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 (14)

어비리 장율→ 묘봉→ 갈미봉→ 시궁산→미리내고개(애덕고개)→ 407고지→ 원삼 학일리

“사각사각…사각사각….”

들리는 것은 오직 낙엽을 밟는 발소리 뿐이다. 지난 탐사때만 해도 단풍으로 물든 가을의 정취가 느껴졌다. 2주만에 자연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탐사단원들을 맞이한다.

예상대로 이동면 어비리 장율에서 원삼면 쌍령산에 이르는 13km의 탐사길은 험난했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작은 산등성을 넘고 또 넘었다. 약 30여분을 쉼없이 올랐을까. 묘봉이다. 묘봉(卯峰)이란 봉우리가 토끼모양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방위상 동쪽 방향을 뜻하기도 한다. 마을이름인 묘봉리도 여기에서 연유됐다.
최근 묘봉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밑자락에 용인시장례문화센터가 추진되면서 찬반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며 시궁산 줄기를 따라 걷는 탐사 길은 갈미봉에 이르러 다시 한번 발걸음을 멈췄다. 단가인 농부가 한 대목에도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묻어 들어온다”라는 노랫말이 있거니와 전국적으로도 같은 지명이 여럿인 그 갈미봉이다.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눈에 띄는 산소자리가 보이는데,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 묘역이다. 갈미봉을 향해 있는 묘역은 1995년, 고향 전남 신안군 하의도 선산에서 이장해 조성됐다. 아무튼 그 후 2년이 지나 대권에 성공했으니 단연 풍수지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순례코스가 되었다.

천주교 성지 루트를 따라서

유명한 지관 손석우씨가 잡았다고 알려진 묘역은 좌청룡이 가까이 있어 ‘금시발복형(今時發福形)이라서 큰 뜻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더러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의 명당이어서 천자가 날 땅이라는 풍수적 해석도 있다. 아늑하고 산세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발복이라는 것이 ‘선대가 덕을 베풀고 본인 역시 공덕을 쌓은 후, 그 다음이 명당자리’라는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 자신부터 열심히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종주 거리 13km. 장장 7시간여에 걸친 탐사길은 힘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역사의 한 순간을 계속 떠올리게했다. 시궁산과 쌍령산 사이를 걸으며 우리 일행은 오른편에 있는 구조물을 계속 보게 됐는데, 다름아닌 미리내 천주교 성지이다. 한국 최초로 서품을 받고 끝내 순교한 김대건 신부. 그가 신유박해를 피해 어린나이인 6세때 처음 용인으로 이사해 정착한 곳이 미리내에서 멀지 않은 묵리 한덕, 일명 광파리골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골배마실(양지 남곡)로 옮겨 어린시절과 청년기를 보내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 역시 골매마실 은이공소였다. 뿐만이 아니다. 새남터에서 순교 후 미리내로 유해가 옮겨지던 그 경로가 시궁산과 쌍령산 사이에 있는 묵리 애덕고개였으니, 우리 시계탐사단이 통과하는 길목이다.

잠시 멈춰 탐사단 일행은 애덕고개비를 살펴본다. 1998년 천주교 수원대교구에서 세운 기념비에는 김대건 신부가 사목활동을 했던 길이며 동시에 순교 후 유해운구 길임을 알려준다. 새남터에서 미리내까지 죽음을 무릎쓰고 유해를 옮긴 ‘이민식’이란 이름도 눈에 띄는데, 그가 바로 묵리 출신이다.

그의 후손은 원삼면 고초골에 살고있으니 이 일대야말로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가진 고장이다. 우리가 밟는 탐사길은 천주교의 순례길과 교차하는 셈이다.

▲ 용인시계대탐사에 참가한 일부 단원들이 쌍령산 정상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쌍령산에서 본 용인

결국 탈이 났다. 평소 산행으로 다져진 대원들이었지만, 6시간이 넘는 험한 길은 벅찼던 모양이다. 더구나 간간히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바람까지 심하게 몰아친다. 몇몇 대원이 거의 탈진수준이다. 계속 무리하게 걷기는 힘에 부친다. 쌍령산 등줄기를 타면서 일부는 고초골 등산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실은 이때부터 시계탐사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좁은 등마루 산길을 따라 걸으며 양쪽으로 펼쳐진 산하는 기꺼이 시계탐사에 나선 단원들의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구름사이로 햇살이 퍼지는 가운데 멀리 이동저수지까지 반짝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마침내 쌍령산 정상에 섰다. 너나할 것 없이 손을 뻣어 환호한다. 눈을 들어 동편을 본다. 우리가 다음 탐사에 나설 구봉산 자락이 위엄있게 펼쳐져 있다. 오늘 경험 탓일까. 단원들은 걱정스런 눈빛 보다 강한 도전의식이 넘쳐난다.

/용인시계대탐사단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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