐 줄 때 꼭 맛을 보게 한다. 물론 아주 조금, 맛을 본 사람이 쓰다고 퉤퉤거릴 때 이렇게 얘기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쓴 맛을 보는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년? 아니 바로 고등학교 3학년, 즉 고삼 때다.

그 밖에 많은 들꽃들이 흔적으로 남아 있다. 거름으로 변해 다른 동료들을 위하기도 하고, 지상부는 말랐지만 뿌리로 내년 봄을 기약하기도 한다. 성질 급한 아니, 전략과 전술이 뛰어난 들꽃들은 이미 방석 모양의 뿌리 잎을 내고 겨울과 당당히 맞설 준비를 하고 있다. 장미꽃을 닮은 뿌리 잎을 로제트라고 부르는데 가장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는 녀석들은 달맞이꽃들이다. 정말 장미처럼 보인다. 겨울, 들꽃들과의 만남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 왕고들빼기

왕고들빼기, 이고들빼기, 장구채, 미꾸리낚시, 노루발, 큰엉겅퀴, 하늘말나리, 단풍취, 삽주, 겨울 산에서 흔적으로 만난 녀석들의 이름을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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