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제 11구간 식생

야생화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논에는 벼들이 황금빛 춤을 추고 있다. 일행에 놀란 벼메뚜기들이 도망가기에 바쁘다. 붉은 찔레 열매와 검게 변한 차풀의 꼬투리, 그리고 벌어지기 시작한 밤송이들,...... 어느새 가을이다.

▲ 꽃향유
참취의 흰 꽃도 떨어지고 그 자리에 연둣빛 열매가 맺혔다. 보라색 산박하 꽃도 다 떨어지고 독특한 삼각형 모양의 열매가 달려있다. 제철을 만난 꽃향유는 온갖 곤충들을 유혹하며 눈길 주는 곳마다 무리지어 피어있다. 한쪽 방향만 바라보고 핀 짙은 분홍빛 꽃향유는 이름도 예쁘지만 향이 일품이다. 꽃송이가 약간 성긴 향유와 더불어 대표적인 방향 식물이다. 가을에 한줌 따다가 말려서 차안에 두면 아주 기분 좋은 냄새가 난다.

산길을 따라 걷다보니 작은 무덤이 나타난다.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철부지 제비꽃이 피어있다. 날씨가 정신을 못 차리니 꽃들도 철을 잊었나보다. 누렇게 변해가는 잔디 사이로 조롱조롱 연둣빛 구슬을 달고 있는 여우주머니가 보인다. 요즘 자주 보이는데 이 녀석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물봉선도 줄지어 피어있다. 잘 익은 열매는 손을 대자마다 톡하고 터진다. 보랏빛 쑥부쟁이는 마음껏 자태를 뽐내며 이 가을을 즐기고 있다. 정말 모든 게 다 용서될 정도로 아름다운 가을이다.

노란색 이고들빼기가 산길을 따라 줄 지어 피어있다. 산국은 아직 꽃봉오리를 열지 않았지만 노란색을 품은 연두색 꽃망울들이 곧 터질 기세다. 이 녀석들이 드러나면 본격적인 가을이다. 나도송이풀의 분홍빛 꽃도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앙증맞은 고마리와 미꾸리낚시 꽃들은 올망졸망 귀엽게 피어 수다를 떨고 있다. 파란색 닭의장풀은 마지막 꽃을 피우고 있다. 곧 꽃송이 그대로 떨어져 녹아내릴 것이다. 다른 꽃들은 지지만 이 녀석은 녹아내린다.

들깨풀과 산들깨도 여기저기 무리지어 피어있다. 손으로 살짝 감싸보면 고소한 깨 냄새가 손에 밴다. 노란색 활주로가 꽃 중앙에 있는 주름잎도 보인다. 아주 작은 녀석이지만 저 활주로에 곤충들이 내려앉을 것이다. 주름잎 옆에는 ‘중대가리풀’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들꽃도 보인다. 아주 작아서 땅에 납작 엎드려야 겨우 보이는 녀석이다. 동그란 열매가 절집의 스님들 머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가리 하니까 생각나는데, 우리주변에는 대가리 4형제가 있다.

▲ 중대가리풀

파 꽃을 닮은 파대가리. 왕골처럼 생긴 방동사니대가리, 조그만 대가리가 세 개 뭉쳐 달리는 세대가리, 그리고 중대가리,......이들이 바로 대가리 4형제다. 대가리 얘기를 하고 걷는데 바닥에 잔뜩 깔린 개여뀌 사이로 뭔가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바로 파대가리다. 일행 중 한명이 문제를 낸다. 파대가리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요? 글쎄,......파 냄새? 대가리 냄새? 대가리 부분을 따서 살짝 비벼보면,......놀랍게도 대가리에서 딸기 냄새가 난다. 딸기냄새가 나는 파대가리,......유쾌한 가을이다.

많은 들꽃들이 열매를 달고 있다. 지난여름 노란색 꽃을 활짝 피웠던 물레나물은 갈색으로 익어가는 뾰족한 원뿔 모양의 열매를 가지 끝마다 네다섯 개씩 달고 있다. 잎이 물레나물과 비슷한 고추나물도 까만 열매를 달고 있다. 신비로운 보랏빛 꽃을 피웠던 무릇은 조그만 주머니마다 까만 열매가 두서너 개씩 들어앉아 곧 세상 구경을 나갈 기세다. 큰까치수영은 커다란 꼬리 같은 열매를 달고 있다.

▲ 산부추

뚝갈도 흰색 꽃이 달린 곳마다 촘촘히 연두색 열매가 맺혀있다. 괭이밥은 꽃과 함께 초록색 로켓 같은 열매가 같이 달려있는데 곧 터질 기세다. 애기나리들은 오래된 종이처럼 변색되어가는 잎을 달고 가지 끝마다 까만 열매를 하나씩 달고 있다. 이파리 하나하나에 진한 추억이 묻어난다. 석류풀은 지저분할 정도로 많은 열매가 달려있다. 솜사탕 같은 하얀 열매를 달고 있는 붉은서나물과 큰엉겅퀴는 바람이 불자 씨앗들을 하나 둘씩 떠나보낸다.

