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문화학교 세운 지체장애 정해찬씨

“다치지 않았다면 지금쯤 뭐하고 있겠느냐고요? 글쎄요, 내가 갖고 있는 기질을 생각할 때 아마도 조직폭력배나 국제적 사기꾼이 돼 있지 않을까 싶네요. 돌이켜보면 장애가 제게는 많은 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재산도 아내도 모두 장애를 극복하면서 얻게 됐지요.”

정해찬씨(52·처인구 백암면 백봉리)를 아는 이들은 그를 기억할 때마다 꿀벌과 반딧불이를 함께 떠올린다. 연약한 날갯짓 뒤에 매달린 달콤한 꿀과 신비한 빛. 세상을 향한 그의 날갯짓도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에게서 살만한 이유와 나누는 삶에 대한 소망을 본다.

2급 지체장애인인 그는 용인시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반딧불이 문화학교’이사장이면서 25년간 꿀벌과 살아온 양봉업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시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분주한 삶, 근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 뒤에 묻혀진 아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나간 세월, 스물셋의 나이에 그는 청춘의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인생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갑자기 찾아온 척추결핵. 나뭇짐을 지고 넘어졌던 것이 척추에 염증을 일으켰고 그것은 흉추 뼈를 망가뜨렸다. 그리고 그 망가진 뼈가 신경줄을 눌러 하반신이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8시간에 걸친 대수술, 5일간의 혼수상태 끝에 그는 눈을 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더 이상 다리를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제2의 인생이었다.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의 밤이 계속됐다. 자살을 생각하다가도 온갖 신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기도 했다.

그를 붙잡아주었던 것은 가족들의 보살핌과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이를 악문 사투 끝에 그는 누워 지내는 상태에서 드디어 허리를 펴고 일어나 앉게 됐고 목발에 의지해 걸을 수 있는 단계로 까지 호전됐다. 그 무렵 갖게 된 신앙은 그에게 더욱 삶에 대한 의지를 북돋워주었다.

“오전 11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저는 8시부터 집을 나섭니다. 성한 사람의 걸음으로는 고작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저는 3시간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어요.”

넘어지면 일어서고 상처 난 무릎의 피를 닦아내기를 반복하면서도 그는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았다. 흐느적거리며 걷는 걸음이었지만 그는 행복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꿀벌의 의지로 다시 시작한 삶

꿀벌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주었다. 좋은 꿀도 마음껏 먹고 벌침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양봉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집 마당에 꿀벌 3통을 장만하고 양봉기술을 익혔다.

“5월 어느 날, 논에 모내기를 하고 계시던 어머니는 느닷없이 윙윙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수 만 마리의 벌 떼가 날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훠어이~ 우리 아들에게로 가거라~’ 어머니는 목청 높여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벌들이 정말로 우리 집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벌들이 빈 벌통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 벌떼의 방문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는 아주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 예고는 빗나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그의 벌통은 점점 늘어갔다. 25년이 지난 지금 100통에서 300통이 되기까지.

더욱이 그의 꿀은 품질을 인정받아 생산자로서는 전례 없이 제약회사에 직접 납품하기에 이르렀고 주변 양봉농가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양봉을 막 시작했을 무렵, 그는 즐겨 청취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원고를 보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아내 조종순씨(46)를 만났다. 장애인으로서 평소 생각하는 신념을 피력하며 배우자를 구했던 것인데 이후 무려 300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가운데 지금의 아내가 보낸 편지도 들어있었다.

“오늘처럼 벌이 한창 쏟아져 나와 마당 한가운데서 날고 있는 오후 시간이었어요. 한 아가씨가 대문에서 차를 멈추더니 저희 집으로 들어오는데 바로 그 편지의 주인공인줄 금방 알았지요. 벌들이 어찌나 붕붕거리는지 무서웠을 텐데,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제게 오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벌은 전혀 보이지 않고 저만 보였대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그곳에서 그들은 그렇게 가정을 꾸렸고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반딧불이의 빛으로 나누는 삶

그는 언제부턴가 장애우들과 나누는 삶, 빛을 주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반딧불이 문화학교’. 교장인 박인선씨와 뜻을 같이 하여 4년 전 세운 이 학교에는 100여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학생들이 매주 모여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 마련한 이 교육에는 글쓰기, 그림, 수묵화, 합창, 풍물 등의 강좌가 개설돼 있다. 아직 전용공간이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 처지. 그러나 정해찬씨는 “밖에 나올 힘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힘주어 강조한다.

그의 다음 목표는 집에서 누워 지내는 중증장애인들이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재를 기꺼이 털어 넣고 불편한 몸으로 후원회원을 찾아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해찬씨는 “아픈 사람만이 그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나설 수 있는 것”이라며 “나를 낮추고 상대를 섬기면 결국 그 복이 나에게 오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문화학교를 운영하다 보니 ‘이 길이다’하는 확신은 드는데 갈수록 어렵네요.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공간만이라도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의 지원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해요.”

장애로 인해 응어리진 마음이 글과 그림, 풍물가락으로 풀어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더욱 장애인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 역시 삶의 지난한 세월을 시로 풀어내온 아마추어 시인이다. 등단을 꿈꾸며 습작한 시만 70~80편. 세상이 그를 아프게 할 때마다 그 자신이 힘겨워질 때마다 그는 시를 통해 이렇게 ‘희망’ 을 노래했다.

눈 오면 일어날까
소낙비 내리면 깨어날까
마르지 않는 눈물이어라

한 걸음 내딛자면 땀 한 방울
두 걸음 내딛자면 땀 두 방울 더하기 거친 숨소리
세 걸음 내딛자면 땀 서른 방울에 쏟아지는 눈물이어라
비틀비틀, 비틀거리며 흔들흔들, 흔들거리며
넘어질 듯 쓰러질 듯 온몸 문어발처럼
춤추며 눈부신 햇살 바라보네.

가시지 않는 서러움
멈출 수가 없는 절규
자빠지고 처박히다가도 웃음을 떠올려
꽃을 피우네. 유리알 같은
차라리 함구할 통증의 꽃 피우네.
아 희망이어라 아 희망이어라
큰 희망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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