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수술같은 서예 그 매력에 푹 빠졌죠”

얼핏보면 그의 진료실은 여느 병원과 다르지 않다. 주로 척추와 신경계통을 다루는 전문의답게 책상 위에 놓여진 의학용 인체골격 모형과 진료차트가 눈길을 끌 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둘러보면 사방 벽을 장식하고 있는 색다른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서예작품들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진료 간간히 휴식을 취하는 공간에 들어서면 아예 은은한 먹내음이 배어있다. 틈틈이 작품활동을 한 흔적이 한켠에 수북히 쌓여있다. 수술 칼을 쥐는 순간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붓을 잡는 의사. 용인신경외과 이상용(56) 원장이 그다.

그에게 서예는 취미 그 이상의 것이다. 외과의사인 그에게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수술은 그야말로 일상이다. 그럼에도 수술 칼을 잡으면 늘 긴장감이 몰려온다. 섬세함과 고도의 집중력, 그리고 한치의 착오도 없어야 한다.

더불어 어디가 끝인지 모르기에 참고 기다려야 한다. 그런 이상용 원장에게 서예는 언제나 마음을 다스리고, 일에 대한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더할 수 없는 동반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언제부턴가 서예가 수술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한 순간도 흩트러지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지요. 물론 복잡한 머리를 식히고 절도있는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를 서도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것이 또 있다. “동양의 문자는 그 자체로서 예술성과 짜임새가 있어요. 특히 한자와 한글이 그렇지요. 균형과 형상화가 가능하잖아요. 영어를 비롯한 서양의 문자에선 그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죠.”

그의 예찬은 끝이 없다. “글을 쓸 때는 그 글을 통해 의미와 교훈을 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해요. 고전 경구를 통해 인생의 지혜를 얻기도 하는 건 물론이고요.”일과가 끝나고 오후 7시쯤이면 대개 휴게실에 마련된 자신의 서실에서 붓을 들고 먹의 세계에 취해 버린다. 어느땐 몇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때도 있다. “빠져 드는데서 희열을 느끼죠” 그가 사람좋게 웃으며 하는 말이다.

# 봉사 그리고 용인과의 인연…

이 원장이 처음 붓을 잡은 것은 의과대학 본과 때다. 한양대 의대를 나와 같은 대학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쳤고 박사 학위를 따는 동안에도 그에겐 늘 붓이 함께 했다. 강남시립병원에서 10여년간 근무하던 시절엔 인사동에서 정하근 선생을 모시고 서도를 익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붓과 칼’을 든 것만은 아니다. 10여년간 매년 여름이면 제주도 애월읍에 가서 무료 진료에 나서는 한편으로 때론 주민들과 함께 삽을 잡고 모자라는 일손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다가 용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얼추 15년 전인 1991년이다. 특별한 연고와 인연도 없이 용인에 발을 디뎠다. 그간 종합병원 전문의로서의 경험을 살려 독립을 결심하게 됐고, 우연찮게 용인으로 발길이 향했다.

“서민적이고 소탈해 누구하고도 형이고 친구 같다”는 주위의 평판대로, 이 원장은 늘 사람을 살갑게 대한다. 병원장으로서 있을 법한 권위의식이란 얼굴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 “글씨는 과정이자 동반자”

선한 중년아저씨인 이 원장은 그래서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지역에서도 특히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서예를 함께 익히는 이들이다. 서도계에 잘 알려진 우공 신지훈 선생을 용인으로 모셔 일주일에 한번씩 김량장동에 있는 송암서실에서 배움의 시간을 갖는다.

그렇게 연마한 서예실력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는 주위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번도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그저 글씨는 과정이자 동반자일 뿐이죠 뭘…” 입상을 통해 부여받는 경력이 그에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처없이 안전하고 확실한 효과로 알려진 ‘최소 침습 디스크 수핵 감압술’이란 수술 기법을 목디스크 수술에 처음 도입해, 한국 신경학회 학술대회 초청강사로 나서기도 했던 실력파 전문의 이상용 원장.
그런 그지만, 한 밤중 병원 귀퉁이 작업실에서 붓을 잡고 빠져 드는 무한경지의 시간을 그는 가장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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