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8월 숲은 매미들의 짝짓기 경연장 같다.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소리가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수컷은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남기기 위해 있는 힘껏 울어댄다. 기나긴 땅속 생활을 끝내고 한여름 태양처럼 맹렬하게 울어대는 수컷들은 암컷의 간택(?)을 받아야만 한다. 선택된 수컷은 자신의 분신을 남길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녀석들은 울다 지쳐 사그라질 것이다. 암컷도 알을 낳고 나면 떨어지는 꽃잎처럼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매미들은 곧 개미들에 의해 개미 왕국을 살찌우는 희생제물이 될 것이다.

▲ 애매미
몸집은 작지만 아주 특이한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는 애매미들이 청명산 초입에서부터 시끄러울 정도로 울어댄다. 울음소리가 특이해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어떻게 들으면 ‘오이씨, 오이씨’하고 들리기도 하고 또 어찌 들으면 ‘이씨 이씨’ 하고 들리기도 한다. 이 녀석들은 주로 줄기가 회색인 나무에 잘 모여드는데 소리 나는 곳을 유심히 살피면 녀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애매미들의 독무대 같은 숲 속에서 ‘맴맴맴맴’하고 울어대는 참매미들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가끔 ‘지글지글’ 하고 기름 끓듯이 울어대는 유지매미 소리도 들린다. 시끄럽기로 유명한 말매미 소리도 들린다. 8월 숲은 온통 매미들의 짝짓기 각축장이다. 때론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8월 숲에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회색도시처럼 너무 삭막할 것이다.

▲ 두점박이좀잠자리
매미가 귀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이라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은 잠자리가 다연 최고다. 날개 끝에 짙은 갈색 무늬가 특징인 깃동잠자리가 가장 많이 보인다. 앞이마에 두 점이 특징인 두점박이좀잠자리들도 많이 보인다. 워낙 특징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애기좀잠자리들도 보인다. 수컷은 혼인색을 띠고 있어서 고추잠자리처럼 배가 붉은색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애기좀잠자리라는 이름이 붙은 녀석이다. 몸 색깔이 된장 색을 닮은 된장잠자리들도 보인다. 파란하늘을 수놓으며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녀석들의 비행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멋진 잠자리들의 비행이 지겨워지면 무덤가나 작은 풀들이 자라는 양지바른 곳을 눈여겨보시길. 뛰어다니는 곤충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가장 많이 보이는 녀석들은 메뚜기 종류들이다. 덩치가 가장 큰 방아깨비가 보인다. 어렸을 때 이 녀석을 잡아 한번쯤 방아 찧기를 했던 기억들이 있으리라. 우리에게 참 친근한 곤충이다.

▲ 팥중이
풀밭사이를 걷다보면 뭔가가 발밑에서 후다닥 튀는 것이 보일 것이다. 콩중이와 팥중이들이다. 앞가슴등판에 X자 무늬가 선명한 녀석이 팥중이다. 콩중이는 앞가슴등판의 가운데가 솟아있기 대문에 쉽게 구분이 간다. 둘 다 갈색형과 녹색형이 있기 때문에 색만으로 구분하기는 힘들다. 방아깨비처럼 생겼지만 몸집이 작고 연약하며 뒷다리가 짧은 딱따기도 보인다. 날 때 ‘딱따기’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름도 딱따기가 된 녀석이다.

잎 위를 자세히 보면 조그만 파리가 돌아다니는 것이 보인다. 금빛을 띤 청록색을 지닌 이 녀석은 다리가 유난히 길다. 그래서 이름도 ‘장다리파리’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라는 긴 이름을 가진 노린재도 보인다. 개미처럼 허리가 잘록하고 뒷다리에 톱날이 달려있어서 이름이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다. 갈색 등판 양쪽에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가시노린재도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삐 돌아다닌다. 청미래덩굴 등을 먹고 사는 녀석이다.

▲ 장다리파리


산길을 걷다보면 참나무 종류의 잎이 땅에 떨어진 것이 많이 보일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작은 도토리를 단 채 잎 서너 개가 함께 뭔가에 잘린 것처럼 산길을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토리거위벌레가 한 짓이다. 녀석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부드러운 도토리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다. 그리고 잎 서너 개가 붙은 가지와 함께 땅에 떨어뜨린다. 잎은 낙하산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면서 생길 알의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도토리 속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그리곤 땅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자식들이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도토리거위벌레는 오늘도 알을 낳고 가지를 자른다. 산길을 걷다 이런 것을 보면 한번 도토리 껍질을 벗겨 보시길. 도토리에 작은 구멍이 있으면 그 곳을 조심스럽게 파 보시길. 노란 알이 한개 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곤충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무껍질 같은 보호색을 띤, 얼룩매미나방, 투명한 갈색 무늬가 예쁜 밤나무잎벌레, 갈색 바탕에 흰 점무늬가 별처럼 흩뿌려진 왕자팔랑나비, 귀여운 물방울무늬가 인상적인 끝검은말매미충, 정지비행의 명수인 호리꽃등에, 무시무시한 전사의 눈을 가진 왕파리매, 밀랍을 뒤집어쓰고 사는 도롱이깍지벌레, 날개앞면에 선명한 두 개의 흰줄을 가지고 있는 제이줄나비, 그리고 멋진 표범무늬를 가진 흰줄표범나비…. 청명산은 작은 영웅들인 멋진 곤충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야생화