주름조개풀과 미국가막사리 열매는 바늘 같은 가시가 달려있어서 옷에 잘 붙는다. 주름조개풀은 바짓가랑이에 미국가막사리는 등에 붙어서 멀리멀리 옮겨달라고 떼를 쓴다. 꽃과 열매들 그리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아름다운 이 가을을 축하하는 산부추의 불꽃같은 꽃망울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 산초나무



곤충

산길을 걷는 내내 매미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찌찌찌찟 찌~ 하고 울어대는 좀 독특한 소리다.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나타나는 늦털매미들의 사랑을 구하는 노랫소리다. 다른 매미들이 모두 임무를 완수하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 간 시간, 늦털매미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녀석들은 애매미나 참매미 등 다른 매미들에 비해 몸에 털이 많다. 갑자기 떨어지는 날씨를 대비한 것이리라. 파란 가을 하늘과 새하얀 구름,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그리고 늦털매미들의 세레나데, 멋진 가을날 아침이다.

꽃향유에서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는 어리호박벌이 보인다. 뱀허물쌍살벌도 보인다. 겨울 채비를 하는지 땅 속 구멍에서 머리를 내민다. 갈참나무 잎 위에는 작은주걱참나무노린재라는 긴 이름을 가진 노린재 한 마리가 햇빛에 몸을 말리고 있다. 빨간 다리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는 녀석이다. 팔공산밑들이메뚜기도 보인다. 조그만 갈색 날개 싹이 옆구리에 안쓰럽게 붙어있다. 풀밭에선 팥중이가 뛰어다닌다. 짝짓기에 열중하고 있는 벼메뚜기들도 보인다. 멧팔랑나비와 네발나비는 꿀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 뱀허물쌍살벌

멋진 청띠신선나비가 날아온다. 아기손바닥 만한 검은색 날개에 청색 띠가 있는 멋진 나비다. 녀석은 땅에 내려앉아 뭔가를 먹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놀라 날아오른다. 방아깨비도 긴 다리를 겅중거리며 알 낳을 자리를 찾고 있다. 녀석들은 짝짓기를 마치고 나면 암컷이 땅을 파고 그 곳에 젤리 같은 보호막에 쌓인 알을 낳고 흙으로 덮는다. 땅속에서 겨울을 난 알들은 내년 봄, 찬란한 봄을 즐길 것이다. 방아깨비들은 커다란 몸 때문에 비행술이 떨어지는데 수컷들은 이 결점을 보완이라도 하려는 듯 ‘따다다닥’ 하는 무서운(?)소리를 낸다. 녀석들이 따닥깨비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 청띠신선나비

고추좀잠자리와 깃동잠자리들도 마지막 비행을 하고 있다. 이 가을이 깊어 가면 녀석들은 하나둘 땅에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트모양으로 서로 얽혀 짝짓기를 하고 있는 두점박이좀잠자리 부부가 보인다. 짝짓기를 끝낸 다른 부부는 물을 치듯이 산란을 하고 있다. 웅덩이에 떨어진 알들은 겨울을 견디고 나서 봄이 되면 수채로 태어나 웅덩이의 강자로 자랄 것이다. 물속 사냥꾼으로 부모의 명성을 잇다가 날개돋이를 하고 나면 부모처럼 사랑을 하고, 알을 낳고,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생명의 순환,......가을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산길 옆 콩밭에는 노린재들이 많다. 풀색노린재가 먼저 보인다. 성충도 보이지만 애벌레들이 여럿 보인다. 이 녀석들은 언제 부화를 했느냐에 따라 몸의 색과 무늬가 다르다. 전체적인 바탕색은 초록이지만 등에 나타나는 무늬가 다르다. 아예 무늬가 없는 녀석도 있고 검은색과 붉은색, 갈색이 작은 바둑판처럼 교차하는 무늬가 나타나는 녀석들도 있다. 무늬가 많고 진한 녀석이 부화한지 오랜 된 큰 녀석들이다.

콩잎 위에 개미처럼 보이는 노린재 애벌레들이 여러 마리 보인다. 모두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들의 애벌레들이다. 이 녀석들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개미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는 개미를 흉내 내는 녀석들이다. 개미처럼 보이는 생존전략을 쓰는 녀석들이다. 마치 등에들이 벌을 흉내 내듯이,......이런 것을 의태라고 한다.

