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지킴이’ 둥지골 박물관 황호석 관장

원삼면 죽능리 골짜기에 있는 둥지골은 한때 고시촌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함지처럼 오목한 골 안에 들어서면 마치 외부와 단절돼 나만의 세상인양 착각에 빠져든다. 그 만큼 경관이 수려하면서도 조용하고 맑은 기운이 감돈다.
그 둥지골이 이제 새로운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만화관, 서예미술관, 생활사관이 독립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둥지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설립자이자, 총관장은 황호석(62)씨다.

전국 사립 박물관 수가 220여개. 그 가운데 대부분이 적자 운영이라는 것은 이미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처럼 어렵다지만 3개 테마관이나 지어 꿋꿋하게 박물관지기로 살아가는 황 관장. 도대체 그는 왜 이 같은 일에 열정을 쏟아 붇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거슬러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 숙녀복 제품 전문 제작을 하면서 업계 수위를 달리던 황씨에게 갑자기 병마가 찾아들었다. 위가 많이 안 좋았던 그는 휴양 차 찾아든 곳이 둥지골. ‘원님 약수터’라 불릴 정도로 좋은 물과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생활하던 그는 정말 단 몇 개월 만에 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이곳을 떠나기가 싫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시절부터 서예와 그림 수집광이었던 그는 잘됐다 싶었다. 둥지골을 지키면서 평소 수집해 온 작품을 중심으로 키워왔던 꿈을 실현해 나가기로 마음을 먹고, 아예 짐을 풀었다. 주변 땅도 마련하고 미대 출신이었던 부인과 함께 소장 중이던 미술품과 서예작품을 모아 마련한 조그만 전시관을 열었다. 그는 98년 12월 8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IMF 사태로 어려웠던 시기였건만 자신 꿈의 전부인 작은 미술박물관을 열던 날, 모 방송사에서는 그 소식을 중계로 전국에 알리기도 했다. 그의 박물관 지기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내친 김에 우연한 계기로 만화가인 하고명씨가 소장하고 있던 수천여점을 옮겨 와 만화전시관을 지난 2003년에 연 데 이어 생활사 전시관은 다음 해 잇달아 열었다. 생활사 박물관에는 1950~70년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생활 소품 2만 5천여점이 한 자리에 전시돼 있다.

이처럼 테마 전시관을 늘리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생활사박물관(관장 채창운)도 본래 강원도 영월군에서 전시관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입주할 예정이었다. 이를 알아챈 황 관장은 원삼출신인 이우현 전 시의장과 함께 그를 찾아가 오래도록 개인수집가 채창운씨를 설득한 끝에 용인 둥지골로 옮겨올 수 있었다.

이처럼 힘든 과정을 통해 박물관을 유지하고 전시품을 늘려 나가고 있지만, 정작 그는안타까운 것이 적지 않다. 가까이 있는 것으로 부터의 무관심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정작 주위 용인시민들은 적은 편이지요.”주민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행정 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전시관 유물은 등록돼 있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가 유산입니다. 이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게 박물관인데, 정작 정부나 지자체 관심이 적어요.”

그는 얼마 전 박물관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기관 관계자를 만났다가 예산 관계는 특정기관을 통하라는 말을 듣고 돌아서 나왔다. 사업의 타당성이나 적합성 보다는 절차에 연연하는 편의적 발상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돼 있는 박물관 학예사에 대해 정부가 일부 예산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도시권역인 분당과 수지 등에서 아름아름 박물관 얘기를 듣고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의 박물관 예찬은 확신에 차 있다. “박물관은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적 척도지요. 사람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과거와 현재의 삶의 흔적은 박물관에 다 있거든요”

그는 오늘도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해설사’를 자임하며 분주히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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