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캔버스에 아름다운 시간들을 그리다

“…김혜자 어머님.”, “저기, 할머니.”
“아이 참, 아직 젊은데…언니지? 호호.”

18일 아트센터 순수(수지구 성복동)에서 생애 첫 전시회를 여는 김혜자(76·수지구 신봉동)씨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언니’라는 호칭을 좋아한다면서 20대 못지않은 젊음을 과시했다.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여느 노인과 달리 김씨의 하루는 짧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자식들 키우며 바쁘게 사느라 20여 년간 그림을 멀리 두고 지켜봐야 했지만 그림을 향한 그의 애정은 언제나 각별했다. 그리고 또 그려서, 그림은 집안을 가득 채웠고 그의 마음 또한 풍성해졌다.

“첫 전시회, 정말 좋죠. 전시를 통해 사랑하는 지인들과 기쁨의 시간을 갖는 것 또한 기대되죠.” 첫사랑을 하는 소녀의 수줍음과 설레임이 고스란히 녹아내렸다.

# 40대 중반 사별, “살다보니 잊고 살았죠”

김씨는 무남독녀로 함경도 청진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광복이 되면서 남한으로 내려온 김씨는 경북 상주에 터를 잡았고 경북 상주여중에서 1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꽤 잘했다.

“내가 1등한 얘기는 꼭 해야 돼요. 선배 언니 남편이 상주 여중 교사라 학적부를 찾아 봤는데 모임에 갔더니 사람들한테 ‘진짜 1등 했다’고 말하더라고. 왜 그런가 하니, 그 당시에는 지역에서 태어난 학생이 아니면 1등 하기 어려웠거든.”

그는 소녀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남편 얘기를 꺼냈다. 수도여고를 졸업한 김씨는 일본어에 능통했고 책가방을 들고 나서면 남자들이 줄을 설 만큼 인기가 많았다. 그 모습에 반한 남편을 21살에 만난 김씨는 결혼을 하면서 이화여자대학을 중도에 그만뒀다.

“젊은 시절 남자들이 좋아해서…이런 얘기해도 되나 모르겠네. 하하. 그 때는 예쁘니까 책가방도 빼앗아 가고 그랬지. 무남독녀로 귀하게 자란 덕에 결혼해서도 남편이 데리고 놀러다니고 죽기 전까지 손잡고 돌아다녔으니까.”

46세에 남편과 사별한 그는 혼자 몸으로 유명호텔에서 토산품을 판매하며 1남2녀를 키웠고 자식을 출가시키기 전까지 하루도 일손을 놓지 않은 적이 없다.

“아는 사람들은 꿋꿋하게 잘 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칭찬을 많이 하죠. 치마만 둘렀지, 남편 떠나고 남자같이 살았으니까. 그래도 무남독녀로 자랐는데 지금은 손자손녀까지 12식구나 되니까 너무 행복해.”

이렇게 자식들 키우며 가장 노릇을 해온 김씨는 취미로 그렸던 그림을 잊고 살았다. 1965년 한국일요화가회 등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지만 그림 그릴 시간이 없었다.

“전시회 소식을 들었으면 남편이 가장 기뻐했을 거예요. 그래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이렇게 전시회도 열게 됐네요.”

# 24일까지 아트센터 순수서 첫 전시회

그림을 워낙 좋아한 김씨는 활발하게 활동한다. 오랫동안 몸담아 온 한국일요화가회에서 1996년 우정상을 받았고 1998년 현대미술전, 2003-2005년 예술의 전당 회원전에 참여했다. 또 지난 8월에는 세계평화미술대전에 특선을 수상했고 오는 31일 경기대학교 유화반 학생들이 모인 순후회 전시회에도 작품을 선보인다.

4년 전 서초동에서 수지구 신봉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막내딸이 신봉동 도마치 화실을 우연히 들러 갤러리 순수와 인연을 맺게 된 김씨는 지난 5월8일 어버이날 ‘제1회 때때회 5인전’을 열면서 개인전 준비를 시작했다.

‘때때회 5인전’은 아트 센터 순수에서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부모님들의 미술전시회 마련한 것이다. 이 전시회에 참여한 작가의 평균 나이가 75세여서 의미가 남달랐다.

아트센터 순수 강순진 대표는 “저희 아버지도 2006년에 개인 전시회 열흘을 앞두고 돌아가셨는데 자식으로서 참 안타까웠다”며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때때회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참여하신 어르신들 모두 가족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화폭에 담아 멋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같이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올 여름 더위도 잊은 채 그림을 그렸다. 첫 개인전에 누구보다 애정을 쏟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공기 좋은 용인에서 아파트 창문을 열고 그림을 그리면 잘 때도 온통 머릿속이 그림으로 채워진다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보면 우습다 볼 수 있지만 제 나이에 그림을 그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이 의미가 있죠.”

그래서 그의 생애 첫 개인전에 이름 세글자가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시간들-김혜자 전’. 18일부터 24일까지 성복동 데이파크 안 갤러리 아트센터 순수에서 작은 소품부터 30호 2점 등 40여 작품이 첫 선을 보인다.

‘젊은 혜자 언니’의 아름다운 시간들은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인생이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으로 옮겨지는 중이다. (전시회 문의 019-489-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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