청명산 초입에서 배초향과 장구채가 우리를 반긴다. 꿀풀과의 여름 들꽃인 배초향은 네모진 줄기와 자줏빛 입술모양의 꽃이 촘촘히 달린다. 식물체에서 기름을 뽑아 향료로 쓰는 아주 향기가 좋은 들꽃이다. 가는 줄기가 장구를 치는 채와 닮아 ‘장구채’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은 순백의 꽃이 참 매력적이다. 산 초입에서부터 두 녀석의 환영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 닭의장풀

닭장주변에서 잘 자라서 닭의장풀이라고 부리는 미키마우스를 닮은 파란색 꽃이 지천이다. 흔한 꽃이지만 특이한 색과 모양 때문에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녀석이다. 물을 정화시켜 주는 고마운 친구인 ‘고마리’가 길 양옆에서 호위를 해 준다. 사이사이로 삼각형의 잎을 가진 며느리배꼽이 작은 포도송이 같은 열매를 달고 앙증맞게 웃고 있다. 주름조개풀도 특유의 주름진 잎을 흔들며 막 피기 시작한 하얀색 꽃을 뽐내고 있다. 산의 응달진 곳에서는 파리풀이 한창이다. 뿌리를 찧어서 만든 액을 종이에 묻히고 그것으로 파리를 잡았기 때문에 파리풀이라 이름 붙여진 이 녀석은 이름과는 달리 아주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녀석이다.

▲ 무릇
▲ 배초향

 

 

 

 

 

 

 

 

 

 

작지만 청초함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녀석이다. 마디마디가 소의 무릎처럼 생겼다고 해서 ‘쇠무릎’이란 이름이 붙여진 녀석도 도깨비 방망이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작고 예쁜, 가운데는 노랗고 둘레는 하얀 꽃을 피우는 미국쑥부쟁이도 여기저기 눈에 띈다. 여뀌들도 좁쌀 같은 꽃을 피우고 있다. 개여뀌, 장대여뀌, 이삭여뀌, 가시여뀌, 바보여뀌, 산여뀌, 같은 집안 식구들을 구분하기가 만만치 않는 녀석이다.

▲ 등골나물

꽃이 ‘등골’처럼 생긴 ‘등골나물’이 등골 같은 하얀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이 녀석도 등골나물, 골등골나물, 벌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등 구분하기가 만만치 않다. 청명산에서 본 녀석들은 전부 등골나물이었다. 미국자리공은 꽃망울에서부터 열매까지 다양한 한살이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다. 산성화된 토양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이 녀석은 아름다운 자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리 반갑지는 않다. 또 다른 반갑지 않은 녀석도 보인다. 돼지풀이다. 환경부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해 식물로 지정한 식물중 하나인 돼지풀이 여기 저기 보이는 것이 영 씁쓸하다.

▲ 까마중

이 산은 유난히 까마중이 많다. 열매가 익으면 까맣게 되는데 그 모습이 까만 머리를 가진 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하얀 가지꽃 같이 생긴 꽃도 아름답지만 초록의 구슬같이 생긴 열매도 아름다운 녀석이다. 까마중과 비슷한 꽃을 피우는 배풍등도 예쁜 꽃을 달고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녀석은 같은 가지과이지만 까마중과 달리 열매가 익으면 맑고 투명한 빨간색이 된다.

노란 꽃을 피우는 괭이밥이 로켓 같은 열매를 달고 숲을 노랗게 물이고 있다. 새콩과 차풀도 앙증맞은 노란 꽃을 피우고 부지런히 곤충들을 유혹하고 있다. 보랏빛과 분홍색 꽃도 여기저기 보인다. 가장 많이 눈에 띠는 녀석들은 무릇이다. 수십 개의 꽃들이 꼬리 모양으로 모여서 하늘을 향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다. 아기 손톱보다 작은 앙증맞은 꽃을 피우고 있는 돌콩과 나팔꽃 같은 메곷도 분홍으로 숲을 수놓고 있다.

나무

청명산 입구는 지방도로를 만드는 공사 구간과 겹쳐있다. 올라가는 초입에 아까시나무들이 잘린 체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마치 시체들처럼, 잘린 아까시나무를 밟고 산으로 든다. 숲엔 아까시나무들이 참 많다. 먼저 죽어 간 동료들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곧 자신들에게도 닥칠 운명의 수레바퀴를 생각하는지 여기저기에 침울하게 서 있다. 물오리나무도 많이 보인다. 특유의 피목(나무 눈)무늬를 가지고 있는 물오리나무도 오늘은 왠지 그 눈이 서글퍼 보인다.

가을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노린재나무는 많은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붉나무와 산초나무도 꽃이 진 자리마다 아름다운 연둣빛 영롱한 구슬 같은 열매를 달고 있다. 개옻나무와 때죽나무, 오동나무와 층층나무도 부지런히 가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구간에선 특이한 나무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항상 보아왔던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이 발길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아파트단지가 인접해 있는 곳이라 깊은 숲에 사는 나무들 보다는 족제비싸리나 가죽나무 같은 공해에 강하고 도심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글·사진 손윤한(생태활동가)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