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 하는 ‘언남동 교통부 장관’

‘언남동 교통부 장관’ 엄영순씨(63·언남동).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 농사일을 하면서 마을 일을 도맡아 했던 그가 2년 전부터 학교 앞 ‘인간신호등’을 자처하고 나섰다. 재향군인여성회 용인지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과 함께 시작한 일이었다. 매일 아침 1200여 명의 어린 학생들과 만나며 하루를 시작하는 엄 회장은 용인에 대한 애정을 학생들에게 쏟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이 한 겨울 추위를 녹인다.

“언남초·중학교 앞 교통안전은 내게 맡겨라”

“지금은 저도 방학 중입니다.”
매일 아침 7시30분부터 9시까지 언동초·중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파란 조끼를 입고 학생들의 교통지도를 하는 엄 회장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방학 중이라 2월20일 개학 할 때 교통정리를 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50분에 시작된다. 남편 아침식사도 준비하고 이것저것 집안일도 해놓은 뒤 교통정리에 나선다. 1200명에 달하는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그저 서있기만 하면 되는 일이거니 했는데 힘들더라고요.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추우면 꽤가 나기도 하죠. 학생들 학교 가기 싫은 마음과 똑같죠. 남편한테 미안하다고 식탁에 메모를 남겨 놓는데 그럴 때마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라고 격려해주니까 든든해요.”

가족들 믿음 덕에 학생들이 학교 가는 날이면 하루도 빼 놓지 않고 교통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재향군인여성회 용인지회 회원들의 힘이 보태졌다. 2000년도에 발족돼 3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재향군인여성회 용인지회 회원들은 각 읍면동별로 봉사활동을 펼치며 어떤 일이든 열심이라고 했다. 김장 배추심기, 고추 따기 등 농사일부터 장마철엔 수해복구작업에 참여하며 수재민을 도왔고 용인시여성단체협의회 단체와 함께 홀로 사는 노인들의 식사대접과 장애인 행사 등을 돕는다.

“내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움직일 겁니다. 용인시여성단체의 힘찬 도약과 재향군인회 봉사활동이 더 넓은 곳 까지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는 지역에서 함께 이웃들을 들여다보며 활동하는 재향군인회 회원은 물론 여성단체들에 대한 숨은 노력이 그가 활동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코트 단추도 채워주고 손을 붙잡아 길을 건너 주기도 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면 기분 최고죠.”

예순이 넘은 나이에 나선 교통정리의 맛이라고 할까. 아침마다 학생들은 만나면 생활이 기운차고 밝아진다. 그래서 주변에서 엄 회장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힘이 날 정도다.

2년 가까이 교통정리를 하면서 학생들과 가까워졌다. 모른 척 인사도 안 하던 아이들에게 엄 회장은 먼저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고 지금은 학생들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소리친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보람이다. 남몰래 눈물 훔치기도 했지만 어디든 가서 봉사활동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회원들도 자녀들을 길러봤고 사고 나면 안 되잖아요. 내가 사는 동네 학생들 만큼은 사고 없이 다니는 것이 바람이죠.”

반갑게 인사하며 희망을 불어넣는 일

신갈동 상미에서 7남매 중 유일하게 딸로 태어난 엄 회장은 어릴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연극을 만들고 작은 무대에 직접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경험 덕에 지역사회 활동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22살에 구성으로 시집온 후 농사일 해가며 어렵게 살던 시절, 84년도부터 부녀회, 농협 주부대학을 통해 지역사회에 참여하다 2년 전 용인시재향군회 여성회장을 맡았다.

“생각해 보면 어린 손자를 업고서 폐품이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부녀회 기금을 마련해 불우이웃돕기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새롭기만 해요.”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다함께 돕고 살았기에 지금은 그 때를 떠올리면 즐겁기만 하다.
농사일하며 4남매를 키우는 동안 구성은 어느새 많이 변했다. 사는 환경도 달라지고 주변 사람도 바뀌었지만 사람 사이에 나누는 ‘정’은 여전하다.

엄 회장 역시 도시화된 고향에 희망을 불어넣으며 정을 나누고 있었다. “돼지 키울 때 암퇘지가 새끼 돼지 쌍둥이를 두 번이나 낳았는데 그 때 동네 사람들이 저 집 부자된다고 그랬어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부자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용인시민들도 돼지해인 올해 다들 잘 됐으면 좋겠어요.”

엄 회장은 교통정리 할 때 만난 학생들의 ‘우리 할머니 참 좋다’ 는 말 한마디로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 힘은 엄 회장을 재충전 시켜 다시 지역의 희망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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