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진 자녀양육전문가

#‘아빠와 추억만들기’ 6년째 추진

“아이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아빠들이 대부분이에요. 이젠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까지도 사교육에 떠넘기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아빠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부재가 자녀양육에 문제를 낳고 결국 우리사회 이혼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어요.”

‘아빠와추억만들기’답사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권오진(45·수지구 상현동) 단장의 직업은 자녀양육전문가. 그가 만들어낸 직업이다. 세상에 아빠들은 많지만 전업 자녀양육전문가로는 자신이 1호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다.

교육은 있어도 양육은 없는 시대에 그는 누구보다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한다.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인성이 아이를 평생 행복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아빠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6년째 추억 만들기 여행을 떠나고 있다. 2001년 다섯 가정으로 출발한 가족답사 모임은 현재 3500가정에 이를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아빠와 추억 만들기 여행에는 초창기부터 지켜오고 있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엄마들은 참여 불가능하다는 것, 개별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버스 한 대 승차 가능 인원으로 제한한다는 것, 점심은 반드시 가마솥 밥으로 지어 먹는 것 등이다.

“왜 하필 가마솥이냐구요? 여행은 아이들도 즐거워야겠지만 아빠들도 재밌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가마솥만큼 아빠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없어요. 가마솥 안에는 밥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는 고향, 어머니, 어릴 적 친구가 고스란히 들어있어요.”

가족에게 등 떠밀려 마지못해 여행에 나선 아빠들도 어린시절로 돌아가 자녀들과 장작을 패고 불장난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즉석에서 꺽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실시하는 과녁 맞추기 게임, 경비행기 타기 등도 아빠하고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추억 만들기 여행 이후 아빠와 자녀들의 사이가 좋아졌다는 후문을 들을 때 그는 가장 보람을 느낀다. 동네 아빠들과 아이들을 모아 주말이면 놀러 다녔던 일이 그에게 전업이 된 것은 아빠와 자녀의 관계회복이 가정의 회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

“저는 아이들과 잘 놀아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다 저 같은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아빠들이 어린자녀들과 잘 놀기만 해도 가정문제나 청소년문제는 많이 줄어들걸요. 교육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아빠들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일이 사명이 돼버렸어요.”

그의 자녀양육방법은 교육학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딸 규리(14)와 아들 기범이(10)를 기르며 몸으로 체득하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경험에서 모두 비롯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들과 루어낚시를 갔는데 저는 세 달 전부터 미끼를 사 모으며 준비를 했어요. 아무리 어린자녀라 하더라도 자기만의 스케줄이 있는데 어느 날 아빠 기분이 좀 괜찮다고 느닷없이 같이 놀자고 하면 애들이 싫어해요. 미리 약속을 하고 아이가 거기에 대해 기대하고 흥분하도록 만들어야죠.”

아이의 얼굴에 쓰여 있는 생각을 읽고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아빠의 능력은 자녀와의 친밀도과 비례한다는 것. 그리고 그 친밀감은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 그는 한 방송사와 공동으로 무인도에서 체험하는 ‘아빠와 추억만들기’이벤트를 실시, 관심을 모았다. 아빠와 자녀가 힘을 모아 낯설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진다는 것.

# 하고 싶은 일 마음껏하게 도와줘야

자녀양육에 관한 강연을 요청받을 때마다 그는 반드시 아빠와 자녀가 함께 강연장에 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2시간 강의인 경우 1시간30분을 할애, 아빠와 함께 몸으로 교감할 수 있는 놀이 30~40가지를 실습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도 같이 노는 방법을 몰랐던 아빠들에게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는 최근 SBS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전문 자문위원으로 출연, 아빠와 스킨십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선보여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권오진 단장의 딸 규리가 그린 일러스트.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할아버지, 아빠, 엄마, 규리, 동생 기범이의 가족사진 촬영 표정을 그렸다.
권오진 단장은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체득한 이같은 놀이방법을 모아 지난해 단행본 ‘아빠의 놀이혁명’을 펴냈다. 또 이달에는 역시 실전을 통해 터득한 지혜를 모아 ‘아빠의 습관혁명’을 출간, 아빠의 작은 습관과 관심이 아이에게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됨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책에는 특히 중학교 2학년(서원중)인 딸 규리가 직접 일러스트로 참가, 아빠와 공동작업에 나섰다.

“저희 부모님은 제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저 역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없구요. 말하지 않아도 애들은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따라오게 돼 있어요. 자녀를 배려하고 존중한 만큼 자녀로부터 존중받는 부모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권 단장은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바란다면 공부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자녀교육 다 망친다구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욕심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지요. 아이들은 자기와 친한 사람 말을 잘 듣게 돼 있어요. 자신을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이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는 것이 사람 아닙니까? 아빠와 친밀한 관계가 형성 돼 있다면 빗나갈 일이 없죠.”

그는 요즘 아이들이 아빠의 자리를 컴퓨터게임으로 채우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어린 자녀가 귀찮아 놀아주지 않고 방관하다 보면 아이는 어느 샌가 컴퓨터 앞에 앉아 언젠가는 다가오는 아빠를 밀쳐내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는 것.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렇게 영영 설 자리를 잃어버린 아빠의 자리를 되돌려 놓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아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가 직업에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멋진 아빠, 좋은 아빠를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했다.“친구와 같은 아빠가 좋은 아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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