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13)

“시계탐사를 하면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경계와 영역에 대한 관심인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이즈음이 용인일까 아닐까 궁금해지곤 하더라고요.” 공감되는 말이다. 아마 경부고속도에서 부산방향으로 기흥을 지나다 보면 웬만한 사람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화성시 동탄면을 통과하고 오산시를 거치면 용인은 다 지났나 싶지만 그렇지 않다. 이어진 평택 진위면을 거쳐 나타나는 곳은 다시 용인이다.

이곳이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와 진목리 일대다. 진목리를 지날 때면 고속도로 왼편으로 끝없이 평야지대가 펼쳐지는데, 봉무·방아리 일대다. 용인시계대탐사 대원들의 13차 탐사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경계로 진목리 통산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이때 의문이 생긴다. 고속도로가 나기 전엔 어디가 경계였을까. 고속도로 넘어 평택 일부가 용인 땅이었다.

특히 평택시 진위면에 속해있는 월경마을이 있는데, 과거엔 진목1리로 중심격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다. 월경마을은 하필 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르는 바람에 평택으로‘넘어갔으니’그야말로 졸지에‘월경(越境)’하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옛 선조들은 ‘땅에도 팔자가 있다’하여 예언지명, 또는 우합지명(偶合地名)이라 했다.

▲ 13차 시계대탐사구간

농촌부흥을 꿈꿨던 진목리의 실험

고속도로가 생기던 1969년부터 경지정리가 시작되어 바둑판같은 농경지로 변모한 진목리 일대는 또 한 번의 비상을 꿈꾸던 때가 있었다. 협동화단지였다. 지금은 순지마을이 용인특산 오이재배지로 널리 알려졌고 일본에 까지 수출하게 되었지만, 농촌개혁의 시작은 통산마을이었다. 1970년대 후반 농촌부흥을 꿈꾸던 진위교회 목사가 앞장섰다. 교인들을 중심으로 ‘부민농원’을 세웠다. 공동투자와 수익에 대한 공동배분을 원칙으로 한 부민농원은 땅 가진 사람이 1천여평씩 대고, 없는 사람은 자본금을 투자하여 협동화단지를 만들었다.

‘공동투자·공동생산·공동분배’방식이었으니, 당시로선 익숙하지 않은 형태였으며, 매우 실험적이고 앞서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질 않았다. 양계단지로 전환했지만 다시 실패하고 소유권은 개인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후 콘크리트 양돈시설을 짓고 대규모로 돼지를 키웠지만 역시 80년대말경 폐사하고 말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진목리를 지날 때 보았을 법한 비행기 격납고같은 구조물이 바로 양돈축사였다.

원암과 아리실의 역사 속을 거닐며

남사면과 안성시 원곡면 경계지점을 따라 걷는 노정은 그리 험준한 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녹녹하지도 않다. 그간 시계탐사로 체력이 단련된 대원들이지만 황영용 산행팀장의 강행군 재촉에는 숨을 헐떡인다. 그나마 가을나무 숲 사이로 간간히 보이는 너른 들판이 시선을 즐겁게 하고 시원스레 부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얼마쯤 왔을까. 원암리다. 산길에서 내려와 드디어 평길을 걷는다. 크고 작은 공장들이 마을 틈틈히 헤집고 들어앉아 전체적으로는 우중충하고 조용한 편이다. 그럼에도 우리 농촌까지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이 있으니, 태국어로 쓰여진 원암슈퍼 간판이다. “동남아 사람들이 인근 공장에 많아 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니까 어쩔 수 없죠, 뭐”가게주인 장길원씨의 대답이다.

원암리는 풍수형국론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와우형(臥牛形)으로 알려져 있다. 즉 소가 누워있는 형국인데 마을 서쪽 우락산과 마주 보이는 동쪽 우두산 아래 널찍하게 자리잡은 구렛뜰이 있다. 그 옆에 마치 어미 소 한쌍이 누워있는 모습과 같다하여 예부터 와우미(臥牛尾)라 하였다. 풍요를 뜻하는 와우형 형국은 일제에 의해 엉뚱하게 아무 뜻도 없는 외미로 개칭되었다가 원암으로 자리잡은 경우다.

원암은 여양진씨(驪陽陳氏)가 집성하고 있는 곳으로 고려 후기 대문장가 매호 진화(陳華, 1180~1221)의 묘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호 선생은 이규보와 쌍벽을 이뤘던 고려의 대표적인 문인인데, 때 마침 오는 11일 매호공의 시비 제막식이 대대적으로 열린다는 현수막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호 8경’ 굽어볼 전망대가 있었으면…

위험한 차로를 차편으로 이동한 뒤 다시 산행 길은 사기막을 거쳐 이동면 어비리로 향한다. 서북편으로 깊숙하고 좁은 마을이 하나 눈에 띄는데 방아리 아리실이다. 기독신앙의 모태가 된 용인12실(室) 중 하나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아리실 교회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 마을이다. 마침내 어비리가 보인다. 수도권 내 대표적인 담수호인 이동저수지가 몇 개 마을에서 뻗어내린 물줄기를 받아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다.

“쌍령산에 해가 돋고 수선대에 달이 밝아, 탁영정자에 친구 모여, 돌무루네서 낚시질하고, 용강에 해가 지면, 방목리 저녁연기 오르고, 금단사 새벽종 소리, 갈마산 솔잎에 쌓이네”

어호 8경(魚湖 八景)이라 하여 누가 남긴 글이다. 안타까운 것은 8경을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 장소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이미 대부분 산은 숲이 우거져 아무리 정상부에서 눈을 들어봐도 제대로 감상할 곳이 마땅찮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호 8경’에 취해볼 운치있는 전망대를 하나 세워 봄이 어떨까. 나중 물어보니 우리 대원들은 대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인시계대탐사단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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