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생 용인청소년쉼터 원장

“쉼터가 생긴지 이제 만 3년째인데 그동안 한 1000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 거예요. 부모의 이혼, 가정해체, 폭력과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버려진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죠. 사회가 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줘야 돼요. 가출청소년들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내 자식만 잘되길 바라는 그런 기성세대의 인식이 답답합니다.”

▲ 오수생 용인청소년쉼터 원장
2003년 3월 수지구 풍덕천2동에 문을 연 ‘용인청소년쉼터’. 가출 청소년들이 지친 몸과 맘을 의탁할 수 있는 생활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상담원과 대안학교를 운영, 청소년들에게 자활 의지를 심어주고 있다. 이같은 청소년복지의 중심에는 오수생(58) 원장이 있다.

“1년간 청소년쉼터 개설을 준비한 끝에 서울 양재동 집을 팔고 이곳에 오게 됐지요. 가족회의를 해서 어렵게 결정을 내렸어요. 당시 고3이었던 아들에겐 살던 곳에 원룸을 얻어주었어요. 결혼 12년 만에 낳은 아인데 아들도 아내도 제 결정을 따라주었지요.”

인생 후반부를 청소년복지에 내놓기로 결심한 데는 오 원장 자신의 성장기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궁핍했던 어린시절, 가난을 벗어나고자 열아홉의 나이에 홀로 상경한 그에게 가장 막막했던 것은 의식주 문제였다. 잠 잘 곳이 없는 서러움과 배움에 대한 열망은 그를 힘겹게 했다. 이후 신학과 상담학을 전공하면서 오 원장은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청소년들을 돕겠다는 의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막상 사재를 털어 설립한 쉼터는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뿌듯한 보람만을 안겨준 것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부딪힌 청소년들의 현실은 그가 겪었던 그 시절의 고통과는 또 달랐다.

아이들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꿈을 키워보고자 집을 나선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가정이 해체되고 학대와 상처만 주는 부모에게서 무작정 가출을 선택한 아이들. 이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세상을 향한 기대를 상실해 버린 그들에게 다가선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의 문이 닫힌 아이들은 도움의 손길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심을 주어도 돌아오는 것은 분노와 불신이었다.

“솔직히 처음 6개월 동안은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나 후회와 갈등이 많았지요. 그러다 차츰 겉으로 드러나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상처와 아픔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쉼터를 찾는 청소년의 대부분은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부모에게 버림당하고 폭력에 시달려온 아이들입니다. 그들이 택한 것은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었던 거예요.

# 부모·사회 냉대가 원인

사랑을 주고받는데 서툴렀던 아이들이 차츰 그에게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따뜻한 관심이었던 것이다. 오 원장은 쉼터에서 의식주의 문제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을 강구, ‘푸른꿈 대안학교’를 개설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는 대안학교에서는 검정고시를 위한 각 단계별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 또 취업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 획득의 길도 열어주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특별학생교육위탁기관으로 지정, 폭력 절도 갈취 근태불량 등의 사유로 선도교육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맡아 1~2주간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교육을 통해 학교로 복귀한 학생이 70~80명에 이른다.

이와 함께 오수생 원장은 지난 7월 풍덕천동에 청소년카페 ‘그린비젼하우스’를 개장했다. 18세 이상인 쉼터의 아이들에게 자립기금을 마련해 주기 위한 것. 돌아갈 가정도 없고 나이가 많아 더 이상 청소년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일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다지는 곳이다.

‘그린비전하우스’는 쉼터의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지역 청소년들에게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풍선아트 토피어리 미술치료 등의 강좌를 개설하고 각종 동아리활동이 활발하게 펼쳐지면서 청소년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수지 여성회관에서 국가청소년위원회와 경기도교육청이 주최하고 용인청소년쉼터가 주관하는‘청소년 페스티발’이 열리기도 했다.
“쉼터에 와서도 마음을 못 잡고 있는 아이들에게 저는 이렇게 당부해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너 자신을 살리는 길이 뭔지 생각하고 네 꿈을 이루기 위해 나와 쉼터를 이용해 먹으라고 하지요. 자기 자신을 철저히 돌보다보면 결국 남도 돌보게 돼 있거든요.”

# 자활위한 투자 절실

오 원장은 현재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과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청소년복지 관련 일을 일하면서 그가 가장 아쉽게 여기는 점은 노인복지나 장애인복지 등 다른 분야에 비해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소홀하다는 것. 특히 청소년복지는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지자체의 마인드에 따라 성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청소년복지에 인색한 용인시에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탈선 청소년들이 그대로 성장한다면 결국 사회악을 만들어내지 않겠습니까? 청소년을 미래의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우는 것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경쟁력을 만드는 일이에요. 오늘 어떤 투자를 했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열매와 대가를 분명하게 받게 돼 있습니다.”

오 원장에게는 두 가지 바람이 있다. 쉼터의 초등학생들에게 그룹홈을 만들어주어 가정의 보호와 세심한 배려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은 것과 지금의 대안학교가 정식 학력인정을 받는 것이다.

현재 상가건물 일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쉼터 공간을 독자적인 건물로 건립, 안정적인 거주공간과 자립관을 확보하는 것 또한 시급한 당면 과제다.
“제 손으로 못하더라도 지역의 독지가가 나타나 이 일을 이뤄줬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복지 분야가 끊임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라 어려움이 많지만 누군가는 이걸 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여기서 도망가고 싶어도 이제 양심상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됐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서 죽을 때까지 그냥 하려구요. 1년에 100명만 사람 키워놓아도 10년 동안 1000명의 사람은 만들어놓고 갈 수 있잖아요.”

그는 쉼터를 운영한 이후 그 많은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뒷바라지 하느라 척추디스크에 무릅 관절 수술까지 받은 아내가 안쓰럽고 고맙기만 하다. 남들은 편안한 노후를 준비할 나이에 부인 이영희씨(54)에게 더없는 고생을 안겨주었지만 부부는 줄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울며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둘 것이다”라는 성경의 진리를 확신하기에 오늘도 부부는 쉼터의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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