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계대탐사 삶터따라 사백리 (10)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지금껏 9차에 걸친 시계대탐사에 나서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날씨다. 시계종주 첫날 나누어 준 비옷을 처음 꺼내들었다. 날씨 탓인지 탐사에 나선 단원들이 다른 때와는 마음자세부터가 다른 모양이다.

“이런 날 참여한 단원들이 진짜 아냐?”“대단들 하십니다”서로를 격려할 겸 던지는 말이지만, 실제 남다른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1년에 걸친 종주는 사계절을 다 경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악천후를 뚫고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그간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아스팔트 길을 걷긴 했지만, 오늘처럼 온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등산로도 없는 산길을 헤치며 걷기는 시계탐사에 나선 이래 처음이다. 그런 만큼 고생은 됐지만 모두들 가슴 한편으론 자부심이 차올랐던 모양이다.

용인· 화성사람 한마을 ‘고매동’

▲ 경계마을 고매동의 한 민가에 있는 80년 향나무.
10차 시계탐사는 기흥구 고매동에서부터 시작했다. 유즘 한창 존폐논란이 일고 있는 기흥나들목이 있는 곳이다. 고매동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경계마을의 생활과 그 특징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탐사활동 중 하나인데, 바로 이 곳은 마을 가운데를 사이에 두고 세 동네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고매동과 화성시 동탄면 영천리, 중리가 맞닿아있다. 흔히 산맥이나 강줄기처럼 자연지형이나 도로를 기준으로 경계를 이루는데 비해, 마을 안길을 사이에 두고 있으니, 실제는 거의 한 마을에 가깝다.

“한 마을이나 다름없죠. 용수대동회라고 있는데, 세 동네 사람들이 같이 모이는 계죠. 빈장산에서 매년 10월 초 산제사를 같이 지냅니다.”마을을 지나며 비도 잠시 피할 겸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만난 한 주민의 대답이다. 동제야 말로 오랜 전통과 생활을 같이하는 공동체의 상징임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행정적 경계는 인위적일 뿐이다.

고매동의 중심인 원고매는 풍수적으로 ‘매화낙지형’으로 불리는 형국에 위치해 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그 형세가 ‘매화꽃이 떨어져서 향기를 낸다’는 길지다. 그 마을 앞에는 큰 마을 숲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우리 대원들은 이것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비보(裨補) 성격의 숲이란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그 규모가 컸다. 용인에 현존하는 비보 마을 숲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느티나무와 신부나무 등으로 구성된 숲은 주위의 거센 개발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며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사유지 무단 침범’골프장을 가로지르다

잦아들기는 커녕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강행군에 나선 대원들은 또 다른 복병을 만났으니, 다름아닌 골프장이었다. 시 경계에 누워있는 골드컨트리클럽을 우회하여 가자니, 시계를 있는 그대로 따라 걷기로 한 기본 원칙에 어긋났다.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자니 막아설 것이 뻔했다. 잠시 우왕좌왕하던 끝에 몇몇 팀장들이 의논한 결과는 온 몸으로 돌파하기(?)였다.

사잇문을 이용하여 골프장에 들어서니, 라운딩 보조원이 놀란 듯 뛰어나와 막아선다. “위험합니다. 그리고 통보도 없었는데요.”“시 경계를 따라 종주하고 있는데, 골프장 사이로 경계 길이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피하더니 상부에 보고를 한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길 안내를 받아 간신히 골프장을 벗어났지만, 그 다음엔 코리아컨트리 클럽이 나타난다. 정문만 통과한 후 탐사대원 일행은 별 수 없이 길도 전혀 없는 산을 헤집고 걸어야 했다.


없는 길을 만들며 아흔아홉고개 넘어

앉아 쉴 곳도 없는 우중 산속. 더구나 길마저 없으니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나’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여성단원들도 많았지만, 어느 누구하나 불평없이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30분 여를 걸어 마침내 등산로를 찾아냈다. 이동면 서리에 있는 아흔아홉고개다. 이제부터는 기흥구를 지나 다시 처인구로 들어섰으니, 지도상으로 총 400리 길 중 거의 절반 여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아흔아홉고개’하면 매우 높고 험준한 준령인듯 한데, 실은 402m인 부아산 줄기로써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 고개를 걸으며 궁금해지는 것은 왜 아흔아홉고개라 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알져진 전설은 없지만, ‘아흔아홉’이란 수를 우리민족의 고유 상징세계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많다, 크다, 최고이다’등의 의미를 나타낼 때 여러 숫자를 관용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9’나 ‘99’는 양의 기운이 충만한 수로 주로 사용하며, ‘높다, 깊다, 길다, 많다’등의 상징의미로 봐야 한다. 앞으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원삼면 구봉산이 ‘아흔아홉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설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때, 아마도 이 고개는 ‘굽이가 많고 높은 고개’라는 것을 나타내는 과장지명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자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도시락으로 흘러들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허기진 배를 채우던 우리 단원의 모습. 추적거리는 비에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잘못 접어든 산길을 되돌아 다시 올라갔던 일 등등…

10차 탐사는 이렇게 어려운 여정이었지만, 또 하나의 목표를 이루었고,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긴 멋진 탐사 길이었다.

/ 용인시계 대탐사단 공동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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