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 도전은 신화를 창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인시청 김운학 감독의 와이셔츠는 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
목소리는 이미 쉬었다. 코치도 없어 벤치엔 시청 직원이 앉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두 손을 입에 대고 큰 소리로 선수에게 소리쳤다.
그의 열정은 선수들에게 전달돼 사기를 불어 넣었다.
부상투혼을 발휘한 선수들은 그의 열정을 몸에 싣고 끝까지 경기에 임했다.
‘독사 김운학’
그의 열정과 도전은 핸드볼계의 ‘신화창조’를 주도하고 있다.

 # 설움 딛고 핸드볼큰잔치 ‘우승’
   맡은팀 마다 우승…스타선수 배출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승부의 세계다. 핸드볼큰잔치 준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른 용인시청 선수들은 전통 강호 대구시청을 통쾌하게 눌렀다.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2월27일 핸드볼큰잔치 여자부 결승 종료 부저가 울리자 용인시청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용 연습장도 없이 천안, 청주, 대전, 하남으로 체육관을 전전하는 등 열악한 환경을 딛고 거둔 눈물의 우승이었다.
용인시청은 독사로 불리는 김운학 감독(45)의 열정과 선수들의 부상 투혼으로 우승을 일궜다. 김 감독은 경기 내내 앉지도 않은 채 선수들에게 소리쳤고 선수들도 이를 악물었다.
팀의 기둥인 권근혜는 오른쪽 손목을 다쳤고 허하나는 왼쪽 새끼손가락이 골절된 상태였다. 골키퍼 김프림은 오른쪽 발목을 삐었다. 그러나 선수가 부족해 아파도 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우승은 무엇보다 값졌다.
실내체육관은 용인 연고의 여자 프로농구팀 삼성생명의 차지였고 농구 경기가 없는 날 체육관을 쓰고 싶어도 TV중계 때문에 안됐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며 공을 던지고 뛰어다녔다. 하지만 지독한 훈련은 멈출지 몰랐다. 핸드볼큰잔치를 앞두고 두 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은 계속됐다. 그가 ‘독사’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훈련 때 마다 독사로 돌변해서다.
김 감독은 경기 내내 벤치 앞을 선수보다 더 많이 뛰어다닌다.
경기마다 셔츠가 흠뻑 젖는 것은 물론이고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도 완전히 쉬었다.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그의 모습에 매번 감동할 정도였으니까.
“이제 4월3일부터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클럽 최강전을 준비해야 한다”며 김 감독은 벌써부터 다음 경기를 염두해두고 있었다.
“다른 팀들이 우리를 견제할 텐데 그 만큼 더 큰 노력이 필요하죠.”
김 감독은 2년 전 팀 창단 당시 10명의 선수 중 9명이 가정주부, 학교 지도자 등 흘러간 은퇴선수를 모았다. 엔트리 16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13명을 이끌고 대회에 나선 김 감독은 코치가 없어 혼자 모든 역할을 도맡아했다. 그러나 그는 핸드볼을 사랑하기에 고통을 감수했다.
기흥구 보라동에서 태어난 김 감독은 신갈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핸드볼 공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신갈중학교, 부천공고, 원광대, 상무를 거쳐 20여년 전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 때는 실업팀이 없어 바로 지도자로 나섰다.
1988년 26세 때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김 감독은 인화여중, 휘경여중, 수지고 등 가는 학교마다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는 실업팀 동성제약에서 2회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또 이상은, 김향기, 장소희, 권근혜까지 전·현 국가대표 등 유명선수가 그의 훈련을 받고 탄생한 스타들이다. 2000년 10월에는 수지고 여자핸드볼 팀을 꾸려 2년간 전국대회 23연승을 올리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 때도 후보 한명 없이 7명의 선수가 모든 경기에 출전해 우승을 일궜다. 국가대표 상비군도 3명이나 배출했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끝내 팀 해체로 이어졌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핸드볼 공을 처음 들었을 때나 선수들을 지도하는 지금이나 여전하다.

# 핸드볼 경기장 찾아 줬으면…
  태극마크 달고 올림픽 진출

“농구, 배구를 좋아해서 며칠 전 경기장을 찾았는데 관중들을 보고 부러웠어요. 핸드볼 한다고 창피하게 생각 한 적이 없었거든요. 참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인데 핸드볼 경기장은 학부형이 전부거든요. 그럴 때 참 안타깝고 속상하죠. 이번 우승을 계기로 용인시민들이 핸드볼에 관심 갖고 경기장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이죠.”
172cm 크지 않은 키에도 양손잡이 오른쪽 날개로 코트를 누빈 김 감독은 선수시절 때부터 핸드볼에만 빠져있었다. 운동만 하느라 지금까지 운전면허도 없다. 지금도 용인에서 연습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진천 집으로 향한다. 핸드볼 선수였던 아내가 천안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먼 길을 다녀도 불편하지 않다.
그의 분신인 아들 환희(6)도 항상 아빠와 함께 한다. 연습장, 경기장에서 환희는 팀의 마스코트로 활약한다. 때로는 지친 고모(핸드볼 선수)들의 활력소가 돼준다.
김 감독은 경기를 할 때마다 자신감을 얻는다.
비록 선수 시절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지만 그는 그 자신감을 품고 세계무대에 도전장을 던질 것이다.
“운동선수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 가장 멋지며 그 때 꿈을 펼쳐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이름 석자는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경기는 많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매 경기 때마다 자신감을 갖고 임해야죠.”
김 감독은 오는 5월 창단을 기념하는 전국 규모의 핸드볼 경기에 대한 용인시민들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했다.
경기전 상대편 분석을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휘슬과 동시에 전쟁을 한다는 김 감독의 열정과 도전은 계속된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