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도우미’ 어엿한 사업가

기초생보 수급자의 사업가 꿈

좀 지난 일이다. 지난 3월 중순경 용인여성회관에서 치러진 용인YMCA 창립5주년 행사장에선 인상깊은 한 프로그램이 진행중이었다. “남편을 암으로 잃고 두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국민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40대 초반의 여성은 “지금은 비록 국가로부터 생계보조를 받는 처지지만, 앞으로 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는 사업가가 꿈”이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밝혔다.

그가 바로 최명자씨(42·처인구 김량장동)다. 도대체 무슨 사업을 하길래? 그리고 스스로 가난한 수급자라고 하면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가녀린 여성이 이처럼 당당한 생활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남편 잃고 막막했던 한 여성에게 다가온 기회

2006년 봄. 최씨에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해였다. 젊을 때부터 B형 간염 보균자였던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다. 병명은 간암. 기술직에 있던 남편 수입이 괜찮은 편이어서 중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생활을 꾸려가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의 무너진 건강은 날벼락이었다. 더구나 남편은 최씨의 바깥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니, 할 줄 아는것도 없었다.

사력을 다했지만 남편은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났다. 너무나 헌신적이었던 남편이 떠나니, 한없이 막막하기만 했다. 아이들 교육은 물론 병원비로 그나마 있던 재산까지 날렸다. 당장 생계마저 걱정이었다. 일거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난생처음 생업전선에 나섰다. 파출부 일부터 시작했다. 하루하루 허리가 휘도록 일했지만, 한참 커가는 아이들 교육비까지는 턱없이 모자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를 스스로 신청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어느 날 막막한 김에 동사무소를 찾았던 그녀에게 사회복지사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용인YMCA 자활후견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의 ‘아가마지 공동체’사업이다.


아가마지 사업 최씨의 하루

최씨의 하루 일과는 여느 직장 여성과 다를 바 없다. 학교에 가는 두 아이를 챙기고,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기 위해 사전 예약된 가정을 오전 9시까지 방문한다. 마치는 시간은 오후 6시다. 식사와 청소, 아기 빨래와 가사일을 돕는다. 충분히 사전교육을 받은 관계로 신생아와 산모를 돌보는 일에도 빈틈이 없다. 좌욕기와 유축기는 공동체에서 일괄 구입해 사용하고 간병배상보험까지 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수요자도 대만족이다. 주로 서민층인 수요자는 주위에서 시부모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1일. 보라동 한보라 마을에서 만난 산모 조모씨(29)도 이 같은 경우다. 2주일간 최씨의 산후조리 도움을 받고 있는 조씨는 “가족처럼, 집안 일처럼 돌봐줘서 편안했다”고 말한다.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시행되고 있는 산모도우미 사업은 서민층 수요자를 대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어 조씨는 부담이 없다.

▲ 최명자씨(왼쪽)가 산모와 함께 아기를 안고있다.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죠”

김대중정부 시절부터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생계지원을 위해 시작된 자활후원사업은 보건복지부가 비영리민간기관에 위탁운영하는 방식이다. 용인에선 YMCA가 그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후견기관은 자활공동체를 육성하거나 창업지원 등 저소득층에게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자활서비스를 제공한다. 최씨가 중심이 돼 시작한 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에 의한 산모도우미 사업이다.

지난해 5월, 최씨와 같은 처지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수급대상자 8명이 자활기관의 도움으로 사업단을 꾸렸다. 시와 보건소 그리고 자활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진행하는 공동체 사업은 창업자금까지 시로부터 지원받아, 올초에는 아예 ‘아가마지 공동체’라는 업체를 꾸렸다.

발족회원 12명과 일반 참가자 8명까지 합쳐 총 20여명이 조합원이자 주주로 참여했다. 철저히 공동체 자체 정관에 의해 운영되는 ‘아가마지’는 수급자에게 주어지는 정부지원 외에 신생아 도우미를 통해 얻어지는 수입을 고스란히 적립한다. 이렇게 해서 올 6월까지 적립된 기금은 무려 4천만원.

“정부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생계를 꾸렸던 연약한 주부였던 제가 아가마지 사업가로 거듭나 월 5천만원 매출을 목표로 성장해 가고 있어요.”그의 당당한 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산모 도우미 사상 처음으로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열심히 할 거예요.”그 꿈은 단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란 확신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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