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 미래준비협회 박훈식 회장

장애아치료·교육과 장애가정을 지원하고 있는 장애아동미래준비협회(처인구 역북동·이하 장미준협). 전국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비영리 순수 민간단체로 운영되고 있는 장미준협이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는다.

▲ 장애아동 미래준비협회 박훈식 회장

사람 개인의 힘으로 치료센터 등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장애가정의 문제를 끌어안기에 10년은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그러나 박훈식(39) 회장은 지금까지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97년 7월 장애아동 세 가정으로 출발한 협회는 처음 가정들간 정보교류와 공감대를 나누는 장으로 장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 주축을 이뤘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자녀의 치료와 교육문제. 이들 개개인에게 적합한 정보와 도움을 제공하던 협회가 현재는 치료·교육시설을 직접 운영, 물리치료 언어치료 개별화인지교육 감각통합치료 등을 실시하고 있다. 프로그램 모두가 실비만을 받고 저렴하게 운영될 뿐 아니라 물리치료는 무료로 실시돼 그렇지 않아도 장애아치료와 교육에 경제적 부담이 큰 가정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비용이 너무 저렴하다 보니까 자격증 없는 비전문가들을 고용한건 아닌지 처음 문의하시는 분들은 대놓고 물어보기도 해요. 오래 다닌 분들이야 다 아시지만 전문성과 경력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선생님들이세요. 장애아가정이 지출하고 있는 막대한 치료비용을 좀 더 줄여보려고 다른 것 다 제외하고 인건비만 받고 있는 거지요.”

박훈식 회장의 직업 역시 작업치료사. 10여 년간 아주대학병원 재활의학과에 근무하면서 후천적 장애를 입은 이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샐러리맨의 힘으로 협회를 꾸려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뒤돌아보며 의지를 다져왔다.

생후 8개월 만에 소아마비를 얻은 박훈식 회장은 장애아가정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장애가 부끄러워 자꾸만 자신감을 잃어가던 어린시절, 세상은 그에게 도저히 넘지 못할 담이었다. 자살의 기회를 엿보며 몸과 맘은 황폐해져만 갔다. 학교와 사회에서 받는 상처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부모님이 저로 인해 많이 힘드셨어요. 그분들은 나름대로 애쓰시고 노력하셨는데 저는 혼자 고민을 끌어안으면서 밖에서 받은 상처를 가족들에게 풀어댔지요. 그때 누군가 나를 붙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장애 아이를 둔 저희 부모님이 의지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고통은 훨씬 덜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 회장은 그 자신이 장애가정을 붙잡아주고 의지가 되어줄 그 누군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12년 전 결혼한 아내 정미숙씨(36)의 어릴 적 꿈도 마침 박 회장과 같은 것이었다. 간호사 출신인 정씨는 장미준협 탄생에 가장 큰 후원자가 돼 주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에게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장미준협을 가족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어갔다.

#의료생활협동조합 법인화 꿈

정기적인 부모모임과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아들을 위한 여름캠프, 장애아들의 형제자매들을 대상으로 하는 형제캠프 등이 정례화 되면서 협회는 장애아가정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특히 장애아캠프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2박3일간 실시, 집안에만 갇혀 있던 아이들에게 특별한 여행이 될 뿐만 아니라 자녀를 돌보는 데만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에게도 휴식의 기회가 되고 있다.

1년에 2회씩 운영하고 있는 형제캠프는 다른 단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프로그램. 이 캠프에서 아이들은 장애형제로 인해 겪는 아픔을 서로 나누며 위로를 얻고 있다. 가족의 장애가 때로 어린 형제들에게는 정신병을 가져올 만큼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 박 회장은 캠프를 통해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보여줌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다.

장애가정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그는 또 올 3월 ‘푸른꿈 쉼터’를 개설했다. 중증장애아동 주간보호시설인 이곳은 수원 매탄동의 한 교회건물의 일부를 빌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간 가동된다. 전문가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는 시설은 월 30만원의 비용으로 장애아동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시설에서 발생하는 소정의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환원, 장애아가정을 지원하는데 다시 쓰여 진다.

쉼터가 용인지역이 아닌 수원에 자리 잡게 된 것은 장애인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편견이 컸기 때문. 당초 처인구 빌라단지 1층 임대를 계획했지만 집주인들이 장애아들의 입주를 꺼려 해약을 거듭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박 회장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이뿐 아니었다. 지역사회 복지를 위해 일할 만한 덕망을 갖춘 사람들도 이름이 드러나는 법인시설은 도와줄지언정 작은 민간단체인 장미준협에 관여하는 것을 하찮게 여겼다. 자식을 위해 협회를 이용만 하려드는 일부 부모들까지 박 회장이 감당해야 할 짐은 버겁기만 했다.

그럼에도 협회와 한번 인연을 맺은 이들은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관계가 끊어진 적이 없다. 처음 자원봉사로 협회를 찾았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고 있다. 그가 굳이 협회를 법인화하지 않는 이유도 한꺼번에 많은 지원을 받는 것보다 개개인의 작은 후원과 관심이 더 큰 힘이 되고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냉담했던 사람들도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단체의 순수성을 인정해 주고 있다.

박훈식 회장은 현재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 협회를 시작한지 4년째 되던 해, 장애인부모회 설립을 비롯한 협회의 각종 현안문제를 처리하던 중 과로로 쓰러진 후 1년간은 일어나질 못했다. 조금씩 회복되긴 했으나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오후 일과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다. 현재는 80%정도가 회복된 상태.

그러나 건강의 문제도 박훈식 회장의 열정만큼은 꺾지 못했다. 그는 현재 용인지역에 의료생협 설립을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의료생협 가운데서도 전국에서 최초로 장애인과 노인 중심의 의료시설을 세우겠다는 것. 박 회장은 특히 건강을 가장 중시하는 고령화 사회에서 의료생협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인들은 방문의료서비스의 우선 지원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의료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돌봄으로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지난 2월 발기인대회를 치른 의료생협은 현재 170여명의 지역주민들이 가입, 올 안에 300명 조합원 모집을 목표로 법인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훈식 회장은 이밖에 장애어린이를 주축으로 한 현재의 장미준협회 활동을 청소년으로 확대하는 방안과 장애가정들이 휴식할 수 있는 팬션 등의 휴양시설 건립도 구상하고 있다.

“장미준협을 통해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냥 좋아서 하는 일보다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걸 알았어요. 장애가정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주고 싶어요. 그래서 저도 5년 안에 직장생활을 접으려구요. 조만간 현장으로 돌아가야지요. 장미준협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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