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호 용인가정호스피스단체 회장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용인가정호스피스단체’(처인구 역북동 소재 · 전화 322-5008). 3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이 단체는 병원 환자들을 돕는 일반 호스피스와는 달리 가정으로 직접 방문, 죽음에 대한 준비와 함께 목욕 이발 빨래 청소 등 환자에게 필요한 각종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주로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이 이들의 봉사 대상. 물론 대가가 없는 무료 봉사다. 진료기관으로부터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말기 암 환자들, 길어야 6개월 미만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는 그들에게 생의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 임계호 용인가정호스피스단체 회장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는 임계호(54·마평동) 회장.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가정호스피스모임이 여러 지역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4년 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용인지역에 단체를 조직했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간 환자만 100여명.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켰지만 그들이 남긴 갖가지 사연은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마음에 남아있다.
“정들만 하면 헤어져야 하는 게 제일 가슴 아프죠. 암 환자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이 크기 때문에 많이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면서 정신적인 위로를 줘야 돼요. 그렇게 제 품에 안겨서 하늘나라로 간 40대의 젊은 엄마도 있어요.”

임 회장은 환자들과 찍었던 앨범사진을 한 장씩 넘기며 이생을 떠나간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들려주었다. 사진 속에는 20대의 앳된 얼굴부터 앙상하게 마른 노구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자궁암 말기인 할머니였는데 혼자 사셨어요. 어느 날 목욕시켜드리고 청소하느라 미처 점심을 못 먹었는데 할머니가 당신 지갑에서 돈을 꺼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1만원을 주면서 우리보고 가다가 자장면을 사먹으래요. 너무 고맙다고. 어쩔까 망설이다 받아들고 정말 자장면을 사먹었어요. 그러면서 저희들끼리 그랬죠. 내일은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다드리자고. 암 환자들이 시원한 것을 먹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데 그 다음날 그 댁엘 갔더니 그새 돌아가셨더라구요.”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독거노인들의 임종이 그에겐 무엇보다 마음 아프다.

“대장암에 걸린 할머니가 있었어요. 처음엔 잘 살았는데 암 때문에 집 팔고 전세에서 다시 월세로 옮겼다가 나중에는 돼지우리를 개조한 창고에서 혼자 사셨죠. 우리가 그 집에 장판을 갈아드리러 갔는데 빈대와 바퀴벌레가 얼마나 많은지 여기저기 사람의 몸에 마구 기어오르는 거예요. 악취도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런 곳에서 혼자 누워 지내셨죠. 아무도 찾아주지 않으니 우리가 가면 그렇게들 반가워하세요.”

대부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처지라 기저귀며 솜 등 각종 위생용품과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마련하고 있다. 때로 수의조차 입을 수 없는 경우 그마저도 호스피스들의 몫이 된다. 1년치 지출만 대략 1000만원. 이중 시에서 지원받는 예산 150만원을 제외해도 적지 않은 액수다.

# 독거할머니 모실 공간 만드는게 소망

피부관리사가 본업인 임계호 회장은 업무 외의 시간 대부분을 암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16년 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그는 재발 방지를 위해 지금도 정기적인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누구보다도 암 환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의 일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는 호스피스교육을 받기 전 10억원의 빚보증을 떠안고 한때 자살의 길을 선택했었다. 육신의 아픔에다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쳐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했던 날들이었다. 자살 결행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지인의 손에 이끌려 호스피스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한 교회를 방문하게 됐다. 거기서 그는 목숨의 귀중함, 재물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5년 전 호스피스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음이 무서워 초상집 앞을 지나다니지 못했던 그가 이제는 평안한 죽음의 길을 열어주는 도우미가 된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있다가 그의 손을 떠난 이들의 발을 씻겨주고 이마에 입맞춤함으로 임 회장은 늘 작별의식을 치른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다보니 그에게 삶과 죽음은 그저 일상일 뿐이다. 항상 죽음이 준비되어 있는 삶, 그것이 최선이다.

“환자들에게 마음의 준비와 함께 주변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가장 중요한건 인간관계를 푸는 거예요. 용서를 구하고 받아들이도록 권하면 대부분은 그렇게 따라주고 더 이상 맺힌 것 없이 홀가분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임 회장 자신도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 그는 장기기증을 서약했고 일찌감치 유언장까지 만들어놓았다. 유언장 내용을 알려달라는 말에 그는 “전재산을 다니는 교회에 모두 기증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산다고 해서 미래의 계획이 없는 건 아니다. 독거할머니들을 모실 수 있는 생활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올해 된장 100독을 만들어놓았어요. 내년에는 50독을 더 쑬 거구요. 된장사업이 잘 만 되면 앞으로 3,4년 뒤엔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할머니 네 분 정도면 힘에 부치지 않게 모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임계호 회장은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호스피스들이 함께 있기에 큰 힘을 얻는다. 그가 ‘천사들’이라고 부르는 가정호스피스단체 회원들은 말기 암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면서도 호스피스들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가족이 없는 환자가 운명했을 경우 삼우제까지 직접 치러줄 만큼 호스피스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현재 단체에서 돌보고 있는 환자는 모두 3명.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의 말기 암 환자들이 주위에 적지 않다는 것이 임 회장의 얘기다.

용인가정호스피스단체에서는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말기 암 환자들의 도움 요청을 접수하고 있으며 이들을 돌봐 줄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과 후원에 관한 신청도 상시 받고 있다. 회원을 지망하는 이들에겐 호스피스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아프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아픈 걸 기뻐하세요.”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지켜보고 있는 호스피스들이 삶에 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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