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생협매장 연 박효진씨

“먹고 살기 급급하고 배만 채우던 시대는 지났지요. 오히려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먹거리의 소중함이 더 절실해 지고 있어요. 지역주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이 가게를 연 것은 그 첫 번째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강남대학교 앞에 자리한 생협 매장. 유기농인증을 받은 700가지의 생활재가 갖춰진 이곳에는 어린자녀의 손을 잡은 젊은 주부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유기농산물만을 판매하는 이곳이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 가게가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히 유기농산물만을 판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곳으로부터 먹거리를 통한 환경운동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 주인 박효진씨(52·기흥구 구갈동)가 유기농산물 판매장의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2월. 10여년간 환경운동가로 생협 활동에 몸담아온 그는 2002년 용인시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의 생활협동조합 설립을 꿈꿔 왔었다. 그 준비작업으로 우선 유기농판매장을 개장한 그는 뜻을 함께 하는 지역민들을 하나 둘씩 찾아 나섰다.

그 결실로 올 6월 본격적인 조합 설립 준비에 들어간 그는 해바라기의료생협(준), 용인성폭력상담소, 용인민노당여성회, 환경정의연대, 용인민노당여성회 등 용인의 5개 단체와 네트워크를 마련, 9월14일 발기인 대회를 치렀다. 발기인 가운데는 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생산자인 농민대표들과 도시의 주부소비자들도 함께했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을 살려 용인지역의 도시 소비자들과 농촌 생산자들이 안전한 먹거리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

# 용인 특성 살린 생협설립 박차

“이렇게 큰 도시인 용인에 생협이 없다는 게 믿기질 않았어요. 다른 도시에서 생협 매장을 이용하다 입주한 주민들이 여기가 농촌이 공존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곳에 유기농산물매장이 없는 것을 의아해 하고 생협 활동에 목말라 하는 것을 자주 봤어요. 성남 생협지부가 수지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용인지역에 맞는 독자적인 생협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물건만 파는 생협이 아니라 지역의 유기농 생산자와 긴밀한 고리역할을 통해 농촌을 살리고 소비생활의 패턴을 친환경적으로 바꿔갈 수 있는 운동을 일으켜보자는 것이지요.”

그는 대형할인점에 익숙한 주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언제든지 들를 수 있는 동네 생협매장에서 자녀들과 함께 환경을 고민하고 소모임활동도 할 수 있도록 장을 펼쳐놓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8월 ‘아토피와 성인병 건강강좌’를 실시하고 지난 2일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가와 함께 수생생물을 탐사하는 생태교육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오는 26일과 10월21일에는 두부만들기와 벼베기 행사가 각각 생협매장과 충북 괴산에서 실시된다. 또 벼룩시장도 조만간 개최할 계획.

“생협을 통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환경오염은 심각해지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먹거리를 통해 우리 입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FTA로 농촌이 죽어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흙을 사랑하는 농민들이 남아 있어요.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윤보다 환경을 소중히 여겨 고집스럽게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들을 살리는 것이 곧 우리가 사는 길이에요. 환경과 농민을 살리고 급식조례를 제정하는 일 등이 생협을 통해 이뤄야할 과제라고 봅니다.”

박효진씨는 용인생협이 설립되면 매장의 소유와 모든 활동을 조합에 넘겨 함께 운영해 갈 생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조합원 모집에 박차를 가해 올해 안에 생협 설립을 매듭질 계획에 있다.

# 환경 미래 공유하는 단골 늘어

생협을 통한 환경운동에서 그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들에게 건강한 미래를 열어주는 것. 때문에 각종 환경행사에 어린이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일해 온 것도 미래세대에 대한 그의 생각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박효진씨가 처음 몸담았던 곳은 참교육학부모연대. 89년 창립된 이 단체는 촌지문제 등 교육현장에 만연한 각종 비리를 지적하면서 공교육정상화에 대한 학부모의 목소리를 이끌어내며 당시 여론을 집중시켰다. 그는 87년 참학 준비조직 단계부터 설립, 이후 활동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나갔다. 그의 남편 조희주씨(56) 역시 전교조 부위원장을 지낸 해직교사로 부부가 교육현장 안팎에서 한목소리를 내왔다.

박효진씨는 이후 전공인 환경공학을 살려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에 참여, 그린스카우트 대외협력국장을 역임했고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 사무처장 등을 지냈다. 이렇듯 그의 시민단체 이력은 모두 어린이들과 관련이 있다.

“나이 먹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생협을 통해 미래를 살리는 일인 것 같아요. 자연이든 교육이든 시대적 역할이든 미래에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60세가 넘을 때까지 저는 이 생협운동에 앞장설 겁니다.”

그는 환경에 대한 거대담론은 실생활의 작은 실천에서부터 이뤄져야한다고 말한다. 화학조미료와 화학세제 쓰지 않기, 일회용 생리대 대신 헝겊생리대 만들어 쓰기, 쓰레기 줄이기 등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강조한다.

“친환경 습관이 처음엔 번거롭게 느껴지겠지만 길들이면 이것만큼 편한 것도 없어요. 요즘은 형광표백물질을 넣지 않은 유기농세제도 주방용 목욕용 세탁용으로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환경을 살리는 길을 택할 수 있어요.”

소품가게처럼 아기자기한 그의 매장에서 그가 파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가게에 앉아있자니 젊은 주부들은 그에게 자녀의 아토피를 상담해오고 패트 병에 담긴 식료품에서 발생하는 발암물질 대한 우려를 건네 온다. 그의 가게에는 환경과 미래를 공유하는 단골들이 자꾸만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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