약한 곤충들이 강한 무기를 가진 곤충들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다. 베짱이들도 보인다. 곧 알을 낳을 것 같은 줄베짱이가 보인다. 베짱이는 정말 이솝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게으름뱅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 조상들은 베짱이를 부지런한 곤충으로 인식했다. 이름도 베짱이, 즉 부지런히 베를 짜는 곤충이란 뜻으로 불렀다. 녀석들의 울음소리는 ‘서어 썩’, 하고 들리는데 이 소리가 베를 짜는 것처럼 들린다. 줄베짱이는 암컷과 수컷의 줄무늬가 약간 다르다. 배 끝에 산란관이 칼처럼 위로 휘어있고 등의 줄무늬가 흰색이면 암컷이다. 수컷은 당연히 산란관이 없고 등의 줄무늬도 갈색이다. 녀석들도 깊어 가는 가을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 갈 것이다. 위대한 임무를 다 완수하고,...‘생명 잇기’라는.

커다란 왕귀뚜라미가 한 마리 보인다. 다리를 다친 것 같다. 움직이질 못한다. 배 끝을 보니 침처럼 생긴 기다란 산란관이 나와 있는 것이 암컷이다. 배를 보니 아직 알을 낳지는 않은 것 같다. 귀뚜라미들은 여름에는 숲에 살다가 가을에 되면 인가 근처로 모여 든다. 추운 숲보다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더 따뜻해서리라. 더 추워지면 집안 까지 들어오는 녀석들도 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들리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낭만적이지만 녀석들에겐 절실하다 ‘생명잇기’를 해야 하는 절실함이 묻어있는 절규다.

가을은 아름답다. 결실이 있어 아름답고 생명의 절규가 있어 아름답다. 다시 못 볼 가을이기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가을이기에,......곤충들에게는 절실한 계절이다. 가을이.

나무

단풍들이 물들기 시작한다. 때죽나무와 아까시나무가 먼저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붉은색 단풍이 드는 ‘붉나무’ 중 성질이 급한 녀석은 벌써 한쪽 귀퉁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가을에 나무들이 노랗게 빨갛게 옷을 갈아입는 이유는 뭘까? 엽록소라는 초록을 버리고 본연의 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생명활동을 위해 광합성을 하는 나뭇잎들은 엽록소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이 엽록소의 색이 초록색이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 나뭇잎들은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활동을 잠시 접어야 하는 혹독한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스스로 절제를 한다.

생명활동을 잠시 접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밖으로,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안으로, 자신의 내면 깊숙이 향한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은 엽록소의 생성을 억제하고 ‘떨겨층’을 만들어 스스로 나뭇잎을 떨구는 초강수를 쓴다. 엽록소의 생성이 억제되면 본연의 모습이 나타난다. 본래 노란색이었던 녀석은 노란색으로 붉은색이었던 녀석은 붉은색으로 갈색이었던 녀석은 갈색으로,......결국 단풍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들에게 가을은, 본연의 자기를 찾는 계절이다.

본연의 자기를 찾기 위해, 아니 본연의 자기를 다시 만들기 위해 나무들은 열매를 만든다.

산초나무는 흑진주 같은 열매를 가을 햇볕에 반짝이고 있다. 조그만 부채 같은 열매를 잔뜩 달고 있는 싸리나무도 보인다. 새들을 유혹하기 위해 붉은색 열매를 달고 있는 찔레도 보인다. 넓적한 꼬투리를 매달고 있는 자귀나무는 바람이 불 때마다 열매끼리 부딪쳐 소리가 난다. 옛날 점잖은 양반들은 이 소리를 싫어했는지 자귀나무를 여자들의 수다 떠는 소리가 나는 나무란 뜻으로 여설수(女舌樹)라고 불렀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얘기다. 간벌을 한 산길 주변에는 개옻나무와 생강나무가 빨리 성장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넓은 잎들을 내보내고 있다.

커다란 산딸나무와 동그란 턱잎을 달고 있는 호랑버들도 보인다. 포도송이처럼 먹음직스럽게 생긴 열매를 달고 있는 댕댕이덩굴과 기다란 꼬투리를 달고 있는 땅비싸리도 보인다.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상수리나무는 예쁜 도토리를 달고 가을을 즐기고 있다. 날씬한 바람개비처럼 생긴 열매를 달고 있는 사위질빵도 여기저기 보인다. 팥배나무와 산벚나무 물박달나무도 보인다. 바람이 불자 신나무 열매가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빙빙 돈다. 수꽃 이삭을 잔뜩 매달고 있는 개암나무도 보인다. 청미래덩굴은 잘생긴 붉은 열매를 자랑스럽게 달고 있다.

가을을 맞이한 나무들,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은 부지런히 열매를 맺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나무들에게 이 가을은 치열한 생존의 계절이다. 살아남느냐 죽느냐 하는.

/글·사진 손윤한(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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