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용인바닥(?)에서 토박이 기성세대 가운데 그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랫동안 많은 지역봉사와 함께 자신의 직업을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두가지 중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길까. 직업이었다.

▲ 맞춤복 50년 문화라사 김종학 사장
넘쳐나는 기성복에 맞춤복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맞춤복에 대한 긍지로 38년 동안 용인에서 맞춤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학씨(63).

“맞춤양복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로 고객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는 것이 철칙”이라는 김씨는‘올 때는 항상 반갑게 갈 때는 서운하지 않게’라는 모토와 30년이 넘는 전통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화라사(처인구 김량장동)를 운영하고 있다. 용인에서 제일 오래됐을 뿐 아니라 관내에서 유일하게 (사)한국복장기술협회 인정업소로 명실상부 용인 최고의 맞춤복을 만들고 있다.

용인에서 태어난 김씨는 14세 때 재단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당시 용인에서 대흥라사를 운영하던 소진흥 선생을 은사로 두고 배우던 김씨는 기술 연마를 위해 16세 때 서울로 상경했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부유한 가정을 빼고는 누구나 기술을 배우던 시기여서 공장에서 먹고 자며 기술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었지. 물론 힘든 건 말로 다 못할 정도지만 그 정도 고생할 각오도 없이 최고의 기술을 배울 수는 없지. 동기들이 교복입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가 하고 싶어 야간학교에 편입한 적도 있지만 결국 기술 배우는 걸 선택했고 지금까지 내 선택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살았지. 이 나이까지 내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군대에 가서도 재단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김씨는 제대 후 서울에서 재단사로 일하다가 마침내 1970년 지금의 문화라사를 개업했다.

김씨는 “편리한 기성복에 밀려 맞춤복 수요가 떨어지면서 70년대 23곳이나 되던 맞춤복 매장이 지금은 문화라사까지 포함해 2곳만 남았다”며 아쉬워했다.

맞춤복은 원단을 고르고 치수를 재고 가봉하는 등 완제품을 찾으려면 최소한 3번은 매장에 들러야 하고 원단에 따라 한 벌을 만드는 데 짧게는 3일에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번거로워 잘 찾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겉보기엔 차이를 못 느껴도 몸에 옷을 맞춰 입을 수밖에 없는 기성복과 달리 맞춤복이 소비자의 체형에 가장 조화롭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맞춤복은 원단부터 모든 것이 소비자에게 맞춰져 몸에 맞는 편안함 뿐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 성품, 성질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인정신’ 지역봉사에도 남다른 열정

김씨는 “지금까지 문화라사가 건재할 수 있도록 찾아준 고객들한테 감사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항상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감사의 말과 함께 “건강이 허락하는 한은 최선을 다해 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맞춤복에 대한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김씨에게는 ‘말은 남보다 나중에 하고 봉사는 남보다 먼저 하자’라는 또 하나의 철학이 있다.

김씨는 지인의 추천으로 27살 때 용인군 체육회 이사로 첫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해 용인경찰서 청소년 선도위원, JC, 로터리, 민간기동순찰대 용인시연합대장 등 지금까지도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50여개에 달하는 표창장과 감사장은 30년이 넘는 그의 사회봉사 활동을 보여준다.

지금도 ‘대장님’으로 통하는 김씨는 “젊었을 때 체육에 관심이 많아 체육회 이사로 활동하다 곳곳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봉사활동을 점차 확대하게 됐다”며 “이제는 몸에 배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나갈 정도”라고 말했다.

김씨는 오히려 “아직도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 일이냐”며 환한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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