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공학 외길 40년

▲ 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연합회 신응배 회장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경험만 나열해도 60장을 훌쩍 넘긴다.
그가 환경공학자로 살아온 인생을 대변하듯.
국제 학술지 및 학술발표 논문만 해도 67편, 국내에서는 224편,
연구보고서만 100편이 넘는다.
70년대 초반 환경 분야 전문가가 전무하던 시절, 외국 유학을 다녀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는 ‘환경 1세대 트리오’로 평가받았으며 지금은 우리나라 환경정책 역사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고희를 앞둔 그는 환경공학자로서 또 다른 준비를 하고 있다.
‘고희기념 기록물’을 남길 생각이다.
그리고…
용인의 숙원 과제인 수질오염총량제에 관한 해법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한다.

오총제 심각한데 왜 나를 가만 두는가

용인에서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수질오염관리전문가’를 처음 만나게 됐다. 종이 한 장에 요약된 이력만으로도 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연합회 신응배 회장(69·기흥구 보정동·전 교수)이 수 십 년간 그 분야에서 어떠한 활동을 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반딧불이 문화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영어회화를 가르치며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실현하고 있다. 자신의 달란트를 적극 활용해 그 일을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서서 시작한 봉사다.

그러한 그는 ‘수질오염총량제’가 용인의 숙원과제인 것에 동의하며 말을 꺼냈다.

“수십년간 이 일에 몸담아 오면서 지켜보면 지자체의 장은 임기내 사업이 완료되지 않는 것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돈이 없어서, 인력이 없어서…라고 핑계만 대요.”

그는 “정책적으로 해결의지가 있었나 묻고 싶다”며 “경안천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것에 의문이 들지만 이제 경안천 살리기는 용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안천 살리기가 대정부 차원의 정책이었다면 분명히 신 회장의 손을 거쳤다는 얘기다.

“용인에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왜 놀게 하느냐. 오총제 문제, 경안천 살리기 기꺼이 자문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용인시민인데요.”

▲ 99년 대한토목학회 부회장당시 호주토목학회와 MOU체결(상호협력교류협정) 호주캔버라에서.

우리나라 환경정책의 산 증인

그는 70년대부터 환경을 연구해 온 우리나라 환경정책 역사의 산 증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
1961년 한양대 공과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신 회장은 65년 서울대 대학원 토목공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73년 Vanderbilt University 환경공학과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16년간 몸담았다.

“대학 교수 대신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는 환경 정책에 대부분 관여 했죠. 그 당시에는 환경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고 관계자들과 말도 통하지 않을 정도였어요. 40대 초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젊었다고 무시를 당하기도 했는데 막상 부딪히면 처음과 다르게 봤어요.”

환경 분야의 불모지였던 그 당시 신 회장은 조광명 교수(인하대 환경공학과), 최의소 교수(고려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와 함께 ‘환경 1세대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래서 환경 분야 원로들도 그를 인정한다. “그 때는 학사 학위 받은 사람들도 드물어 충분히 공직에 갈 수도 있었지만 KIST에서 근무한 16년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어요.”

그것을 방증하듯 지금까지 그가 걸어 온 인생의 길은 아주 짧은 글로 몇 자 만 적어도 60장을 훌쩍 넘긴다.
국무총리실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 위원, 환경부 수질종합평가 선진화추진협의회 회장, 환경부 중앙환경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 회장,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 민간위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해 왔다.

그 중에서도 찬성과 반대 입장이 강하게 부딪혔던 새만금간척사업은 잊지 못할 일 가운데 하나다.
새만금간척사업을 정부가 계속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릴 당시 신 회장도 역시 현장에 있었다. 조건부 찬성의 입장을 밝힌 그는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와 수질보전대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개발 주체인 농림부 차관과 전북도 행정부지사가 각각 맡는다는 정부의 방침은 새만금의 친환경적 개발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부추길 것이다. 이를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 기구로 격상시키고 민간위원의 참여도 활성화해 사업 단계마다 철저한 검증절차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과거와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 환경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해 국무총리실에서 재차 논의를 거쳐 새만금환경대책위원회는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된 일도 있었다.

일한 만큼 국민훈장 동백장,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상, 교보환경문화상 연구부문 최우수상 등 포상도 뒤따랐다. 30년 넘게 환경공학자로 살면서 국제 학술지 및 학술발표 논문 67편, 국내 학술지와 학술발표 논문 244편, 연구보고서만 100여 편이 넘는다.

제자 양성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그가 키운 제자들도 지금 곳곳에서 활동 중이다. 신 회장이 정년퇴임 할 때 제자들은 그의 자서전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25년 간 ‘물가계부’작성…전기사용량도 기록

그가 또 한번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은 일이 있다. 80년대 초부터 매일 자기집 물 사용량을 측정해 ‘물 가계부’를 작성하고 전기사용량도 함께 기록한다.

신 회장과 부인 김경숙씨는 수도계량기에 표시된 수도사용량을 꼼꼼히 적어 매월, 매년 평균 물과 전기 사용량을 계산하고 물과 전기를 많이 쓴 날은 그 이유를 분석해 적어둔다.

이렇게 그가 물과 전기 사용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KIST환경공학실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국민 1인당 물 사용량에 대한 통계가 전혀 없어 신 회장은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과 딸을 시켜 1982년 11월 14일부터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물은 물같이 써도 된다는 의식을 버려야 하며 물의 가격이 너무 싼 편이어서 낭비가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도시 가정에서 물 사용량을 10% 줄이면 연간 6000억리터의 물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자녀들과 함께 시작한 이 일 덕에 가족 모두가 물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됐고 아들, 딸 모두 과학적인 관찰력을 갖게 된 덕에 신 회장처럼 한양대서 이공계를 전공했다. 그리고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학생들에게 ‘물 가계부’쓰는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애들이 크면서 지금은 우리들 차지가 됐지만 지금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어요.”

▲ 교보환경문화상수상, 고별강의(정년퇴임)때 부인과 함께.

고희기념 ‘내가 걸어 온 길’ 책으로 펴낼 계획

환경공학 외길 40년을 걸어온 신 회장은 내년이면 고희를 맞는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수필로 써 볼까. 아니면 내가 남긴 영문 편지를 갖고 책을 낼까 고민 중입니다.”
가을학기부터 한양대 강의를 나가는 신 회장은 고희를 기념해 환경에 관한 책을 어떻게 엮을까 구상 중이다. 또한 유학생활과 하버드대에서 강의했던 경험을 살려 영어 회화 봉사도 계속 할 생각이다.

“내가 영어 수업하는 영어 교실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졸업자까지 다양해 내가 강조하는 것은 회화다. 기회가 된다면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들을 지도해 발음 교정 수업 봉사를 해보고 싶어.”

그의 열정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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